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관 대선개입으로 사태를 규탄하고 철도노조 파업 사태에 앞장서 중재에 나섰던 불교계가 현 정부의 민생과 복지, 농업 정책 등에 대해서도 비판하고 나서 주목된다.

대한불교조계종 노동위원회는 4일 박근혜 대통령까지 국무회의에서 언급한 ‘세 모녀 자살 사건’에 대해 앞서 지난달 28일 낸 성명에서 “한 사람이 태어나서 배고프지 않고 최소한의 거주 공간에 살면서 몸이 아프면 치료받을 수 있는 것은 국가 구성원으로서 권리이며, 국가의 의무”라며 “정부와 국회는 기초연금과 장애인 연금 현실화, 중증 환자 의료보험, 노동력 상실자의 복지 등의 입법제도를 서둘러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계종 노동위는 “세 모녀의 죽음은 끼니 걱정 속에 아파도 병원에 못 가고, 비정규 단기 고용을 전전하다가 빚과 생활고에 찌들다가 끝내 생을 마감하고 마는 사람들의 숫자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지만, 한쪽에선 단기 순이익이 몇 조이고, 성과급이 몇천이고 하면서 백화점 고가 물건들이 불티나게 팔려 나가는 한국사회의 서글픈 자화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양한웅 조계종 노동위원회 집행위원장은 4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근본적으로 이 문제는 정부가 기초연금 등 공약을 안 지키며 복지가 대폭 후퇴되면서 복지 사각지대 있는 사람들이 노동력을 상실할 경우 대책이 전무함을 보여준다”며 “가난하고 힘없고 소외된 계층에 대해 역대 정부에서 손 놓고 있었지만, 이명박정부 때 기초수급대상자의 기준이 엄격해져 많이 탈락한 데 이어 박근혜정부에서 더 심하게 복지가 후퇴되고 있어 절망스럽다”고 말했다.

양 위원장은 이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용이 불안해 실직하거나 다치면 실업수당도 없고 아예 죽음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데도 이들에 대해 정부가 어떤 대책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너무나 잘못”이라며 “힘 있는 사람들과 대기업이 노동자에게 더 많이 베풀어야 하지만 갈수록 비정규직 노동자와 주변부 노동자들은 극복할 수 없는 간극에 좌절하고 있어, 대폭적인 복지 확대 없이는 비극이 심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한불교조계종 승려 1012인은 지난해 11월 28일 오전 서울 견지동 조계사 대웅전 앞에서 '박근혜 정부의 참회와 민주주의 수호를 염원하는 시국선언'을 했다. 사진=이치열 기자
 
아울러 조계종 교육원(원장 현응스님)은 지난달 28일 ‘조류독감과 살처분’을 주제로 교육아사리 포럼을 개최하고 정부의 가축동물에 대한 살처분 방역 대책에 대해서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날 포럼에서 원영스님은 “가축 살처분 문제는 불살생이라는 종교적 계율만을 앞세울 수 없는 사회적·국가적 문제로, 가축을 경제적 수단으로만 여기거나 동물 살생 행위에 무관심하다면 소득 수준이 아무리 높아져도 문화·윤리적으로는 야만국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면서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는 지금의 무차별적 살처분 관행을 재검토하고 효율적인 사전 방역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처럼 불교계가 복지와 민생 등 국민이 당면한 현실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분위기에 대해 최연 정의평화불교연대 공동대표는 4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세 모녀가 죽음을 선택하게 된 배경에는 박근혜 정부가 내걸었던 경제민주화와 기초연금 대상자 모두에게 20만 원을 준다던 복지 공약들이 물 건너가고, 서민의 삶 자체가 더욱 더 궁핍해진 현실이 있다”며 “대선 전에 진보적 정책들로 포장한 약속이 역행을 넘어 용도 폐기되고 전방위로 후퇴하면서 국민이 느끼는 고통은 갈수록 커졌고 종교가 해야 할 역할도 훨씬 더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최 대표는 “국가기관의 개입한 총체적인 부정선거로 정통성을 상실한 박근혜 정부가 정통성을 유지·존속하기 위해 종북몰이와 공안통치를 계속하고 있어, 이에 정면으로 도전하기 어려운 국면에서 민생과 생명에 관련된 종교계의 이슈에 종교운동이 구체화돼 가는 형국”이라며 “정부가 탄압하고 정치가 방기한 국민을 종교가 위로해 주는 민생투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기독교계에선 5일부터 다음 달 19일까지 사순절 기간 40일 동안 서울 중구 향린교회에서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사순절 연합새벽기도회’를 열 예정이다. ‘이명박 구속과 박근혜 사퇴를 위한 기독교 평신도 시국대책위원회’를 비롯한 40개 교회와 단체들은 매일 오전 6시 반부터 기도회를, 7시 반분부터는 을지로입구역 부근에서 팻말 시위를 벌인다.

안성용 기독교 평신도 시국대책위 집행위원장은 “이번 우리의 행동은 사순절 기간 내내 서울의 도심에서 아침에 진행한다는 점에서 그간의 정기적인 거리 시국기도회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라며 “군사독재 시대 이후 처음 시도되는 기독인들의 매우 강력한 행동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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