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와 뉴스를 조합한 ‘하이브리드 매체’ 허핑턴포스트(아래 허포) 코리아가 지난달 28일 한국에서 창간했다. 그러나 콘텐츠가 빈약하고, 뉴스 유통 전략 부재 등 준비가 덜 됐다는 혹독한 평가를 받았다. 허포는 기존 언론과는 다른 새로운 매체라고 강조했지만, 아직까진 큰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가장 지적받는 건 콘텐츠의 질이다. 2011년 뉴욕타임스의 순방문자수를 제쳤고, 2012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국제적 매체의 국내 진출이라 큰 관심을 모았지만 ‘실망스럽다’는 게 업계의 지배적인 반응이다. 대부분 짧고 평범한 인용보도이며, 한국 언론의 문제점에 대한 혁신적인 대안을 보여주지도 못했다는 지적이다.

허포의 창간 첫날 머리기사는 미세먼지 문제를 다룬 ‘서울, 28년 후’다. 그러나 이 기사는 SBS, 아시아경제, 연합뉴스, 서울경제 등 기존 언론보도를 조금씩 인용해 요약하는 형식을 취했다. 허포 코리아 기자가 직접 취재한 새로운 정보는 포함되지 않았다.

미국에 거주하는 김낙호 미디어연구가는 “원래 허포가 미국에서 가장 널리 힘을 얻은 건 심층보도와 블로그보다 인용요약기사를 통해서”라며 “다만 미국에서는 정말 사람들이 관심 기울일만한 사안으로 정확히 캐치하는 걸로 특화했는데, 한국에서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 허핑턴포스트 코리아 3월 5일 첫 화면
 
창간 후 5일이 지났지만 다른 보도의 형태도 대부분 비슷하다. 연합뉴스를 그대로 전재한 기사도 다수 포함됐고, 허포 소속 에디터가 직접 작성한 기사도 형식이나 내용적으로 기존 스트레이트 기사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한국 언론 문제에 대한 대안을 기대했으나 "실망"

미디어 업계 관계자들이 허포 코리아 콘텐츠에 실망하는 이유는 한국 언론과는 다른 형태의 저널리즘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존 기사를 요약 혹은 전재하는 방식은 ‘출처도 밝히지 않는 인용보도’(한 언론에 따르면)가 넘쳐나는 한국 언론에서 그리 새롭지 않다.

블로거 ‘들풀’은 “(허포 코리아는) 깊이보다는 잡다한 아이템을 다 끌어들이는 잡화상을 택했고, 그 중에는 본문이 서너 줄에 불과한 아이템들도 있다”며 “이것은 '충격, 경악' 같은 말만 쓰지 않았을 뿐, 새로운 유형의 낚시라고 할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기존 한국 언론의 관점에서 보면 해당 매체가 직접 취재하지 않고, 다른 언론사의 기사를 인용하는 건 크게 인정받지 못한다. 기사의 내용이 비슷하더라도 전혀 새로운 관점으로 주제를 다뤘다면 모르지만 지금까지 나온 허포 코리아의 기사는 여기에 해당되지도 않는다. 예를 들면 2013년 6월 미국 허포가 머리기사에 오바마 대통령과 부시 전 대통령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을 걸고, 미 국가안보국(NSA)의 무차별적인 개인정보 수집을 비판한 것 같은 기사는 눈에 띄지 않는다.

   
▲ 미국 허핑턴포스트는 2013년 2월 총기사건 희생자 100명의 사진을 첫 화면 머리기사로 내보냈다.
 
블로거도 새롭지 않아… "전두환, 이명박 전 대통령 정도 섭외해야"

허포 콘텐츠의 한 축을 담당하는 블로그의 수준도 마찬가지다. 허포 코리아는 창간일 김문수 경기도지사, 심상정 정의당 의원, 만화작가 강풀 등의 글을 게재했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기존 언론에서 만나기 어려운 인물들도 아니고, 글 내용도 한국 사회에 큰 울림을 주거나 화제가 될 만하지 않았다. 이전에 나왔던 글들과 비슷하다는 의미다.

물론 한국엔 아리아나 허핑턴 회장 같은 이가 없지만, 그가 블로거로 섭외한 오바마 대통령, 노엄 촘스키 교수,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가수 마돈나, 배우 마이클 더글러스 등과 비교하면 허포 코리아의 블로거는 크게 신선하지는 않다. 일각에선 전두환, 이명박 전 대통령 수준의 블로거를 섭외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최진순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겸임교수(한국경제신문 기자)는 “허포가 미국에서 초기에 안착할 수 있었던 것은 정가나 지식사회에 파장을 불러 모을 수 있는 스토리들이 블로거들에 의해 터져 나왔기 때문”이라며 “현재의 필자들 그리고 현실정치, 지식인들의 태도를 볼 때 경쟁력 있는 콘텐츠로 승부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했다.

