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 동계올림픽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내 언론의 최대 관심사는 역시 러시아로 귀화한 안현수 선수(빅토르 안)다. 한국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의 부진과 맞물려 안 선수 측이 제기했던 파벌문제가 다시 불거지기 시작했고, 13일에는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 안 선수의 러시아 귀화문제를 챙겼다.

공정해야 할 스포츠가 파벌 등 경기 외적인 문제로 얼룩져있다면 시정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문제가 불거지면서 현재 KBS 2TV에 ‘사랑이 아빠’로 출연하며 인기를 모으고 있는 추성훈 선수도 관심을 모으고 있는데, 추 선수 역시 유도선수 당시 한국 대표선발에 지원했다가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좌절해 일본에 귀화, 일본 대표선수가 되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박정훈 디지털 담당 부국장도 이러한 상황을 개탄했다. 박 부국장은 14일 <우리는 왜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을 내쫒는가> 칼럼에서 두 선수의 귀화 과정을 지적하며 착잡해했다. 그는 안현수 선수에 대해 “빙상계와 한국 사회가 (안 선수를) 좀 더 배려하고 아껴주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지 모른다”고 말했고, 추 선수에 대해 “자신을 탈락시킨 한국 유도계의 판정이 잘못됐음을 실력으로 입증한 셈”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칼럼 말미에 뜬금없이 김종훈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내정자가 등장한다. 한국 사회가 안현수, 추성훈을 내쫒았듯이 김종훈도 내쫒았다는 것이다. 박 부국장의 주장은 김 내정자가 쫓겨난 이유도 안현수·추성훈과 유사한 ‘정파갈등’ 때문이며 그 때문에 최문기 장관이 이끄는 미래창조과학부가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박 부국장은 칼럼에서 지난 여름 김종훈의 두 딸이 한국에 어학연수를 왔다고 강조하며 “당시 그의 마음은 모국에 대한 섭섭함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라며 “그는 장관 후보가 되기 전에도 그랬고, 낙마 후에도 변함없이 ‘나를 낳아준 한국을 사랑한다’고 해왔다. 그가 말하는 ‘조국애’가 거짓은 아니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 조선일보 2월 14일자. 30면.
 
김종훈 전 내정자는 미국국적으로 미국 정보기관인 CIA에서 자문위원으로 활동한 사실이 드러나 자격 논란에 시달렸다. 박정훈 부국장은 “CIA 스파이로 매도됐다”고 주장했지만 사실 김 전 내정자의 임명은 국가공무원법 및 공무원 임용관련 대통령령에 위배됐다. 이중국적자가 장관 등 고위공직에 오를 경우 정보유출 우려가 있다는 이유다. 게다가 CIA와 깊은 연관을 가졌다는 사실에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한겨레는 지난해 2월 21일자 <‘CIA 활동’ 전력자를 핵심 장관에 기용하는게 맞나> 사설에서 “우리나라와 미국이 아무리 강력한 동맹국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국익이 일치하는게 아닌데, 굳이 그런 전력을 가진 사람을 써야 하느냐는 의문이 이는 건 당연하다”며 “미국인으로 살아온 그가 장관을 마친 뒤 우리나라에서 계속 살란 보장도, 강요할 장치도 없다”고 지적했다.

물론 이후 김 전 내정자는 “조만간 미국국적을 포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미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았다. 더욱이 김 내정자는 제임스 울시 전 CIA 국장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으며 이후 김 전 내정자의 벤쳐기업은 제임스 울시 전 국장을 영입한 이후부터 초고속 성장을 했다. 당시 그의 성공신화에 CIA가 개입되어 있다는 정황이 보도됐다.

2012년만 해도 김 전 내정자는 미국 해군잡지 <프로시딩> 기고에서 “미 해군 복무를 통해 ‘진짜 미국인’이 됐다”며 “군 복무를 통해 나는 모두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이곳이 진정 조국이며, 나는 정말로 미국인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지난해 2월 조선일보도 이란 제하의 비판기사를 냈다.

김 전 내정자의 배우자가 소유한 건물에서 성매매가 이뤄졌다는 보도도 나왔다. 해당 건물은 일반 음식점으로 허가를 받았는데 유흥주점이 들어서 있고 여기서 성매매가 이뤄지고 있다는 증언이 나온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김 전 내정자는 당시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현행 성매매특별법은 유흥업소에서 성매매가 이루어질 경우 건물주도 함께 처벌을 받게 되기 때문에 제기된 의혹이다.

결국 김 전 내정자는 위와 같은 논란에 미확인 소문까지 의혹이 이어지자 지난해 3월 5일 견디지 못하고 사퇴했다. 그는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는 마음을 접었다”고 말했다. 그 사퇴가 너무 전격적이라 당시 여당 측도 어리둥절해 했다.

하지만 박 부국장은 위와 같은 논란에 대해 “어느 하나 사실로 드러난 게 없었다”고 말했다. 물론 ‘CIA 스파이’인지, 박 부국장 말대로 알 수 없다. 그러나 당시 논란의 핵심은 CIA 전력자를 고위공직자에 임명하는 것이 맞냐는 것이다. 불과 1년 사이에 김 전 내정자의 ‘조국’이 오락가락했다는 사실은 그가 신뢰를 얻지 못한 중요한 원인 중 하나였다.

   
안현수 선수.
ⓒCBS노컷뉴스
 
박 부국장은 “당시 김종훈을 겨냥한 의혹 제기는 야당과 좌파 진영이 주도했다”며 “검증 수준을 넘어 박근혜 정부를 흔들려는 정치 공세 성격이 강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 결과가 너무도 허망했다”며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는 인물을 내쫓은 셈이 됐다”고 주장했다.

박 부국장이 주장하는 김종훈 전 내정자의 ‘애국심’이야 말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다. 엄격해야 할 고위공직자 임명 과정에서 철저한 검증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박 부국장은 각자 기준도 다르고 확인할 수 없는 ‘애국심’이라는 이유로 ‘CIA 전력’이라는 위험부담을 안고 갔어야 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박 부국장의 더 큰 문제는 스포츠 문제와 정치문제를 연결시켰다는 점이다. 칼럼에서 박 부국장은 김종훈 전 내정자와 안현수·추성훈을 비슷한 문제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박 부국장 역시 특별한 공통점을 엮기 힘들었는지 3가지 사례를 건건히 적었다. 파벌 문제로 고통을 겪고 운동을 이어가기 위해 다른 선택을 했던 안현수·추성훈과 미국을 조국으로 생각하며 CIA와 밀접한 연관을 갖다가 장관을 하겠다고 국내에 들어와 법적 논란을 일으킨 김종훈, 대체 어디가 같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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