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가 성폭력 고소율이 줄었다는 통계를 전하며 ‘친고죄 폐지로 꽃뱀이 사라진 것’을 원인으로 꼽아 논란이 일고 있다.

세계일보는 지난 25일자 11면 기사 <성폭력 고소율 ↓…‘꽃뱀’ 사라졌나?>에서 “강간과 강제추행 등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며 수사기관에 접수된 고소가 크게 준 것으로 나타났다”며 전문가와 경찰의 말을 인용,“지난해 형법이 개정되면서 악의적 목적을 가진 이들에게 성폭력 수사 제도가 악용되던 부작용이 줄어든 데 따른 것”이라고 보도했다.

세계일보가 제시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하반기 수사기관에 접수된 성범죄 사건은 1만 6549건(잠정치)으로, 이중 피해자 신고가 38.7%(6404건), 탐문·정보가 15.4%(2546건), 여죄 9,9%(1640건), 고소 9.7%(1601건) 등 순이다. 이 가운데 고소사건이 전년 동기대비 5.9%(314건) 줄었다. 

세계일보는 “성범죄 민원이 준 것은 지난해 6월 폐지된 친고죄 및 반의사불벌죄 규정이 주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친고죄 및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수사에 착수하거나 혐의를 입증해도 처벌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 세계일보는 친고죄 및 반의사불벌죄가 “무고한 고소를 조장하는 배경이 됐다”며 “지난해 6월 법 개정 이후 성범죄 수사는 합의에 관계없이 끝까지 진행되게 됐다. 악의적 목적에 악용될 소지가 현저히 줄었고, 이 과정에서 자칫 무고죄가 밝혀질 위험부담도 생겼다”고 분석했다.

세계일보의 분석을 요약하자면 돈을 뜯어낼 목적으로 무고한 사람을 성폭력 혐의로 신고하는 이른바 ‘꽃뱀’들이 당사자들 간의 ‘합의’에 의해 수사가 중단되는 과거 제도(친고죄)가 없어지면서 무고한 신고를 하지 않게 됐고, 그래서 성폭력 고소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 25일자 세계일보 11면
 
하지만 세계일보 기사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서울장애인성폭력상담소 등으로 구성된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는 26일 낸 논평 <누구를 위한 ‘꽃뱀’ 타령인가>에서 “성폭력 고소 과정 중 합의한 사건은 무고라는 식의 잘못된 정보를 유포하고 일반화하는 억측성 내용을 담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는 친고죄 폐지로 고소율이 감소한 것은 당연한 현상으로, 이에 ‘꽃뱀’을 연관시키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이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는 “그간 친고죄는 피해자가 직접 고소를 해야지만 성폭력범죄에 대한 수사가 진행될 수 있다는 점에서 피해자에게 범죄 피해의 실체를 규명하는 책임을 지웠다. 가해자와 합의하고 고소를 취하하면 형사절차가 종결될 수 있어 가해자로부터 무리한 합의종용 등 또 다른 2차 피해도 야기했다”며 “친고죄 규정이 폐지됨에 따라 피해자가 직접 고소하지 않더라도 성폭력 범죄에 대한 인지수사가 가능하게 되었다. 즉, 성폭력 고소율이 감소한 것은 친고죄 폐지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고 밝혔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는 또한 세계일보 기사가 성폭력 사건 중 발생하는 ‘합의를 합의금을 받을 목적으로 하는 허위 고소’로 보고 있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손해배상의 의미로 정당하게 합의를 한 성폭력 피해자를 ‘꽃뱀’이라고 공격하는 경우는 가해자의 주장”이라고 강조했다. 성폭력 피해자가 고소 과정 중에 겪는 합의 종용, 협박, 많은 시간의 소요 등으로 사건을 마무리하려고 합의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합의를 원하는 피해자를 ‘꽃뱀’으로 보는 시각은 잘못됐다는 것.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는 경찰청에도 공개질의서를 보냈다. 이들은 기사에 쓰인 ‘성폭력 범죄의 주요 수사 단서별 현황’ 통계자료의 원본 문서를 공개하고 통계자료의 분석내용에 대해 경찰청은 어떤 입장인지 3월 5일까지 답변해달라고 요청했다. 질의서에는 경찰 관계자가 세계일보와 실제로 인터뷰 했는지에 대한 확인 요청도 담겨 있다.

이선미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 활동가는 28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성폭력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이 ‘성폭력 사건 합의는 꽃뱀’이라는 식의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 경찰 관계자가 실제로 세계일보와 인터뷰했는지 질의했다”며 “통계 원본을 요구한 이유는 통계에 대한 해석이 경찰의 해석인지, 세계일보의 해석인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경찰로부터 답변을 받으면 세계일보에 공식적인 입장을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해당 기사를 쓴 조현일 세계일보 기자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성폭력 피해 여성이 꽃뱀이라는 취지로 쓴 기사가 아니다. 내가 주목한 점은 통계가 갑자기 줄었다는 것”이라며 “여러 군데 물어봤는데 똑부러지는 이유가 없었다. 한해 통계도 아니고 상반기에 비해 하반기의 고소율이 갑자기 줄어들었고, 6월에 ‘친고죄 폐지’가 있었다는 점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조 기자는 “원래는 ‘고소율 떨어졌는데 사람 잡는 악의적 무고 줄었나?’라는 정도가 기사 취지였는데 선정적인 제목이 달린 점도 있다. 독자 입장에서 (기사를 읽고) 피해 여성들을 꽃뱀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며 “하지만 악의적인 무고는 분명 현실에 존재하고 이 부분이 친고제 폐지로 자연스럽게 줄었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라고 밝혔다.

조 기자는 통계자료의 출처에 대해 “경찰에서 자료를 요청했고 받은 자료를 그대로 기사에 썼으며, 경찰에서도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측에 같은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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