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친다. 후보자들의 정보를 유권자들에게 전달하는 통로이기 때문이다. 불편부당의 원칙은 최소한 선거에서만큼은 확실해야 한다. 유권자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주면 왜곡된 투표결과를 낳을 수 있다. 때문에 선거관리위원회도 선거에 대한 언론의 보도는 특별 관리하고 있다.

공영방송이라면 불편부당의 원칙은 반드시 수호해야 한다. 그런데 4일, KBS와 MBC의 지방선거 관련 보도를 보면 편향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불과 90초 가량의 짧은 리포트에서 그들이 이번 선거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어떻게 개입하고 있는지 그 일단을 엿볼 수 있다.

4일은 그동안 나온다, 안 나온다 했던 후보들이 일제히 출마선언을 한 날이다. 새누리당에서는 유정복 행정안전부장관이 인천시장 후보로 출마를 선언했고, 남경필 의원도 경기도지사에 나서겠다고 밝혔다.(남 의원은 5일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원희룡 전 의원도 곧 제주지사에 출마할 것이란 소식이 들렸다.

야권에서는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공식 출마를 선언하고 교육감직을 사퇴했다. 김 교육감을 포함해 새누리당에서 출마하겠다고 밝힌 인사들, 이들 모두 이번 지방선거에 큰 영향을 미칠 만한 후보들이다. 그런데 공영방송 보도만 보면 어딘가 균형이 맞지 않다.

   
▲ 2014년 3월 4일 KBS <뉴스9> 화면 갈무리
 
KBS는 <뉴스9>를 통해 김상곤 교육감 출마소식을 먼저 다뤘다. 하지만 보도의 내용은 김 교육감의 출마선언이 아니다. KBS는 2번째 리포트 <신당 창당 속도…지분 ‘5:5 배분’ 신경전>에서 아래와 같이 보도했다.

“창당 5:5 비율을 놓고 민주당은 신당 추진단 구성만 동수를 인정한다는 입장이지만 새정치연합은 신당 지도부 구성과 지방선거 공천에서도 동등한 대우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급기야 새정치연합 김효석 공동위원장은 민주당이 진정으로 개혁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신당 창당이 무산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습니다. 이에 따라 양측은 신당 선언이후 처음으로 내일 지도부 상견례를 갖고 창당 작업에 대한 원칙을 재확인할 예정입니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 합당작업을 하고 있지만 뭔가 삐걱거린다는 뉘앙스다. 물론 합당 진행 중에 여러 가지 상황은 발생할 수 있다. 문제는 이 리포트 말미에 김상곤 교육감의 출마소식을 다뤘다는 것이다. 합당 작업이 잘 안 되는 상황에서 ‘안철수가 밀었던’ 김상곤이 나왔다는 내용이다.

“이런 가운데 안철수 위원장이 영입에 공을 들였던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오늘 신당 후보로 경기지사에 출마할 의사를 밝혔습니다.”

   
▲ 2014년 3월 4일 KBS <뉴스9> 화면 갈무리
 
반면 유정복 장관과 남경필 의원의 출마소식은 어떻게 전해졌을까? KBS는 3번째 리포트 <새누리, 유정복·남경필 등 중진 속속 출마 의사>에서 다음과 같이 보도한다.

“이런 야권 움직임에 새누리당은 오늘도 총공세를 펴서 기선 제압에 주력했습니다. 유정복 장관과 남경필 의원 등 중진들이 내일 잇따라 출사표를 던질 걸로 보입니다.”

야권이 합당을 선언했지만 지지부진한 가운데, 새누리당에서는 중진들이 차질없이 출마한다는 뉘앙스다. 더 노골적인 것은 KBS 보도 내용이다.

“새누리당은 신당에 대한 기선 제압과 함께 내부적으론 필승전략 마련에 골몰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그동안 뜸을 들였던 중진들이 속속 출마로 돌아섰습니다.”

이른바 중진들의 잇따른 출전이 지지부진한 신당에 대한 기선제압이자 ‘필승전략’이라는 내용의 보도다. 서울시장은 물론, 인천시장, 경기지사 등 새누리당 역시 당내 경선을 치러야 본선에 올라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영방송인 KBS가 이들의 출마를 ‘새누리당의 필승전략’이라는 뉘앙스로 보도한다면, 야권 후보 뿐 아니라 여권의 타 후보들에 대해서도 공정한 보도가 아니다.

   
▲ 2014년 3월 4일 MBC <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
 
MBC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MBC는 김상곤 교육감, 유정복 장관 등의 출마 선언을 한 꼭지 안에서 다뤘다. 그런데 각각의 후보에 대한 상황묘사가 모호하게 다르다. 유정복 장관에 대해서는 “유정복 안전행정부장관은 ‘새누리당과 나라를 위해 기꺼이 몸을 던지겠다’며 인천시장 선거 후보로 나서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습니다”라고, 남경필 의원에 대해서는 “경기도지사 출마의사를 이미 밝힌 원유철 의원은 황우여 대표를 만나 권역별 경선을 제의했고, 정병국 의원은 ‘멋진 경쟁을 펼치겠다’고 밝혔습니다”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김상곤 교육감을 대하는 MBC의 태도는 다르다. MBC는 김 교육감에 대해 “출마를 준비해온 민주당 김진표·원혜영 의원은 환영의사를 밝히면서, ‘정정당당한 경선’을 강조해 김 교육감의 전략공천 가능성을 견제했습니다”라고 보도했다. 새누리당은 잘 돌아가는데, 야권신당에 대해서는 반발의 분위기를 전한 것이다. 김상곤 교육감은 이미 “야권의 경선룰에 따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KBS와 MBC의 리포트를 본 사람 가운데는 “저것 봐, 야권은 맨날 싸움질이야”라고 할 수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KBS 보도를 본 사람이라면 새누리당 후보들을 보고 “거물이 나오는 구만”이라고 할 사람도 있을테고, MBC 보도를 본 사람이라면 “새누리당은 그래도 조용하네”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직 지방선거는 ‘출마선언’ 단계다. 하지만 벌써부터 공영방송들은 ‘선거전’에 돌입하기 시작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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