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 동계올림픽이 지난 24일 폐막했다. 대한민국은 금메달 3개 은메달 3개 동메달 2개를 수확하며 종합 13위에 올랐다. 그런데 올림픽의 뒷맛이 개운치 않다. 매 대회 메달을 수확했던 남자 쇼트트랙은 안현수(빅토르 안) 논란 속에서 한 개의 메달도 건지지 못했고, 금메달이 유력했던 피겨스케이팅 김연아 선수는 석연찮은 심판 채점 속에 은메달을 받았다.

특히 여자 피겨스케이팅 대회 이후 소치 올림픽에 대한 국내 비판 여론은 들끓었다. 러시아의 신예 선수가 금메달을 받으면서 ‘홈 텃세’, ‘밀어주기’ 논란이 이어졌다. 물론 이에 대한 시선은 해외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이를 대하는 한국 언론의 보도 행태에 대해서는 다소 ‘지나치다’는 평가가 나온다. 보도의 방식이 홈 텃세나 심판진과 러시아의 유착 의혹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 아닌 금메달을 딴 러시아 선수인 소트니코바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본질에 대한 천착없이 러시아 선수에 대한 조롱으로 이번 피겨 판정에 불만을 갖고 있는 국내 피겨 팬들의 분노만 자극하는 꼴이다.

지난 23일 피겨스케이팅 갈라쇼 이후 언론은 소트니코바 선수에 대해 ‘형광 나방’, ‘녹색 어머니회’ 등의 패러디 기사를 내고 있다. 소트니코바 선수가 금메달답지 못한 피겨 실력을 보인 것에 대해 전문가의 눈으로 그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사를 내는 것이 본질이지 소트니코바 선수를 우스꽝스럽게 비하하는 것이 본질은 아니다.

   
▲ 24일 치러진 소치 동계올림픽 폐막식 중 KBS 자막
 
지상파 방송도 마찬가지다. KBS는 올림픽 폐막식 생중계에서 한국 선수들의 메달 소식을 전하며 김연아 선수 은메달 앞에 “(실제로는 금메달인)”이란 표현을 썼다. 이미 김연아 선수가 피겨 스케이팅에서 압도적인 실력을 보였다는 것은 국내외 전문가, 네티즌들이 인정하고 있는 부분인데 방송사가 앞장서 국민들의 분노를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인터넷 뉴스에서도 소트니코바 선수의 갈라쇼 뉴스를 내보내며 “국제 망신”이란 표현을 쓰거나 소트니코바 선수가 “앞으로 모든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겠다”는 발언이 전해지자 “허세”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소트니코바 선수가 김연아 선수 팬 페이지에서 ‘좋아요’를 누른 사실까지 보도되고 있다.

안현수 선수 보도도 문제점으로 지적된 바 있다. 언론과 대통령이 나서 이번 쇼트트랙 대표 선발전에 문제가 있다는 보도와 발언을 쏟아냈다. 대표 선발전에 문제가 있었다면 올림픽 전에 조치를 취했던가 보도를 했어야 했다. 그러나 경기 중 아직 문제점이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 언론의 십자포화가 이어지면서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 선수들을 압박했다.

중앙일보 김정윤 뉴미디어 에디터는 24일 <쇼트트랙 남자 선수들에게 금메달을> 칼럼에서 “빅토르안과 맞물리면서 (남자 쇼트트랙 대표) 선수들은 묘한 눈길을 받아야 했다. ‘파벌 싸움으로 쫓겨난 최고의 선수를 대신해 자리를 차지한 아류들’”이라며 “일련의 발언은 현 대표선수들이 실력보다는 파벌의 힘으로 뽑혔다는 의혹을 불러일으켜 선수와 코치진들이 엄청난 압박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스포츠 경기는 국가주의와 맞물려 유독 불편부당이라는 언론의 원칙이 흐려지는 영역이다. 이희완 민언련 사무처장은 소치 올림픽 관련 보도에 대해 “김연아 선수도 말했듯 메달의 색에 연연하지 않아야 하는데 우리나라가 그런 부분에 집착을 많이 하니 언론도 따라가는 측면이 있고, 또는 언론이 금메달에 집착하면서 대응하는 부분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 처장은 “김연아 선수와 관련해 심판들을 비판할 수 있지만 네티즌들의 방식과 보도의 방식은 전혀 다른 문제”라며 “지나치게 민족주의 적인 부분을 자극하는 형태로 가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빅토르안 문제도 당시 빙상연맹에서 문제가 일어났을 때 언론이 실체적인 진실을 제대로 보도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 없이 대통령의 한 마디에 따라가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가장 큰 문제는 큰 규모의 스포츠 경기가 있을 때 마다 벌어지는 논란이다. 스포츠 경기가 해당 이슈를 모두 잠식한다는 것이다. 지난 소치 올림픽 기간 동안 지상파 방송들은 뉴스 대부분을 소치 동계올림픽 소식으로 채웠다. 일본 선수인 아사다 마오 선수에 대해서도 보도할 정도였다.

이 처장은 “방송 3사가 올림픽에 지나치게 많은 보도 내보냈고, 그것이 JTBC와 비교가 됐다”며 “JTBC의 경우 주요 사회 현안인 국정원 문제,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등 정치사회적 이슈를 전면에 배치하고 소치를 후반으로 배치하면서 공정성과 독립성, 가치관 형성에 노력하고 있었는데, 지상파는 그런 모습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나친 상업주의 한편으로 정권이 사회적 이슈를 뒤로 빼기 위해 전략적인 선택을 한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들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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