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조선일보와 TV조선을 보는 83세 아버지가 있다.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이 엄마에게 ‘엄마, 아빠 말 다 믿지마. 할아버지가 그러는데 아빠도 종북이래’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할아버지가 아이를 데리고 TV조선 틀고 세뇌시킨다. 최근엔 영화 <변호인> 보고 ‘정치인을 우상화하는 저런 영화를 찍어도 돼?’라고 이야기했다. 아버지와 아들을 계속 집에 있게 해야 하나 고민한다. TV조선을 가족파괴범으로 본다. 이게 쌓이면 우리 집처럼 된다.”

방송통신위원회 양문석 상임위원 이야기다. 방송통신위원회(위원장 이경재)가 종합편성채널 재승인 심사를 다음 주 시작한다. 대상은 TV조선, JTBC, 채널A. 이경재 위원장 등 정부·여당 추천 상임위원들은 심사위원장 포함 15명 중 12명 이상을 자신들이 추천하겠다고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심사는 ‘요식행위’가 됐으나 종편의 재승인 여부는 국회와 학계, 그리고 업계의 최대 관심사다. 방통위가 ‘비정상’ 종편을 퇴출해 미디어생태계를 ‘정상화’할지 주목된다.

재승인 심사를 계기로 비대칭 특혜 폐지 주장이 다시 나온다. 하나 이상의 종편을 퇴출해야 한다는 주장이 재차 나오고 있다. 민주당이 앞장서는 모양새다. 민주당 공정언론대책특별위원회는 6일 오후 국회에서 <종편 특혜해소와 제대로 된 재승인 심사를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신경민 최고위원(공정언론대책특위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종편을 ‘비정상 언론’으로 지목하고 철저한 재승인 심사를 촉구했다. 노웅래 사무총장은 “종편을 보면 매일 마약을 먹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 민주당 공정언론대책특위(위원장 신경민)는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종편 특혜 해소와 재승인 심사를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 장소인 국회 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는 기자들로 가득찼다. 채널A는 카메라를 두 대 보내 토론회를 취재했다. 사진=박장준 기자.
 
종일 편파방송이라는 비판에도 종편은 특혜를 발판으로 3년을 버텼다. 시청률도 1%를 돌파했다. 2015년까지 2% 돌파가 목표인 종편도 있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과)는 “종편은 지금까지 의무전송, 황금채널 배정, 방송통신발전기금 납부 유예, 미디어렙 적용 유예, 중간광고 허용 등 온갖 특혜를 누려왔다”며 “이제 유료방송사업자들로부터 수신료까지 챙기게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의무전송과 수신료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려대 김성철 교수(미디어학부)는 “어떤 시장이나 후발사업자를 위해 비대칭 규제와 지원을 하게 돼 있지만 종편의 경우 이게 과도했다”며 “광고 직접판매, 1사1렙, 중간광고를 허용한 것은 반경쟁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MBC와 SBS도 아닌 의무전송을 종편에게 준 것은 난센스”라며 “유료방송사업자가 종편을 의무 전송하고 있는데 종편이 수신료까지 받는 것은 시장 논리에서 있을 수 없다. 플랫폼사업자의 권리를 막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종편은 ‘걸음마 중인 아이’라는 이유로 특혜를 유지하고 있다. 국회와 방통위는 종편을 출범시키면서 유료방송사업자에게 종편 4개 채널을 의무적으로 전송하도록 강제했고, 황금채널을 배정하게끔 ‘계도’했다. ‘업계 회비’인 방송통신발전기금 납부도 유예했다. 중간광고라는 선물도 줬다. 그리고 최근 방통위는 ‘보도-광고 분리’라는 미디어렙(방송광고판매대행자) 취지를 깨고 종편에게 1사1렙을 허용했다. 사실상 직접영업의 연장이다.

성적은 초라하다. 종편은 수백억 원대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사업계획 상 콘텐츠 투자계획을 이행하지 않는다. TV조선과 채널A는 계획의 25~26%만 투자했다. TV조선은 지난해 1609억 원을 계획하고 414억 원을 투자했다. 2012년 불이행금액 971억 원을 포함하면 16.0%. 채널A도 불이행금액 819억 원을 포함하면 18.3%뿐만 투자했다. MBN과 JTBC는 두 회사보다 2배 이상 투자했지만 2012년 불이행금액을 포함하면 이행률은 35.1%, 44.5%다.

