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청와대 대변인으로 민경욱 전 KBS <뉴스9> 앵커가 내정된 이후 ‘폴리널리스트’가 다시 도마에 오르고 있다. ‘폴리널리스트’(polinalist)는 정치(politics)와 언론인(journalist)이 결합돼 만들어진 합성어다. 권력을 감시해야 하는 입장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정치인으로 변신한 언론인을 부정적으로 일컫는 의미로 사용된다.

민경욱 대변인처럼 ‘폴리널리스트’(polinalist)는 대부분 언론인의 윤리위반과 연결되면서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점 때문에 언론인이 공직이나 정치권으로 진출하더라도 최소한의 유예기간을 두는 방식으로 ‘변신’을 시도했다. 하지만 민경욱 대변인은 이런 유예기간 없이 청와대 대변인으로 직행했다. 윤리강령 위반 논란이 거세지는 이유다.

민 대변인은 청와대가 대변인 인선 발표를 한 당일(2월5일) 오전 KBS 보도본부 편집회의에 문화부장으로 참석했다. 전날인 4일 KBS <뉴스9>에선 ‘데스크 분석’ 코너에 출연해 리포트를 하기도 했다. 윤리강령 논란 이전에 언론인으로서 최소한의 직업의식을 상실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지는 이유다.

최소한의 유예기간도 없이 청와대로 … 언론인의 윤리의식 도마에 올라

현직 언론인이 정계로 진출하는 경우는 더 이상 뉴스가 아닐 만큼 흔한 일이 됐다. 하지만 민경욱 전 앵커는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최소한의 유예기간도 없이 청와대로 직행하는 사례는 ‘폴리널리스트’ 가운데서도 흔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민경욱 신임 청와대 대변인 ⓒKBS
 
민경욱 전 앵커처럼 예외적인 경우를 꼽으라면 중앙일보 출신인 이상일 새누리당 의원을 들 수 있다. 이상일 의원은 중앙일보 논설위원으로 재직하면서 지난 19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에 비례대표로 영입됐다. 문제는 새누리당 비례대표 8번을 받은 이상일 의원이 공천 발표 직전까지 중앙일보 논설위원 자격으로 칼럼을 썼다는 점이다.

이상일 의원은 비례대표이기 때문에 ‘선거일 90일 전까지 현직에서 물러나야 한다’(지역구 출마자에게 적용)는 선거법 적용 대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언론윤리 차원에서 비판이 제기됐다. 이상일 의원은 비례대표로 영입되기 전, 당시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초청 관훈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해 논란을 빚었다.

언론계와 정치권을 ‘여러 차례’ 오간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이남기 전 홍보수석, SBS 미디어홀딩스 사장으로 재직하다 청와대 ‘직행’

박근혜 정부 인수위 대변인에 이어 초대 청와대 대변인으로 발탁됐던 윤창중 씨도 ‘폴리널리스트’의 대표적 사례로 거론된다. 특히 윤창중 전 대변인은 언론과 정치권을 오간 경력이 여러 차례일 만큼 경력이 ‘화려’하다.

1981년 코리아타임스 기자로 언론계 입문한 윤 전 대변인은 이후 KBS와 세계일보를 거쳐 노태우 정부에서 청와대 정무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이후 윤 전 대변인은 1993년 세계일보 정치부로 복귀했으며 정치부장까지 지냈다. 하지만 윤 전 대변인은 1997년 다시 정치권으로 진출한다.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 보좌역을 맡은 그는 한나라당 대선에서 패배하자 일본 연수를 떠났으며 1999년 문화일보 논설위원으로 다시 언론계에 복귀했다.

윤 전 대변인은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 방미 수행 도중 한국대사관 인턴 사원을 성추행해 전격 경질됐다.

   
사진 왼쪽부터 이남기 전 청와대 홍보수석,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김행 전 청와대 대변인.
 
이남기 전 홍보수석도 박근혜 정부 ‘폴리널리스트’의 대표적 사례로 거론된다. 이 전 수석도 민경욱 전 앵커처럼 SBS 미디어홀딩스 사장으로 재직하다 곧바로 청와대로 직행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제기됐다.

특히 지난 대선과정에서 방송사 사장을 지낸 인물이 대선이 끝난 후 곧바로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로 이동했다는 점에서 ‘폴리널리스트’ 중에서도 ‘좋지 않은 사례’로 거론된다. 이 전 수석은 윤창중 전 대변인의 성추행 파문으로 홍보수석 임명을 받은 지 94일 만에 옷을 벗기도 했다.

민경욱 대변인의 전임자인 김행 전 청와대 대변인 또한 박근혜 정부 ‘폴리널리스트’로 꼽힌다. 김 전 대변인은 중앙일보 여론조사전문기자 출신이며 청와대 대변인을 맡기 전 위키트리 부회장을 역임했다.

‘폴리널리스트’ 논란이 제기될 때마다 언론계에서는 윤리강령 제정 등을 통해 권언유착 방지를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셌다. 하지만 자체 윤리강령을 마련하고 있는 KBS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윤리강령 제정에 대한 회의론도 적지 않다.

KBS 한 기자는 “윤리강령이 있어도 오전에 KBS로 출근해서 회의하고 오후에 청와대로 가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냐”면서 “아예 법으로 유예기간을 제정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순 있지만 ‘직업선택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윤리강령’은 선언적 의미에 그쳐 … 개개인의 양심에 맡길 수밖에 없는 현실

이경호 전국언론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윤리강령이 있어도 당사자가 위반하는 순간 이미 회사를 떠나 있기 때문에 ‘선언적 의미’ 이상을 가지기 힘들다”면서 “도덕 윤리적으로 비난을 할 수는 있어도 강제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은 없다”고 지적했다. 이 수석부위원장은 “냉정하게 얘기해서 마땅한 대안이 없는 게 사실”이라면서 “현재로선 언론 개개인의 양심에 맡기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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