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간첩 증거조작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국정원을 압수수색함에 따라 남재준 국정원장이 책임지고 사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방송3사 뉴스에는 남재준 원장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10일 국정원이 압수수색 당하자 대다수 언론들이 관련 소식을 다뤘다. MBC <뉴스데스크>와 KBS <뉴스9>, SBS <8뉴스>도 10일, 11일에 걸쳐 관련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이들 보도에서 남재준 국정원장의 책임을 묻는 목소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국정원 압수수색이 이루어진 직후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새정치연합 대표 등 야권은 남재준 국정원장의 해임을 촉구했다. 심지어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남재준의 책임과 자진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까지도 남재준 책임론을 들고 나왔다. 동아일보는 11일 사설을 통해 “국기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남재준 국정원장이 침묵만 지키고 있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며 “박 대통령은 남 원장을 문책하는 것으로 국정원 개혁 의지를 천명할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중앙일보 역시 같은 날 사설에서 “남재준 국정원은 이미 설 땅을 잃은 셈”이라며 “남 원장이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앞서 조선일보도 10일 사설을 통해 “검찰 수사 결과와 관계없이 남 국정원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 그것이 순리”라고 밝혔다.

   
▲ 10일자 조선일보 39면
 
새누리당과 보수언론까지 남재준 책임을 묻고 있지만 유독 방송3사만 남재준 책임론을 제기하지 않고 있다. MBC <뉴스데스크>와 KBS<뉴스9>에는 아예 ‘남재준’이라는 이름 자체가 등장하지 않는다. MBC <뉴스데스크>는 10일 '간첩사건 증거위조 의혹, 윗선 보고 어디까지?'에서 “국정원에서 어느 선까지 관련했는지가 관건”이라고 전했고, KBS <뉴스9>는 11일 '국정원 윗선 개입’ 여부 조사…“28일 공판 전 결론”'에서 “검찰은 국정원이 어느 선까지 개입했는지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윗선’을 수사해야 한다는 점을 밝히면서도 윗선으로 의심되는 남재준 국정원장의 이름은 거론하지 않은 것이다.

MBC와 KBS는 심지어 야당의 ‘남재준 해임’ 요구도 전하지 않았다. MBC는 10일 '여야,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 공방…“간첩사건 본질 무시”'에서, KBS는 10일 '야 “대공수사권 이관해야”…여 “검찰 수사 지켜봐야”'에서 증거조작 사건을 둘러싼 여야의 공방을 전했다. 하지만 대공수사권 이관을 둘러싼 대립을 전했을 뿐, ‘남재준 해임’ 요구는 쏙 빠졌다.

   
▲ 10일자 KBS9시뉴스 갈무리
 
그나마 SBS가 남재준 국정원장의 이름을 거론했다. SBS <8뉴스>는 10일 '국정원, 휴일 밤 ‘대국민 사과’…책임 어느 선까지?'에서 “남재준 국정원장 역시 언제, 어디까지 보고받았느냐에 따라 거취와 책임의 범위가 달라질 상황”이라고 보도했다. 같은 날 뉴스 '야당 “국정원장 해임해야”…여당 “검찰 수사 지켜봐야”'에서는 야당의 ‘남재준 해임’ 요구를 전했다.
 
가장 돋보인 것은 JTBC였다. JTBC <뉴스9>는 10일 5꼭지, 11일 5꼭지에 걸쳐 국정원 증거조작 사건에 관해 다뤘다. JTBC는 10일 뉴스에서 새누리 내부에서도 ‘남재준 경질론’이 제기되고 있다는 소식과 야권이 국정원장 사퇴를 요구한다는 내용을 각각 1꼭지에 걸쳐 보도했다.

JTBC는 또한 11일 첫 번째 꼭지 '새누리 내부서도 ‘남재준 책임론’…민주 ‘특검’ 공세 지속'에서 “국가기밀 누설 논란을 무릅쓰면서까지 지키겠다고 했던 국정원의 명예가 최근 간첩 증거 위조 사건을 만나면서 크게 흔들리고 있다”며 “이번 사건은 결국 남 원장의 책임 여부로 쟁점이 옮겨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형식적으로 정치권의 목소리만 전한 것이 아니다. JTBC는 11일 '1년 넘도록 ‘국정원 정쟁’, 논란으로 얼룩진 ‘남재준 체제’'에서 취재 기자를 스튜디오로 불러 남재준의 국정원이 1년 간 정국의 중심에 있었으며 “박근혜 대통령도 더 이상은 ‘남재준 국정원 체제’를 유지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야의 목소리만 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남재준 책임론이 불거진 배경까지 짚은 것이다.

   
▲ 11일자 JTBC ‘뉴스9’ 갈무리
 
이처럼 새누리당은 물론 보수언론, 종편까지 남재준 원장의 책임을 묻고 있는 심각한 상황에서도 공영방송이라는 MBC와 KBS는 남 원장의 책임을 따지기는커녕 남재준이라는 이름 세 글자조차 꺼내지 못하고 있다. MBC·KBS에게 국정원은 성역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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