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증거조작 사건의 피해자 유우성씨의 변호를 맡고 있는 공동변호인단은 17일 일부 언론들의 왜곡보도에 대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변호인단이 문제 삼은 왜곡보도는 유씨가 ‘대북 송금 브로커’로 활동했다는 기사다. 하지만 보수언론이 증거조작의 실체가 드러나는 동안 유씨의 정체가 의심스럽다는, 즉 간첩으로 의심할 만하다는 내용의 보도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보수언론은 이미 법원에서 다뤄졌거나 유씨가 수사기관에 해명한 내용을 ‘새로운 팩트’인 것처럼 보도했다. 문화일보는 지난 2월 17일 유우성씨가 북한에서 목격됐다는 탈북자 증언을 전했다. 하지만 탈북자 증언은 이미 1심 재판 과정에서 재판부가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세계일보는 3월 3일부터 유우성씨를 간첩으로 의심할 만하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세계일보는 4일 “유우성씨의 실체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는 정황이 새롭게 드러나고 있다”며 유씨가 4개의 이름을 섞어 쓰며 신분세탁과 공문서 위조를 했다고 밝혔다. “간첩 의심 않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하다는 것이다. 또한 5일에는 단독 입수한 ‘유우성 위조신분증’을 공개하며 유씨가 북한에 존재하지 않는 ‘김일성 청년동맹원’인 척 신분을 속였다고 전했다.

‘영국 망명설’도 나왔다. 세계일보는 “유우성씨가 4일 영국 정부에 망명을 신청한 전력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며 “통상 망명 시도는 정치적 문제와 밀접하다는 점에서 유씨의 망명 신청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고 전했다.

   
▲ 3월 4일자 세계일보 5면
 
같은 날 TV조선은 특보를 통해 유씨의 영국 망명과 신분 세탁 사실을 보도했다. TV조선은 “우리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거나, 간첩 활동에 염증을 느껴 제3국으로의 도피를 생각했을 것” “이중, 삼중으로 얽힌 신분세탁 과정 때문에 유씨의 실체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등의 표현을 써가며 유씨의 실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 같은 보도내용은 새로운 팩트가 아니다. 김용민 공동변호인단 변호사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언론에 보도되는 내용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고, 1심 재판과 수사과정에서 다 이야기됐던 내용”이라고 밝혔다. 신분세탁의 경우 유씨가 2009년과 2010년 국가보안법 등으로 수사를 받을 때 수사 기관에서 진술한 내용이며, 당시 유씨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김 변호사는 영국 망명설에 대해 “영국에 영어 공부를 하러 갔다가 난민으로 신청하면 무료로 영어를 가르쳐주는 프로그램이 있어서 영어를 배우고 싶은 마음에 난민 신청을 한 것이다. 유광일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한국 국적을 받았기에 조광일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쓴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르바이트하며 6개월 간 영어를 공부한 이야기를 신분 세탁과 망명 시도 등 자극적인 이야기로 각색했다는 것이다. 변호인단은 이러한 사정 역시 수사기관에 진술했다고 밝혔다.

세계일보는 이러한 의혹이 ‘새로운 팩트’가 아니라는 점을 모르고 있을까. 세계일보는 4일 기사에서 “유씨의 1심 재판과정에서 신분증은 위조된 것임이 드러났다”며 “유씨는 최소 4개국 공문서를 위조 또는 도용했고, 이 과정에서 정착지원금 등 2500만 원 가량도 챙겼다. 이 부분은 1심 법원에서 유죄까지 받았다”고 말했다. ‘대북 브로커’ 설을 보도하며 “유씨 가족이 대북 송금 업무에 종사한 사실이 알려진 것은 2009년 해양경찰과 조사를 받으면서다”라며 “불법 대북 송금을 맡은 사실이 적발돼 외국환거래법과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았고, 이듬해 3월 서울동부지검에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렇게 잘 알면서 의혹을 다시 재탕하는 의도는 무엇일까.

문화일보는 14일 유씨가 북한인권 개선 관련 활동을 하는 탈북자 정보를 별도로 관리했다고 전했다. 유씨가 탈북자 출신 안보강사 18명과 유엔 북한 인권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26명의 탈북자 신원정보를 별도 파일로 보관하고 있었고, 이것이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하지만 1심 재판 때 이에 대한 반박 증거가 나왔다.

김용민 변호사는 “우리나라의 모든 탈북자 명단을 탈북자지원재단이 가지고 있는데, 그곳에서 유씨한테 근무하라고 제안을 한 적이 있다”며 “하지만 유씨가 이를 거절했다. 탈북자 정보를 얻고 싶으면 힘들게 사람들 만나러 다니지 말고 그곳에서 근무하면 되는 데 왜 이 제안을 거절 했겠나”고 말했다. 그는 “이 같은 사실은 1심 재판 때 유씨가 간첩이 아니라는 매우 중요한 증거였고, 재단 근무를 제안한 사람이 증인으로 나와 이 같은 사실을 밝혔다”고 강조했다.