종편은 대신 대규모 투자가 필요 없는 보도프로그램 비율을 높였다. 지난달 방통위가 발표한 ‘2013년 종합편성 및 보도전문PP사업계획 이행실적 점검결과’에 따르면, TV조선과 채널A의 보도프로그램 편성비율은 각각 48.2%와 43.2%다. 두 채널의 2012년 보도 편성비율은 16.6%, 16.3%(언론개혁시민연대 편성표 분석 결과)였다. 최진봉 교수는 “승인조건이었던 종합편성을 포기하고 시사·보도전문채널로 전락했다”며 “차라리 보도전문채널을 하라”고 꼬집었다.

한국미디어경영학회장을 맡고 있는 김성철 교수는 “사회·문화적 가치에서 평가하든 산업적 가치로 평가하든 종편에 대해서는 비슷한 결론이 나온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외부에서 보면 (종편에) 강력한 비대칭 지원이 들어갔는데 이에 맞는 노력은 굉장히 미흡하다”며 “산업적 측면에서도 자본잠식 상황이다. 시장에 무슨 이익이 있나. 경쟁 증가했나, 소비자 후생 증가했나. 증가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방통위는 종편 2중대 노릇을 하고 있다. 종편 4사는 모두 2년 연속 승인조건과 사업계획을 지키지 않았으나 방통위 처분은 과징금 3750만 원에 불과했다. 한성대 김상조 교수(무역학과)는 “방송법 상 과징금 상한액을 현행 1억 원에서 적어도 10배, 100배로 올려야 한다”며 공정거래법과 은행법 등 금융 관련법에 있는 ‘이행강제’ 조항을 방송법에 넣어 “실효성 있는 규제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정위는 사업자가 시정조치를 완료할 때까지 위반 금액의 10000분의 1을 매일 부과한다.

양문석 방통위 상임위원은 퇴출 대상을 분명히 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양 위원은 “이제 종편 4사가 본격적으로 분화하기 시작했다”며 “종편이 시장에게 주는 고통도 크겠지만 종편 4사가 시장에서 받는 고통도 많다. 본격적으로 좋은 놈과 나쁜 놈이 구분되는 시점이 지금이라고 생각한다. 정확하게, 좀 더 디테일하게 지목하고 호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최소한 하나는 정리해야 한다”며 “이게 방송시장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최민희 민주당 의원은 “퇴출 명분은 이미 쌓여 있다”고 말했다. 최진봉 교수는 “방통위는 승인조건을 위반하고, 시정명령조차 이행하지 않고 있는 종편에 대해 승인 취소, 영업 정지, 승인기간 단축을 당장 명령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성철 교수는 “세계에 유례가 없는 종합편성채널이라는 한국만의 장르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며 “종편을 못 하겠다면 보도채널로 돌리거나 아예 종편을 못하게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재승인 심사는 대학으로 치면 호봉 승급 심사가 아닌 ‘재임용 심사’다. 요건과 점수를 못 채우면 무조건 탈락이다. 논문을 많이 썼더라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면 탈락 사유가 된다. 종편은 하자가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지속가능성이다. 지금 종편의 상황을 보면 지속가능성이 떨어진다. 근본적인 수술이 있지 않는 한 네거티브한 평가를 해야 한다. 모든 종편이 훌륭하지 않다. 과감하게 퇴출, 탈락시켜야 한다. 조건부 재승인은 안 된다.” (김성철 교수)

한편 민주당 공정언론대책특위는 지난 2월 한 달 동안 종편을 모니터한 결과, 종편이 야당을 폄훼하거나 반대로 박근혜 대통령을 ‘극찬’하는 편파보도가 24가지나 된다고 발표했다. 박 대통령 의상과 첫사랑, 강아지에 의미를 부여한 사례도 있었다. 허영일 부대변인은 “최근 JTBC의 올바른 보도태도는 반가운 일이지만 아직 다수의 종편은 ‘종북좌파’ 운운하면서 야권을 몰아세우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낯 뜨거울 정도의 찬양을 일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성남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종편의 편파방송을 지적하며 “사회적 갈등의 생산자 역할을 하면서 매체력을 확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강 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그렇게 좋다고 하더라도, 진영논리로 (박 대통령을) 추켜세우고 싶더라도 ‘친박’ 성향의 방송내용을 보면 ‘천박’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며 “(사회자가 패널이) 사심을 있는 대로 떠드는 종편을 보면 마치 언론계 깡패가 마음대로 떠드는 것으로 느낀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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