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를 비하하는 욕설이 인터넷 게시물에 올라왔다. 방통심의위가 바로 삭제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방통심의위 통신심의의 ‘함정’에 빠져 있는 셈이다. 해당 사안에 대한 심의는 실제로 있었다. 방통심의위 통신심위소위는 지난 1월 23일 위안부를 ‘창녀’로 표현하는 게시물 37건에 대해 시정요구(삭제)했다.

하지만 이번 심의는 두 가지의 문제점이 있었다. 첫째, 해당 게시물을 올린 당사자에게 심의 사실 자체를 알리지 않았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시행령’ 8조에 따르면 방통심의의로부터 시정요구를 받은 당사자는 15일 이내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도록 돼 있지만 심의 사실 자체를 알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박경신 위원은 이를 두고 “통신심의 회의록을 공개하지만 정작 게시자에게는 통지하지 않으니 ‘비밀 검열’이 이뤄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면서 “헌법상에 따르면 국민이 올린 글을 정부가 삭제할 때는 반드시 이를 알려줘야 하지만 관련 규정이 없어 비밀주의로 흐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둘째, 해당 게시물이 어떤 법령을 위반했는지에 대한 근거가 부족했다. 당시 회의록을 보면, 박 위원은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 제8조에 있는 내용을 보면 고등법원에서 인정한 집단 모욕죄 등이 인정될 수 있는데 제6조(헌법에 반하여 역사적 사실을 현저히 왜곡하는 정보)의 경우 불법정보라고 할 만한 해당 법률 조항이 없다”고 지적했다. 사법부에서 판단하는 ‘불법정보’의 범주보다 방통심의위의 범주가 더 넓은 셈이다.

그렇다면 ‘무허가 숙박업’에 대한 게시물은 바로 삭제해도 될까. 공중위생영업(숙박업) 신고를 하지 않은 사업자가 오피스텔에서 숙박시설 및 설비 등을 갖추고 객실예약정보 및 요금, 이용방법 등을 제공하는 내용에 대해 통신심의소위는 지난 1월 16일 ‘이용해지’를 의결했다.

하지만 비판이 제기됐다. 심의위원들이 관련 법률인 공중위생관리법에 대한 전문성도 없고, 해당 구청이나 경찰에서 단속하고 있는 사안임에도 방통심의위가 ‘일방적으로’ 시정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김보라미 변호사는 “도박, 불법 식의약품, 권리침해, 불법문서 위조 등에 대해 방통심의위가 무슨 수로 불법성과 유해성을 판단하나”라고 지적했다.

장여경 진보넷 활동가도 “페이스북 게시물의 명예훼손 여부에 대해 판단하려면 당사자들의 의견을 들어야 하고, 피해자가 공인인지, 사안이 공적인지, 게시자가 비방할 의도를 가졌는지에 대한 법적인 판단이 필요한데, 방통심의위는 느낌으로 이를 판단한다”고 비판했다. 방통심의위가 심의할 수 없는 영역에까지 심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는 얘기다.

미디어오늘이 방통심의위로부터 받은 정보공개 청구 부분 공개 결과에 따르면, 방통심의위는 지난 2008년부터 2013년까지 6년간 총 30만3553건에 대해 삭제·이용해지·접속차단 등을 했다. 시정요구 건수는 매년 늘었다. 2008년 15,004건, 2009년 17,636건, 2010년 41,103건, 2011년 53,485건, 2012년 71,925건, 2013년 104,400건 등으로 6년간 약 695% 폭증했다. 방통심의위가 시정요구한 위반내용은 도박, 불법 식·의약품, 성매매·음란, 권리침해, 불법명의거래, 불법문서위조, 장기매매, 지적재산권, 국가보안법위반, 기타 등이다.

방통심의위의 무차별적인 통신심의는 이미 국제기구로부터 여러 차례 지적받은 바 있다. 국제 언론감시 단체인 국경없는기자회(RSF)는 ‘2012년 인터넷 적대국(The Enemies of the Internet)’ 보고서에서 한국을 인터넷 감시국으로 분류했다. RSF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의한 게시물 삭제 요청이 급증했다”면서 “(방통심의위의) 기구 특성상 (삭제 요청의) 처리 과정도 불투명하다”고 지적했다. 프랑크 라 뤼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에 관한 특별보고관’은 방통심의위에 대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의위)가 사실상 검열기구로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관련 전문가들도 이렇게 전방위적으로 심의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장여경 활동가는 “터키와 같은 종교 국가를 제외하고는 이런 행정 심의를 하는 국가는 대한민국밖에 없다. 호주의 경우 아동 포르노그래피로 심의를 제한하고 있다”면서 “나머지 사안의 불법성 여부에 대해서는 법원에서 판단한다”고 말했다.

방통심의위의 통신심의는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방통심의위는 “시정요구는 권고사안일 뿐”이라면서 논란을 피해가고 있다. 방통심의위 측은 자신들을 ‘대통령 직속 민간기구’라고 규정하며, 시정요구는 강제사항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방통심의위는 임순혜 위원 해촉에 대한 행정소송에서도 “방통심의위는 행정기관이 아니다”면서 행정소송 대상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방통심의위의 이 같은 태도는 “행정기관에 준하는 권한을 행사하면서 정작 기본권 침해에 대한 법적 책임을 피하려는 꼼수”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장여경 활동가는 “방통심의위가 시정요구 공문을 10여개 포털 사업자들에게 보내면 그대로 관철된다. 사실상 행정기관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지난 2010년 방통심의위의 인터넷 심의를 합헌이라고 결정하면서, 방통심의위에 대해 “심의위의 설립, 운영, 직무에 관한 내용을 종합하면 공권력 행사의 주체인 국가행정기관”이라고 규정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이유로 ‘강제성’으로 인해 기본권 침해가 발생하고 있는 “방통심의위의 통신심의를 폐지하고 방통심의위를 민간기구로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일부에서는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에서 그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다. KISO는 최근에도 ‘온라인 공간에서의 차별적 표현 완화를 위한 정책결정’을 발표하고, 지역·장애·인종·출신국가·성별·나이·직업 등으로 구별되는 특정 집단에 대한 차별적 표현 게시물이 유통되는 것을 인터넷사업자가 알게 되면 이를 삭제조치 할 수 있도록 결정했다. 일본의 경우에도 자율규제로 이뤄지고 있다. 이동통신사, 포털 사업자, 학자, 전문가로 구성된 콘텐츠 모니터링 기구(EMA)가 있으며, 정보문화개선을 위한 자율기구인 ‘인터넷안심촉진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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