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지난 17일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등 피고인 7명에게 내란음모와 내란선동,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유죄를 선고하면서 형법학자들 사이에서도 “진보진영의 정치적 사상을 단죄하기 위한 박근혜식 공안탄압이 과거 독재정권보다 심하다”는 비판이 따르고 있다.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음모 사건 1심 유죄 판결 결과에 대해 18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법원이 내란음모의 실질적인 위험성을 인정한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된 증거에 의한 것이 아닌 녹취록의 아주 일부만 가지고 추론한 것인데 과연 법적으로나 사회 일반 상식적으로 인정할 만한 추론인지 의문”이라며 “정치적 사상을 두고 내란음모라고 하는 것은 우리사회 진보진영의 이념을 배척하고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선전포고”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 교수는 “판결만 놓고 봐도 내란음모라는 어마어마한 사건을 사실 아무런 직접 증거 없이 간접 증거만으로 정치적으로 편향된 시각에서 무리하게 추론해, 법적으로도 자유심증주의와 증거재판주의라는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에 비춰 당연히 의문이 남는 판결”이라며 “그동안 보수진영이 쭉 조성해 온 공안·종북 매카시즘 정국 속에서 통합진보당을 1차 희생양으로 삼아 진보진영의 사상을 단죄하기 위해 법적인 정당성을 부여해준 결과”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지난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의 선거개입 사건 무죄 판결 등 현 정권 들어 선거·공안 사건에서 사법부의 독립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법원의 김용판 사건 판결도 그렇고 이번 판결에서도 법원이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이라며 “기본적으로 법원 조직 자체도 상당 부분 보수화되면서 법원 정책이나 법원 내부 기류도 과거보다 확실히 보수화된 경향이 있으며 박근혜 정부 이후 좀더 노골적 나타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국정원 내란음모정치공작 공안탄압대책위’는 18일 오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관권부정선거를 덮기 위한 국정원의 의도에 사법부가 굴종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사진= 이치열 기자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8일 두 가지 이유를 들어 검찰이 무리하게 내란음모 혐의를 적용한 배경을 설명했다. 하나는 현 박근혜 정부의 종북몰이 공안정국의 정당화다. 조 교수는 “통합진보당 자체에 대해, 그리고 진보당을 넘어 종북 사냥이 대규모로 진행되고 있는데 사람들이 공안당국에 대한 불신으로 국가보안법을 우습게 보는 경향 때문에 종북 공세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면 국보법보다 더 센 혐의 적용이 필요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이어 “또 하나는 길게 보면 국보법이 개정되거나 폐지될 경우 대체할 무언가가 필요한데 미리 내란음모라는 판례를 하나 확보하려 했을 수 있다”며 “이번 판례를 확보해 앞으로 진보진영을 국보법이 아니더라도 내란음모로 처벌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한 내란음모 혐의 적용이 과거 권위주의·독재 정권보다도 과도하다고도 지적했다. 조 교수는 “내란음모죄는 우리나라 형벌 중에서도 형량이 높고 중한 범죄인데 과거 국보법 적용 사례를 보면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 사건이나 민혁당(민족민주혁명당) 사건의 경우 내부 강령까지 있었음에도 내란음모 적용은 안 했다”며 “검찰이 주장하는 RO(혁명조직)는 강령도 확인이 안 됐고 RO의 실체나 지향 등이 그 이전 국가보안법 적용을 받았던 조직에 비해 규모도 작고 반사회성·위험성 문제도 오히려 약해 (나는 국보법 폐지론자지만) 국보법 적용을 인정하더라도 형평의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재윤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역사적 경험에 비춰 봤을 때 수많은 공안사건이 재심에서 대부분 무죄가 선고됐고 공안당국에 의해 조작된 사건도 매우 많았다”며 “지금 다시 신공안정국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런 흐름에서는 사법부가 이전의 역사적 경험을 잊고 또다시 이런 판결 한다면 정권이 바뀌고 시간이 지나면 똑같이 재심을 반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번 내란음모 사건 유죄 판결을 김용판 선거개입 사건 무죄 판결과 비교하며 “여당 측에 불리한 김용판 사건은 동일한 공안 사건임에도 진술의 신빙성이 없어 무죄를 선고했는데 야당에 불리하지만 그보다 훨씬 중요한 내란음모 사건은 더 엄격하게 증거를 채택하고 입증을 요구해야 했다”며 “직접적 증거인 녹취록과 증인의 신빙성을 판단함에 다른 증거 없이 간접적 증거로 추정하는 것이 과연 내란음모 사건의 경우 타당한지 의문이고, 합리적 의심이 남는다면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하는 형사상 대원칙에 따라 좀 더 신중했어야 하는데 아쉽다”고 지적했다.

한편 김 교수는 이번 판결이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의 정당해산심판에 미칠 수 있는 영향과 관련해 “헌재도 이석기 의원 재판을 기다렸다가 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결론도 해산 쪽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며 “헌법재판관의 성향을 보면 대법관보다 보수적 성향이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아, 진보적 성향의 재판관도 소수 견해 위치를 점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이호중 교수도 “물론 내란음모 사건은 법리적으로 RO가 통합진보당인지 아닌지를 따져야 할 부분이 있지만 위헌정당 심판 제청과 맞물려 당연히 영향 줄 수밖에 없다”며 “헌재와 법원은 서로 독립적 기구지만 아무래도 정치적 사건은 사법부의 판단이 엇갈리기 어려워 헌재가 눈치를 보고 조율한다면 기각 결정을 내리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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