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의혹과 관련해 검찰 조사를 받던 국가정보원 협력자 김모씨가 6일 자살을 시도해 병원으로 옮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김씨는 중국 정부가 위조됐다고 밝힌 공문서를 국정원에게 준 것으로 알려진 인물로, 증거조작 사건의 미스테리를 풀 중요한 인물이다. 7일자 주요 아침신문들과 6일 지상파3사 뉴스는 이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무게중심과 비중은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 

6일 MBC <뉴스데스크>는 10번째 꼭지, KBS <뉴스9>는 13번째 꼭지, SBS <8뉴스>는 10번째 꼭지에서 김씨가 검찰조사 뒤 자살을 시도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공영방송  KBS와 MBC는 이 소식을 형식적으로 보도하는 데 그쳤다.

김씨가 자살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많은 의혹이 제기됐다. 김씨의 자살 현장이 깨끗이 치워졌다는 점, 검찰이 김씨가 남긴 유서를 공개하지 않은 점, 김씨가 검사에게 자살 예고 메시지를 보냈다는 점이 핵심 의혹이다.

   
▲ 6일자 MBC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한겨레는 7일자 보도에서 “검찰은 김씨의 유서를 신속히 확보한 뒤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경찰은 김씨가 머문 호텔 방 벽에 ‘국정원’이라고 쓴 혈서 등 사건 현장을 보전하지 않았다. 검찰과 경찰이 뭔가 감추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며 사건 축소 의혹을 제기했다. 경향신문 또한 같은 날 기사에서 “김씨가 자신의 가족이나 지인이 아닌 자신을 조사한 검사에게 자살 시도 전 문자메시지를 보낸 점도 석연찮다”며 민변의 말을 빌려 “김씨가 자살 시도 전에 검사에게 휴대전화로 메시지를 보냈다는 것도, 검사에가 피조사자에게 휴대전화 번호까지 알려줬다는 사실도 일반적인 수사관행에서 좀처럼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진보언론들만 의혹을 제기한 것이 아니다. 동아일보는 7일 “김씨가 자살 기도를 한 모텔방이 신속히 치워지는 등 현장 보존 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논란”이라며 “모텔 측에서는 김씨가 병원에 실려 간 지 약 5시간 지난 5일 오후 11시경 피 묻은 시트를 버리고 대대적으로 객실 청소를 했다”고 보도했다. 동아는 모텔 직원과 인터뷰를 통해 “수사관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오후 7시 경 이제 청소해도 된다고 해 청소했다”고 전해, 누군가 사건 현장을 은폐하려고 했다는 의혹에 힘을 실었다.

하지만 보수언론조차 의심하는 사안을 공영방송인 MBC와 KBS는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MBC <뉴스데스크>는 6일 <‘간첩조작’ 의혹 탈북자 김모씨, 검찰 조사 뒤 자살 시도> 리포트에서 “김씨는 자살을 시도하기 전 자신을 조사했던 검사에게 자살을 암시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냈으며, 묵었던 방의 벽에 ‘국정원’이라는 글씨와 함께 A4용지 4장 분량의 유서도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은폐 의혹이나 유서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한 문제제기는 없었다.

KBS <뉴스9> 역시 <간첩사건 ‘국정원 협조자’ 자살 시도…왜?>에서 유서 내용 일부와 벽에 ‘국정원’이라는 글씨가 남아 있었다는 내용을 전했지만, 검찰이 유서를 공개하지 않으려 했다는 점이나 글씨가 지워졌다는 내용은 없었다.

   
▲ 3월6일 KBS <뉴스9> 갈무리
 
그나마 SBS가 사고 현장이 깨끗이 치워진 것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을 뿐이다. SBS <8뉴스>는 6일 <"간첩 사건 조작 있었다" 진술 뒤 자살시도>에서 “어제 현장에서는 A4용지 4장 분량의 유서도 발견됐다. 하지만 이후 사고 현장은 깨끗이 치워졌다”며 “민변은 사건 조사가 완전히 끝나기 전에 현장을 말끔히 치운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고 보도했다.

더 큰 문제점은 이번 사건을 보도하며 국정원의 책임을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7일 보도에 따르면 김씨는 검찰 조사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진술을 했다. “국정원에 준 자료는 나의 부탁을 받은 제3의 인물이 만들었으며, 그런 사실도 국정원이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동아일보는 7일자 1면 기사를 통해 김씨가 검찰 조사 과정에서 “국정원으로부터 변호인 측의 주장을 반박할 문서를 구해달라는 의뢰와 함께 돈을 받았으며 위조된 문서를 구해와 건네줬다”고 증언했다고 전했다.

조선일보도 또한 김씨가 국정원이 자신을 지켜주지 않는다고 판단하자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전했다. 조선은 “김씨의 유서에도 국정원이 위조를 알고 있으면서도 자신에게 책임을 떠미는 데 대한 원망이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유서에는 국정원의 행태를 비판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국정원 개혁을 부탁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며 “김씨는 국정원 요청으로 위험을 무릅쓰고 중국에 건너가 문서를 만들어왔는데도 국정원이 보호해주지 않은 데 대해 불만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검찰은 국정원이 위조된 문서로 검찰-법원으로 이어지는 형사사법체계를 속이려 한 것은 아닌지 의심의 눈초리까지 보내고 있다”며 검찰이 초비상사태라고 전했다. 동아는 “국정원이 김씨에게 허위 진술을 강요했는지도 조사 대상이다. 국정원이 김씨에게 국정원 입장대로 진술하라고 주문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동아일보조차 ‘초비상사태’라고 부르는 이 사건에 대해 공영방송인 MBC와 KBS는 별 관심이 없다. MBC와 KBS는 국정원이 증거조작을 알고 있었다는 김씨의 진술 내용을 보도하지 않았으며, ‘국정원 책임론’도 제기하지 않았다. KBS는 “문서 입수 경위 등에 대한 3차례에 걸친 검찰의 조사는 김 씨에게 심적 압박이 됐던 것으로 보인다”며 검찰 조사로 인한 심리적 압박감을 원인으로 지목했을 뿐, 국정원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 3월6일 SBS <8뉴스> 갈무리
 
그나마 SBS가 6일 <8뉴스>에서 “김씨는 검찰 조사에서 국정원이 제출한 유씨의 중국 공문서에 조작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지금껏 국정원이 해온 해명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이라며 국정원의 책임을 간단히 짚었다. 

지난 2월 25일 언론노조 총파업 사전대회에 참석한 이성주 언론노조 MBC본부장은 “조중동 등 보수언론도 비판하는 내용을 왜 MBC는 보도하지 못하는 것인가”라고 말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을 대하는 공영방송 보도태도를 보면 이성주 본부장의 말이 얼마나 타당성이 있는 지를 정확히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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