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생소한 원자력방호방재법이 정치권에서 최대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 법이 언론에 처음 보도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14일, 정홍원 국무총리가 국회의장과 여야에 전화를 걸어 이 법의 조속한 통과를 당부하면서부터다. 불과 5일여 만에 이 법안은 정치권 최대 이슈가 됐다.

사실 이 법은 지난 2012년 열린 핵안보정상회의 이후 제출된 법안이다. 1년 반 정도 묵힌 법안이 갑자기 정가 최대이슈로 급부상한 이유는 오는 24일, 네덜란드에서 핵안보정상회의가 열리기 때문이다. 여기서 박근혜 대통령은 특별연설을 할 예정인데, 이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면 해당 법안의 근거인 2012년 핵안보정상회의의 개최국이 관련법도 통과시키지 못한 셈이 된다.

이 법에 대한 여야 이견은 없다. 그런데 정부와 새누리당은 그동안 이 법안을 언급하지 않았다. 핵안보정상회의를 코앞에 두고야, 국회가 휴회하고 있는 와중에 ‘당장 이 법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나라망신’이라는 식으로 야당을 압박하고 있는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17일 국무회의에서 “다른 법안과 연계해 개정안을 통과시켜주지 않아 유감”이라고 야당을 비판했다.

   
▲ 2014년 3월 18일. KBS 뉴스9 화면 갈무리.
 
이런 상황에서 야당이 황당할 것은 당연하다. 휴회 중에 국회를 열어 법안을 통과시켜야 하니, 다른 법안 연계처리를 협상하자는 것도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특히 방송법은 여야가 합의한 법안이다. 물론 새누리당이 이후 조중동의 압박에 합의를 일방적으로 깨버리긴 했다.

문제는 언론이다. 이 법안에 대한 논란이 불거진 이후 언론은 앞뒤사정 없이 야당을 압박하고 나섰다. 여야가 공히 잘못이 있어서, 때문에 야당을 비판하더라도 언론은 분명 정부여당에 대한 책임을 함께 물어야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한 비판은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방송뉴스는 더욱 심각하다.

KBS는 17일 <뉴스9>에서 “다음 주에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를 앞두고 정홍원 국무총리가 오늘 국회를 방문해 원자력 방호 방재법의 조속한 처리를 호소했다”며 “이를 계기로 여야가 임시국회 소집 방안을 논의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고, 새누리당이 일단 오는 20일 국회 소집 요구서를 단독으로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18일 KBS <뉴스9>는 이 문제를 2개의 리포트에 담았다. 먼저 여야의 공방을 다룬 뒤 해당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요구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보도했다. KBS는 여야 공방 리포트에서 민주당에 대해 “문제가 불거질 때까지 청와대 수석 비서관 등은 방관만 하고 있었다며 책임자를 먼저 추궁하라고 주장했다”면서 “민주당은 하지만 방송법 개정안 등 다른 법안과 함께 처리한다면 협조하겠다고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 2014년 3월 19일. MBC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KBS는 뒤이은 리포트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에서 원자력방호방재법 개정안을 다른 법안과 연계해 통과시켜 주지 않고 있어 참으로 유감이라고 밝혔다”며 “국민이 원하는 새 정치는 국익과 국민을 최우선에 놓는 정치라며, 우리가 비준을 약속한 것마저 지키지 못한다면 국제적으로 신뢰를 잃고 국익에 큰 손상이 갈 것이라며 원자력방호방재법의 조속한 국회 처리를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KBS는 박 대통령의 발언과 새누리당의 반발을 ‘국익’을 중심으로 소개하고 민주당은 법안 지연책임을 물으면서도 자신들이 원하는 방송법과 연계처리하면 받아들일 수 있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리포트 순서도 민주당의 ‘연계 요구’에 뒤이어 박근혜 대통령의 ‘연계 요구는 국익 손상으로 이어진다’는 배치로 해당 법안 처리 문제를 야당 탓으로 돌렸다.

MBC는 18일 리포트에서 아예 야당의 주장을 담지 않았다. 이날 <뉴스데스크>에서는 박 대통령의 발언만을 보도했다. SBS는 18일 <8뉴스>에서 박 대통령의 발언에 뒤이어 여야 공방을 다뤘지만 야당의 방송법 연계주장만을 다뤘을 뿐, 정부 책임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는 조선일보도 정부여당의 책임을 지적하고 있다. 최승현 조선일보 기자는 19일 <무조건 발목잡는 야…뒷북치는 여 핵방호법 정쟁에 나라망신 당할 판> 기자수첩에서 “새누리당은 그동안 이 법안을 처리하자고 제안 한 번 하지 않은 채 손 놓고 있다가 청와대의 불호령이 떨어지자 뒤늦게 호들갑을 떨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방송사는 이런 지적마저 없다. 그냥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는 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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