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1주년을 맞아 대국민 담화문으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강조해 왔던 경제민주화와 복지 공약은 후퇴 수준을 넘어 폐기되기에 이르렀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국내 첫 여성 대통령 탄생으로 더욱 주목을 받았던 복지확대 약속이 파기된 것에 대한 각 분야 현장 복지 전문가들의 질타 목소리는 더욱 높았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지난 24일 노년유니온과 세상을바꾸는사회복지사 등 복지 관련 단체들과의 박근혜 대통령 1년 평가 토론회에서 특히 600만 명의 노인 표심을 움직인 기초연금 공약이 계속해서 후퇴하고 있는 점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오 위원장은 “기초연금은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 원을 지급하겠다는 강력한 공약이었는데, 3단계 과정을 거치며 후퇴하고 있다”면서 “선거가 끝나자마자 인수위원회에서 ‘차등 지급’으로 돌변했고, 두 번째는 기초연금 지급 대상이 65세 이상 전체 노인에서 하위 70%로 축소된 것, 세 번째는 기초연금 인상 기준을 현행 ‘국민연금 가입자 평균소득’에서 사실상 ‘물가’로 바꾼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보통 물가보다 가입자 평균소득 증가율이 높기에 물가 연동 방식은 기초연금 공약 수정 논란 과정에서 한 번도 등장한 적이 없었는데 입법안에 슬그머니 들어왔다”며 “기초연금 공약 수정에 따라 중증장애인에게 약속했던 장애기초연금도 중증장애인 70%에게만 지급하는 것으로 후퇴하며 지급액 역시 물가 연동으로 바뀌었다”고 덧붙였다.

   
노동시민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10월 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복지·교육·노동 분야의 공약 이행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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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약계층을 위한 대표적 복지제도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정부 개편안도 현장 사회복지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 중 하나다. 이영기 방아골종합사회복지관 노조위원장은 25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최저생계비 이하의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여러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초생활보장법을 해체하는 작업들이 최근 진행 중”이라며 “기본 소득 인정액이 사라지고 개별수가제를 적용해 말로는 더 많은 서민들이 혜택을 받는다고 하지만, 실제론 서민의 마지막 보루인 최저생계비 개념을 없애고 복지를 축소하는 결과를 초래해 모든 시민단체에서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을 막자고 공동행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기초생활보장제도를 14년 만에 맞춤형 개별급여로 전면 개편하며 부양의무자 기준을 완화하고 개별급여체계를 확대해 기존 사각지대 문제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올해 기초생활보장 예산은 총 8조8168억 원으로 작년 8조5531억 원보다 3.1% 늘어나는 데 그쳤다. 수급자 대상이 83만 가구에서 110만 가구로 30% 증가하고 인원도 12만 명(8%)이나 늘어났다.

장애인의 소득 안정과 이동권 보장 등 차별을 해소하겠다던 당초 공약도 대폭 후퇴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현근식 장애인정책모니터링센터 연구위원은 25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장애인연금은 기초연금과 연동해 개정안이 상정됐지만 모든 중증장애인에게 2배를 주겠다는 당초 공약과 달리 저소득층 70%만 주겠다고 공약을 축소했다”며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저상버스 예산도 원래 공약대로라면 837억 원이 필요한데, 올해 378억만 편성했고 중증장애인 24시간 활동지원 서비스에 대한 얘기는 나오지도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결혼이민자 지원 강화 약속 등 다문화 정책에 대해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건강가정지원센터·한부모가정지원센터와 통합을 계획하고 있는데, 현장 전문가 90%가 넘게 반대하는 것을 의견 수렴 없이 진행하며 다문화라는 용어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면서 “다문화 정책에는 가족뿐만 아니라 이민정책도 중요한데 정부가 이민 다문화 정책을 국가 백년대계로 앞을 보고 추진하는 게 아니라 근시안적으로 접근해 이민 정책이 후퇴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은상 전국지역아동센터협의회 정책국장은 “지난해 박근혜 정부 국정과제에 맞벌이 부부나 한부모 가정 자녀에 대한 방과 후 돌봄정책과 함께 지역아동센터 운영 지원 확대 내용이 들어갔다”면서 “정부 보조금이 실제 운영비의 절반밖에 못 미치는 민간 아동복지시설의 운영비 현실화를 기대했는데 실제론 물가 인상률만 반영하는 선에 그쳤다”고 말했다. 이 국장은 “올해부터 시행되는 돌봄교실도 초등학생 자녀를 둔 일하는 부모 입장에선 굉장히 솔깃할 수 있지만 아이들에겐 밤 10시까지 있어야 하는 감옥이 될 수도 있어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한 정책인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이 정책국장은 이어 “공약을 이행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하려면 현장과 소통하며 차근차근 이뤄질 필요가 있는데 돌봄아동 수요에 따른 공급시설 실태 조사 과정도 없이 일방적으로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며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지원이 열악함을 공유하면서도 박근혜 정부의 정책 배려 순위에서 계속 밀리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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