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집회에서 정치인도 연행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는 이성한 경찰청장의 발언과 관련해 조선일보가 사설에서 이 청장의 발언을 두둔하는 논리를 펴 "언론이 공안탄압에 일조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조선일보는 8년 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주도한 사학법 반대 대규모 장외집회 때는 이 같은 비판을 하지 않아 이중잣대라는 지적도 사고 있다.

이성한 경찰청장은 지난 4일 경기지방경찰청 기자간담회에서 “그동안 신변보호조를 만들어 (집회 현장에서 정치인을) 보호했다. 그러다보니 불법행위를 보호해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었다”며 “현장에서 (정치인을) 격리시키거나 상황에 따라서는 연행하는 방법으로 정치인을 보호하는 방안을 깊이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청장은 앞서 3일 경찰청 기자간담회에서도 "정치인 등 주요 인사도 시위 현장에서 주로 보호를 해주는 방식이었지만, 법질서를 위반하면 연행하는 방안을 생각해보겠다"고 말했다. 4일 '보호'라는 명목을 붙이긴 했지만 실질적으로 의원도 예외없이 연행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 야당 의원들이 지난해 12월 22일 오후 민주노총 건물 앞에서 연좌 농성을 진행중이다. 사진= 이하늬 기자
 
그러나 이 발언은 헌법상 집회시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대법원 판례는 미신고 집회의 경우도 공공의 질서에 명백한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 한 해산을 명할 수 없도록 했다. 또 대법원은 집회 신고와 관련해서도 “신고는 행정관청에 협력하도록 하는데 의의가 있는 것으로 집회의 허가를 구하는 신청으로 변질되어서는 안된다“고 판결했다.

집회 현장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정치인'들도 이 같은 점을 지적했다. 박원석 정의당 의원은 5일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실질적 위법성을 따져보지도 않고 경찰이 위법이라고 규정하면 현장에서 모두 연행하겠다는 것”이라며 “집회시위결사의 자유를 헌법에서 보장하는데, 청장이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무지의 소치”라고 비판했다.

김재연 통합진보당 의원도 인터뷰에서 “집회는 신고제이지 허가제가 아니다. 기본권을 누려야 할 시민들은 경찰이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않아야 하냐”며 “그렇다면 집회를 아예 못 하거나, 불법임을 감수하고 집회를 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달 25일 민주노총 총파업 집회도 행진을 신고했으나 경찰은 변호사에게 최루액을 뿌리고 해산명령을 내렸다.

이 청장의 이 같은 발언은 사실상 ‘정권 눈치보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동영 민주당 상임고문은 5일 인터뷰에서 “과잉충성”이라며 “정권에 상관없이 법집행이 돼야 하는데 자의적으로 정권의 공안통치에 맞춰 법을 집행한다. 박 대통령 비위 맞추기”라고 말했다.

장하나 민주당 의원은 “대법 판례에도 이 청장의 이번 발언은 박근혜 정부의 행정권력이 확실히 입법부와 사법부 위에 군림하려는 의지의 반영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 조선일보 5일자 사설
 
그러나 조선일보는 5일자 사설에서 이 청장의 발언을 옹호했다. 조선일보는 5일 ‘불법 시위 국회의원 연행 경찰청장이 뭇매 맞고 해내야’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경찰이 국회의원들은 손도 못 대면서 일반 시위대한테만 불법 시위를 진압하겠다고 나서면 시위대가 경찰의 공권력 행사를 우습게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조선일보는 하원의원 8명을 연행한 미국 경찰의 사례를 인용하며 “우리 경찰이 만일 미국 경찰처럼 불법 시위 국회의원들을 수갑 채워 연행하게 되면 처음엔 의원들이 우르르 경찰청장 방에 몰려가 호통치고 삿대질”하겠지만 “경찰청장이 꿋꿋하게 버티면 대한민국 공권력을 보는 국민의 눈이 몰라보게 달라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법 판결에 어긋나는 주장을 언론이 옹호한 것이다.

이에 대해 장하나 의원은 “미국은 합의한 집회시위를 벗어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체포한다. 하지만 이는 그 전에 시민들의 집회시위 권리를 제대로 보장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조처”라며 “미국은 한국처럼 경찰이 자의적으로 집회 금지 조치를 못하게 돼있다. 조선일보 사설은 의도적으로 한쪽 면만 다루면서 공권력 강화를 마치 ‘선진 민주주의 원칙’인 것처럼 제시했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가 “국회의원들의 행위는 공무집행 방해였지만 경찰은 국회의원들을 어쩌지 못했다” “국회의원들이 시위대 맨 앞에서 경찰의 진입을 가로막았지만 그때마다 경찰은 속수무책이었다” 등의 표현을 사용하며 국회의원을 비난한 것과 관련, 의원들은 “정치인이 연행되지 않는 것은 특권이어서가 아니라 의정활동”이라고 반박했다.

김재연 의원은 “의원이 연행되지 말아야 한다는 법은 없다. 하지만 의원은 가장 갈등이 첨예한 현장에서 국민들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박원석 의원도 “의원이 집회에서 쇠파이프로 경찰을 폭행한다면 연행을 해야 한다”며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오히려 용산참사부터 민주노총 침탈까지 무리한 공권력 집행이 한두번이 아니다. 무리한 공권력 행사를 감시하기 위해 의원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지난 2006년 초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와 의원들이 사학법 반대 투쟁에 나섰을 당시 이같은 비판을 하지 않았다.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은 1만 5000여명의 시민들과 함께 시청광장에서 동아일보 방향으로 30분간 가두행진을 벌였지만, 조선일보에서 비판기사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정동영 상임고문은 "독일 언론이 한국 언론을 '정권의 애완견'이라고 표현을 했다. 참 부끄러운 일"이라며 "겉만 언론이고 속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휘둘리는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장하나 의원은 "당시 조선일보는 좋은 태도였다고 본다. 폭력이 발생하지 않은 평화로운 집회라면 어떤 비판도 할 수 없는게 맞다"며 "그런 점에서 이성한 청장의 발언을 옹호한 이번 사설은 민주국가의 헌법 개념도 없는 것에 불과하다. 언론들이 이런 반헌법적 공안정국 구성에 한몫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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