문화일보는 나아가 유씨 측이 싼허 변방검사참에서 발급받은 ‘상황설명서’도 위조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다. 검찰과 국정원이 증거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변호인단 증거도 조작됐다’며 맞불을 놓은 것이다. 문화일보는 14일 유씨가 지난해 부친에게 보낸 위임장의 위임 내용에 ‘상황설명서’가 없다는 점, 위임장을 통해 요구한 통행증 사용 기간은 2006년 6월 23일~27일이었지만 싼허 변방검사참이 이전 기록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기술했다는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 3월 14일자 문화일보 1면
 
변호인단은 보도 자료까지 내며 문화일보 보도를 반박했다. 변호인단은 “법원에 위 상황설명서를 증거로 제출할 당시 상황설명서 발급경위, 상황설명서 내용, 2개의 상황설명서간의 상이점 등에 대하여 충분한 내용을 의견서로 제출했다”며 “이미 재판과정에서 그 발급경위, 내용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였고, 중국 측으로부터 그 내용이 진실하다고 사실조회회신까지 받은 상황설명서에 대하여 이제와 새삼스럽게 위조, 변조정황이 있다고 주장하는 저의가 무엇인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문화일보는 최근 뉴스타파가 영상에서 유씨 여권 사진의 사증 번호를 편집 처리한 것을 두고 여권이 ‘위조’됐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제 하다하다 ‘가십성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조선일보는 18일 지면 기사에서 “유우성씨가 과거 인기 연예인들과 함께 찍어 인터넷에 올렸던 사진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며 유씨가 탤런트 설수진, 하희라, 안재욱씨 등과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미디어오늘은 왜 이런 기사들을 쓰는지 묻기 위해 기사를 작성한 기자들에게 연락을 취했다. 김대종 문화일보 기자는 “(기사 내용에 대해) 단독으로 말씀드리기 어렵다. 회사 방침에 따라 개인적으로 입장을 밝히기보다 회사와 협의과정을 거치도록 되어 있다”고 밝혔다. 김병채 문화일보 기자 역시 18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데스크와 이야기하라”고 말했다.

박민 문화일보 사회부장은 “진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누가 왜곡이라고 말할 수 없다. 본인 입장에서는 왜곡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의혹이 제기되는 부분에 대해 쓴 것”이라고 밝혔다. 물타기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선 “국정원이나 검찰 기관지도 아니고 물타기하려고 쓰는 것 아니다. 취재하고도 (물타기라는) 의심 받을까봐 기사를 안 쓰면 안 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박현준 세계일보 기자는 “기사의 취지는 기사 안에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검찰이 법원에 증거로 제시한 문서에 실제 ‘오류’가 있었는지와는 별개로 유씨의 실체가 무엇인지 다시 살펴봐야 한다”는 것. 박 기자는 물타기 의혹에 대해 “기사를 기사로만 봐달라. 실체를 밝히려 할 뿐”이라며 “(그런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정치적인 해석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성호 세계일보 기자는 “유씨가 간첩이라는 내용의 기사가 아니라 정체가 의심되는 부분이 있어 기사화한 것”이라며 “(이 기사를) 물타기라고 읽는 사람들은 그렇게 읽겠지만 증거조작 사건은 수사로 밝혀질 내용이고 그것과 다른 의혹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보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기사에 유씨의 입장을 잘 반영하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해선 “유씨 입장은 사회적으로 이미 충분히 알려져 있지 않나”고 답했다.

   
▲ 18일자 조선일보 10면
 
하지만 변호인단은 이들 보수언론이 검찰과 국정원의 의도에 맞춰 움직이는 것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세계일보와 문화일보 등의 몇몇 ‘단독’보도 내용은 수사기관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들이 대부분이며 실제로 이들은 ‘검찰 관계자’ ‘공안당국 관계자’ 등의 입을 빌러 유씨를 간첩으로 의심할 만하다는 보도를 하고 있다.

변호인단은 17일 “최근 지속되고 있는 왜곡보도는 조선족 김모씨와 국정원 직원들의 변명, 국가보안법상 증거날조죄를 적용하지 않는 검찰의 태도와도 일맥상통한다. 유우성이 간첩은 맞는데 증거가 없다는 프레임으로 몰고 가려는 의도라고 보여진다”며 “그러나 유우성에 대한 간첩혐의는 국정원과 검찰이 총력을 기울였어도 실질적인 증거가 없어 무죄판단을 받았던 것이다. 언론은 허위사실을 나열하거나 합리적 근거 없는 추정만으로 유우성이 간첩혐의를 받을 만한 행동을 했다는 것을 보도하는 행태를 당장 그만두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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