2012년 구미에서 발생한 불산누출 사고로 5명이 숨지고 18명이 다쳤다. 부상자 중에는 현장 노동자가 아닌 마을 주민도 있었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작업을 하고 있던 주민은 불산이 안개구름처럼 몰려왔다고 증언했다. 그는 대피하기 위해 비닐하우스 밖으로 나갔으나 곧 쓰러졌다. 만약 그가 안개구름이 불화수소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부소장은 “집 주변 공장에서 무엇을 다루는지 알았더라면 그는 비닐하우스 밖으로 나가지 않았을 것이고 쓰러지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불화수소는 급성독성으로 그 순간만 피하면 된다. 문제는 그런 정보가 지역주민들에게 전달되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화학물질 누출과 폭발사고는 현장 노동자는 물론이고 지역 주민과도 무관하지 않다. 실제 당시 사고로 경찰·소방관·인근 주민 등 병원 검사와 치료를 받은 사람은 무려 1만 2000여명에 이른다. 그러나 지역 주민이 근처 공장에서 어떤 화학물질을 취급하고 있는지, 또 그 물질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기는 쉽지 않다. 나아가 사고 이후 대책도 미비한 실정이다.

그래서 전국 20여개 시민·환경·노동단체는 20일 ‘알권리 보장을 위한 화학물질 감시네트워크’를 발족하고, 관련법 제정에 필요한 공청회를 개최했다. 특히 이들은 최근 화재·폭발·누출사고가 급증하는 추세라며 “화재·폭발·누출사고는 작년 2013년 한해에만 총 87건이 발생했는데, 이는 예년평균 12건에 비해 7배 이상 증가한 수치”라고 지적했다.

 
   
▲ 전국 20여개 시민·환경·노동단체는 20일 ‘알권리 보장을 위한 화학물질 감시네트워크’ 발족하고, 관련법 제정에 필요한 공청회를 개최했다. 사진=은수미 의원실 제공
 
이들은 “그러나 현행법의 한계 때문에 이 모든 사고에서 피해당사자인 주민들은 화학물질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해 심상정 의원실 자료에 따르면 전국 16547개 기업체 중 86%인 14225개 기업이 자신들이 취급하는 화학물질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기업비밀에 해당하거나, 취급량이 적거나, 사고대비물질이 아니라는 이유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다른 어떤 활동보다 법 보완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에 따르면 현행법은 지역별 특성 반영, 배출량 공개 대상의 확대, 대응계획 수립의 문제, 사고 발생시 대응의 문제 등 적어도 4가지 방향에서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를 위해 정보공개청구와 대국민 캠페인을 펼칠 예정이라고 밝혔다.

먼저 지역별 특성 반영이다. 현행 화학물질관리법은 환경부 장관이 5년마다 화학물질 관리계획을 수립하도록 돼있다. 지역별 특성 없이 중앙 정부가 일괄적으로 통제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감시네트워크는 “취급하는 화학물질의 특성과 인근 지역주민의 인구학적 특성에 따른 지역별 특성이 반영돼야 한다”며 “실제로 미국의 알권리법에서는 이를 주정부에 일임한다”고 말했다.

화학물질 배출량 대상 물질의 종류가 적다는 것도 지적됐다. 현행법은 화학물질 415종에 대해 배출량을 공개하도록 한다. 이는 1그룹과 2그룹으로 나눠지는데, 1그룹 16종은 연간 1톤 이상 사용할 때만 공개하고, 2그룹은 399종은 연간 10톤 이상 사용할 때 공개하도록 한다. 감시네트워크는 “종류는 더 확대되어야 하고, 사용량 기준은 더 엄격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대응계획 수립의 문제다. 현행법은 대응계획을 알리는 주체가 사업자다. 따라서 이들은 주민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나 구체적인 위치 등은 정보가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대응계획의 고지 주체가 사업주에서 정부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는 사고 발생 시의 문제다. 현행법은 사고가 발생하면 가장 먼저 관계기관에 통보하도록 한다. 이들은 “가장 먼저 통보되어야 할 대상은 시설 내 노동자들과 인근지역 주민들"이라며 "관계기관 통보와 동시에 적잘한 피난 장소 및 대피방법 등 주요 정보들은 지역 주민들에 알려야 한다. 더불어 관계기관 대상에 학교나 병원도 포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들은 범국민적 화학물질 정보공개 청구운동과 법 제정과 관련된 캠페인을 벌일 예정이다. 또한 이번 공청회를 함께 주최한 은수미 의원실은 "화학물질 사고는 기존 산재사망사고와는 달리 공장 울타리를 넘어 지역 주민들에게도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며 “하반기 환노위에서 계속적으로 화학물질 관리를 주요 의제화 하고, 6·4 지방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중앙공약으로 화학물질관리 강화 및 이에 관련한 지자체 조례 제정을 포함시키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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