성격이 겹치는 매체가 한국에 이미 존재

허포가 내세운 강점이 네이버 등 포털의 역할이나 기존 매체의 성격과 겹친다는 것도 문제다. 김도훈 공동편집장은 창간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인터넷 매체와 달리 새로운 플랫폼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다”며 “이용자들이 많은 권한을 갖고 새로운 커뮤니티를 구성하는 일종의 아고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기존 매체와 무엇이 다른지 아직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정리하면 허포의 특성이 한국 온라인에선 그리 새롭지 않고 경쟁자가 너무 많다. 미국에서 허포가 인기를 끈 이유는 재밌고, 유용한 기사를 모아 보여주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네이버 등이 그 역할을 하고 있으며 ‘뉴스 소비는 포털’이라는 견고한 이용자 경험이 구축된 상태다.

게다가 한국 독자들에겐 블로그 기반의 매체라는 것이 신선하지도 않다. 여러 메타 블로그가 존재하는 것은 물론, 블로그를 기반으로 하는 언론 매체도 많다. 비슷한 성격으로 블로그와이드, 블로터닷넷, 슬로우뉴스 등이 있으며 2002년 창간한 오마이뉴스는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다”라는 인식과 경험을 제공했다. 오마이뉴스엔 현재 7만7천여명의 시민기자가 있으며, 독자들은 시민기자가 쓴 기사도 전업 기자가 쓴 기사와 동일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또한 허포의 특성은 기존 매체들과 비슷하다. 이슈가 될 만한 기사를 빠르게 인용보도하는 매체로는 뷰스앤뉴스가 있다. 허포 코리아는 “사건 사고만이 뉴스는 아니다. 인생은 뉴스로 가득하다”라는 광고 카피를 내세우며 생활기사를 강조했지만 오마이뉴스엔 이미 생활기사가 가득하다. 재밌는 생활사진이나 독특한 이야기 등을 사회관계망(SNS)를 통해 널리 확산시키는 건 위키트리가 잘하고 있다.

   
▲ 2013년 검색엔진 유입률 ⓒ에이스카운터
 
허포 SEO가 통하지 않는 나라… "네이버에 맞춰서 유통해야"

무엇보다 허포 코리아가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은 네이버다. 한국은 구글의 검색 점유율이 현저하게 낮은 전 세계 몇개 안되는 나라 중 하나다. 코리안클릭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기준 PC 검색 점유율은 네이버 74.1%, 다음 20.2%, 구글 3.5% 순서다. 모바일에서 구글의 점유율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지만 사실상 네이버가 국내 뉴스 유통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허포의 큰 강점은 구글에 맞춰진 SEO(검색엔진 최적화)다. 이를 통해 유럽, 일본 등에서도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한국은 허포의 무기가 통하지 않는 시장이다. 이와 더불어 허포 코리아는 신생 매체이기 때문에 네이버, 다음 등과 아직 검색제휴를 맺지 못했다. 다음은 창간 후 2년이 지나야 검색제휴를 신청할 수 있다. 네이버는 이런 기준은 없지만 분기 별로 있는 심사기간까지 기다려야 검색제휴 신청이 가능하다. 현재 허포 코리아가 뉴스 유통시장에서 기댈 수 있는 곳이 SNS뿐이다.

허포는 미국에선 크게 성공했고, 캐나다와 영국 등 영어를 기반으로 하는 나라에선 기사 공유를 통한 직접적인 시너지 효과도 내고 있다. 그러나 독일과 프랑스 등 그렇지 않은 나라도 있다. 나라별 미디어 시장의 특성과 독자들의 반응이 다르기 때문이다. 조영신 SK경영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똑같은 플랫폼을 쓴다고 해서 모든 시장에서 동일하게 작용하지는 않다”며 “현지 시장에 최적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른 전문가들도 한국에 맞춘 현지화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최진순 교수는 “인터넷신문이 가장 많은 곳 중 하나인 한국에서 살아남으려면 이용자의 경향, 속보 중심의 뉴스 유통시장의 특성 등에 대한 면밀한 파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낙호 연구가는 “허포가 네이버에도 최적화된 검색전략을 개발하는 게 관건”이라며 “예를 들어 일상의 생활정치 등 한국 상황에 필요한 토픽에 특화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용석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교수는 “허포는 미국에서 브랜드 인지도가 굉장히 높아서 ‘주목의 경제’가 가능하다. 그러나 한국에선 허포를 잘 몰라서 검색에 노출이 되어도 클릭률은 상당히 낮을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의 ‘르몽드 허포’처럼 ‘한겨레 허핑턴포스트’로 전향적으로 제휴를 해야 브랜드 파워가 강화되고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권복기 허핑턴포스트 코리아 공동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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