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림축산식품부가 지난달 28일 최근 국내에서 발생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는 야생 철새로부터 유입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같은 날 AI 관련 국제협력기구는 “야생조류를 바이러스의 근원지로 지목해서는 안 된다”고 권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류인플루엔자와 야생조류 학술대책위원회(Scientific Task Force on Avian Influenza and Wild Birds)는 이날 한국의 가금류와 야생조류에서 발생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H5N8)에 관한 성명서를 내고 “야생조류가 고병원성 AI의 근원지라는 증거는 현재까지 없어 이들을 바이러스의 매개체가 아닌 피해자로 간주해야 한다”며 “야생조류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실제 근원을 벗어나 효율적인 질병 통제라고 할 수 없으며, 생물다양성보전에도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책위는 지난달 16일 전북 고창에서 고병원성 AI H5N8 발생이 처음 보고된 후 오리와 닭의 가금류 농장에서 집단 살처분이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야생조류에서 고병원성 AI 바이러스가 검출된 것은 보통 가금류 농장과 유통과정에서 저병원성 바이러스가 변이 과정을 통해 고병원성으로 변환하는 것과 비교할 때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며 “농장 간 가금류와 가금류 제품, 사람과 장비의 이동뿐만 아니라 오염물질의 배출 등으로 인해 가금류와 야생조류에 바이러스가 확산됐을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대책위는 “비록 많은 사람이 AI 바이러스를 야생조류가 전파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는 있지만 지금까지 세계 야생조류 감시활동에서는 야생조류에서 H5N8이 발견된 적이 없고, 이 주장은 지금까지 역학적 증거로도 뒷받침되지 않았다”며 “가창오리는 수십만 마리가 군집생활을 하므로 만약 이 바이러스가 철새들 사이에 존재하고 있었다면 더 높은 사망률이 이전에 이미 발생했을 텐데, 지난가을에 도착한 가창오리에선 질병의 징후가 보이지 않았다”고 밝혔다.

   
▲ 조류인플루엔자(AI) 관련 국제연합 식량농업기구(FAO) 공식홈페이지
 
한국 정부에서 AI 확산을 막기 위한 대책으로 철새 도래지에 방역작업을 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도 대책위는 “야생조류를 보호하고 바이러스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가금류 농장에 대한 철저한 관리와 방역 기간 동안 야생조류들이 서식하는 환경, 특히 습지환경이 오염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습지에 방역을 실시하는 것은 바이러스 확산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생태계에 해로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책위는 “H5N1 고병원성 AI가 발생했을 때와 같이 바이러스 유입의 책임을 야생조류에게 전가하는 것은 AI 질병 확산의 근원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하는 행동이고 효율적인 질병 통제 활동보다는 바이러스의 잠재적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언론과 학계, 동물보건단체들은 야생조류의 역할과 조류인플루엔자를 고려해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하며, 충분한 증거가 없다면 야생조류를 바이러스의 근원지로 지목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조류인플루엔자와 야생조류 학술대책위원회는 국제연합환경계획(UNEP)과 이동성 종의 보존에 관한 협약(CMS),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와 함께 AI와 야생조류 간 역학조사를 실시하고, AI가 야생조류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지난 2005년 설립된 국제협력기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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