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5일, 인천시장에 출마하는 유정복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능력 있는 사람이 당선됐으면 하는 게 (국민의) 바람일 것”이라며 “결단을 했으면 잘 되기를 바란다”고 말해 선거법 위반 논란에 휩싸였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지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총선을 앞두고 “열린우리당이 잘 됐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당시 한나라당 등이 선거법 위반이라며 노 대통령을 탄핵 한 바 있다. 10년 뒤 새누리당과 민주당 모두 당시 본인들의 입장을 번복하는 모습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지만 대통령의 선거법 논란 발언은 그만큼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이슈다.

그런데 정작 지상파 방송에서는 이 소식이 전해지지 않았다. 방송사 가운데는 SBS가 이 문제를 언급했고, JTBC <뉴스9>는 기사는 물론 유정복 장관 인터뷰 때도 이 문제를 다뤘다.

주요 일간지들도 마찬가지로 이 논란을 다뤘다. 조선일보에서도 여야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알렸다. 그런데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이 소식을 다루지 않았다. 지방선거를 얼마 안남기고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논란으로 5일 국회가 떠들썩했지만 몇몇 언론들이 이 이슈를 외면한 것이다.

서울신문은 대통령의 선거중립 훼손논란이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키는지도 보도했다. 서울신문은 4면 <“열린우리당 압도적 지지를” 발언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파동 불러> 기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 당시 파장과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의원과 청와대에서 단독 비공개회동을 열었을 때도 논란이 됐던 사실을 보도했다.

   
▲ 2014년 3월 5일자. JTBC <뉴스 9> 화면 갈무리.
 
JTBC 역시 이 소식을 자세히 전했다. <뉴스9> 첫 보도인 ‘남경필·유정복 출마…의원도 장관도 속속 링 위로’에서 손석희 앵커가 “오늘(5일) 사퇴한 유정복 전 안행부 장관이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을 전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의 선거개입 논란이 일고 있다”고 알렸다. 이어 아예 유정복 장관과 스튜디오 인터뷰를 진행하며 이 논란에 대한 생각을 직접 묻기도 했다.

SBS는 유 장관의 출마소식을 전하면서 “이에 대해 민주당이 선거 중립 의무 위반이라고 주장하며 선관위에 유권해석을 의뢰하겠다고 나서자 새누리당은 기본적인 덕담을 건넨 것을 정치공세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반박했다”고 전했다.

한겨레는 사설 <‘민생 대 정치’ 대결구도의 허구>에서 “박 대통령의 논리대로라면 민생을 내팽개치고 정치로 달려간 유 장관을 엄히 질책해야 마땅할텐데 오히려 박 대통령은 선거중립 의무를 저버리면서까지 그를 격려했다니 참으로 기가 막힌다”고 비판했다. 경향신문도 <장관·공공기관장 징발이 선거 정상화인가> 사설에서 “‘중요한 지역’ 인천의 선거에 나서는 유 장관을 대놓고 격려·지원한 꼴”이라며 “명백히 선거개입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그런데 KBS는 그렇게 보지 않는 모양이다. <뉴스9>에서 8번째 꼭지인 ‘여야 중진 각축…지방선거 수도권 대진표 윤곽’ 보도에서 “유 장관은 선거 성패가 국정운영에 중요하다면서 박근혜 대통령도 잘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 말이 선거법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은 보도하지 않았다.

   
▲ 2014년 3월 5일자. KBS <뉴스 9> 화면 갈무리.
 
KBS가 이 발언에 대해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단했을지 몰라도 최소한 여야가 이 문제를 놓고 대립하고 있다는 사실은 보도했어야 했다. 실제로 5일 민주당은 당 대변인과 사무총장까지 나서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했다. 민주당이 선거관리위원회에 대통령의 발언이 선거법 위반인지 서면질의까지 한 상황에서도 KBS는 이를 외면했다.

MBC는 대통령이 이런 말을 했다는 보도를 하지 않았다. 유정복 장관의 출마소식을 전하면서도 이 부분을 제외한 것이다.

KBS는 이날 뉴스 13번째 꼭지에서 수신료 관련 리포트를 했다. KBS는 “KBS는 수신료가 34년째 동결되면서 광고 비중이 더 높은 왜곡된 재원 구조를 갖고 있다”며 “상업성과 선정성에서 벗어난 공영방송의 명품 콘텐츠 뒤에는 든든한 수신료가 자리 잡고 있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논란이 된 발언조차 아무 이상 없다는 듯 전달하는 KBS, 그들이 제작하려는 ‘명품 콘텐츠’가 무엇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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