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방송사들이 유우성씨 간첩 증거조작 사건을 적극 보도하고 있다. 국정원의 증거조작 사건의 실체가 불거진 만큼 모처럼 방송사들이 언론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인데, 불과 보름 전만 해도 이들이 이 사건을 대하는 태도는 ‘외면’에 가까웠다. 그런데 최근 적극 보도는 물론 국정원에 비판도 가한다.

방송사들의 입장선회는 지난 5일 국정원 ‘협조자’인 김모씨가 증거조작 사건 관련 검찰조사를 받은 이후 자살을 기도하면서 시작됐다. 김씨는 국정원이 제출했던 유우성씨 간첩 혐의 증거가 조작됐다는 사실을 유서를 통해 폭로했고, 이후 국정원의 증거조작 혐의가 사실로 굳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KBS는 지난 7일 <뉴스9>에서 해당 이슈를 헤드라인으로 다뤘다. 총 6개의 꼭지가 나왔다. 김씨의 유서 내용을 자세히 소개하는 한편 검찰이 국정원을 조준하기 시작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8일에도 검찰이 이번 사건에 대해 진상조사팀에서 수사팀으로 전환했음을 보도했고 9일에도 관련 소식을 업데이트 하며 논란이 일고 있는 점을 다뤘다.

   
▲ 2014년 3월 10일자 KBS <뉴스 9> 화면 갈무리
 
MBC도 마찬가지다. MBC는 지난 6일 김씨의 자살 시도 소식을 다뤘고, 7일과 8일, 10일에도 이 문제를 헤드라인으로 다뤘다. 이전까지 MBC는 거의 관련 소식을 끝자락에 배치했다. 김씨의 자살 이후 그동안의 보도 관행과는 분명 달라졌다.

이전까지 KBS와 MBC 뉴스에서는 이 사건 관련 소식을 찾기가 어려웠다. 이 사건이 확산되기 시작한 계기는 지난달 14일 중국이 국정원이 유우성씨 간첩 사건의 증거로 제출한 문서가 위조임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을 통해 알려온 직후다. KBS는 저녁 메인뉴스에서 이를 다루었지만 MBC는 다루지 않았다.

KBS는 지난달 14일 중국 측 입장을 보도한 데 이어 15일에도 이 문제를 다뤘다. KBS는 해당 리포트에서 “국정원 측은 해당 자료는 선양 총영사관을 통해 입수한 것으로 사실과 부합한다고 말했다”며 “또 재판 과정에서 입증할 것이라며 재판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에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어 “검찰은 국정원 자료를 검증 없이 법원에 제출했다는 지적에 대해 변호인측 자료보다 더 신빙성 있게 보았다고 해명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민변의 주장에 대해서는 “변호인단 자료엔 5월 23일 북한으로 출국한 이후 세 차례 연속 입국했다고 돼 있어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한다”라며 “이에 대해 변호인단은 컴퓨터 오류 때문이며 사실은 한번만 입출국했다는 중국 삼합변방검문소의 상황설명서를 제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정원과 검찰 측 주장은 자세히 설명한 반면, 변호인 측이 오히려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식의 보도태도다.

KBS는 2월16일에는 검찰총장의 진상조사 지시만 ‘간추린 뉴스’로 보도했다. KBS는 며칠 뒤인 19일 특검을 요구하는 야당과 진상규명이 먼저라 주장한 여당의 입장을 전달하는 리포트, 그리고 21일과 28일에 관련 보도를 했지만 이후 김씨의 자살기도가 있기 직전까지 관련 리포트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 2014년 3월 7일자. MBC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MBC는 비교적 KBS보다 나은 편이다. 대체로 3~5일 간격으로 이 사건을 보도했다. 다만 지난달 21일 <‘조작 의혹’ 문건 출처 의문 여전> 리포트에서는 조백상 주 선양 총영사의 “담당 영사가 번역을 한 뒤 사실이 틀림없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으며 문서는 충분한 조건이 갖추어졌기 때문에 공증이 됐다”고 밝힌 사실을 보도하며 조작이 아니라는 부분에 힘을 실었다.

MBC는 23일 보도에서 단신으로 검찰이 조백상 총영사를 조사했다는 사실만 보도했고 28일에서도 관련 보도를 했지만 도입부에 “검찰과 국가정보원 등 공안당국은 간첩사건 피고인인 유우성씨를 신분 위조 전문가로 보고 있다”며 유우성씨의 간첩 혐의에 초점을 맞췄다. 3월 1일에도 선양 영사관 직원이 검찰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는 단신, 2일에는 증거조작과 관련해 한 조선족이 개입했다는 정황을 보도했다.

SBS는 그나마 이틀에 하루 꼴로 관련 사건을 보도했다. 하지만 검찰과 변호인단 측에서 나오는 얘기들만 보도했을 뿐, 이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보도를 하지 않았다.

물론 ‘협조자’ 김씨의 자살 이후 해당 정황이 사실로 받아들여지게 된 만큼, 이후 보도가 달라졌다고 반박할 수는 있다. 하지만 국민적 의혹이 있는 이번 간첩 증거조작 사건에 방송사들이 대체로 소극적이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이는 JTBC 보도를 보면 확연히 비교된다.

   
▲ 2014년 3월 10일 JTBC <뉴스 9> 화면 갈무리
 
JTBC는 거의 매일 이 사건을 보도했다. 주한중국대사관이 해당 문서가 위조임을 재확인 받고, 위조 의혹이 제기된 출입경기록을 국정원이 비공식적으로 입수했지만 검찰이 정식 외교 경로로 입수했다는 의견서를 법원에 낸 사실, 또 다른 현지 국정원 직원이 선양 총영사관 영사로 근무하면서 이 사건에 깊숙이 개입한 정황, 그 영사가 비공식 루트를 통해 유우성씨 신원을 조회한 사실 등 무수한 단독기사를 쏟아내 시청자의 알 권리를 충족했다.

방송사들이 갑자기 이번 보도에 적극 나서는 이유가 무엇일까? 이희완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국정원 대선개입은 전 정부 시절 벌어진 일이라 정권이나 국정원 등이 빠져나갈 구멍이 있었고 이에 호흡을 맞춰 언론도 물타기 보도를 하는 행태를 보였다”며 “그러나 이번 국정원 협조자 자살기도 사건 이후 국정원이 사과를 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관련 발언을 하면서 정국이 180도 달라지자 정권과 국정원, 언론이 선긋기에 나선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 처장은 “이번 사건의 경우 지방선거의 가장 중요한 한 곳이 서울이니만큼 계속 ‘서울시 공무원 사건’이라는 타이틀이 나왔다”며 “결국 협조자의 자살기도로 인해 국정원이 무리하게 수사를 진행한 것이 들통 난 상황이니만큼, 정권과 국정원, 언론이 보조를 맞춰 지금 벌어지는 사태를 빨리 수습해야겠다는 전략적 선택을 했다는 추측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처장은 “JTBC의 경우 이 문제를 계속 추적해온 반면 다른 지상파 언론은 받아쓰기 형태였다”며 “단순히 팩트만 알려주는 것 뿐 아니라 시청자나 국민들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 파헤치는 것이 언론의 기능인데, 방송사는 그 기능을 상실했다”고 말했다. 이어 “지상파 뉴스가 언론으로 기능을 상실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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