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이제 디지털스토리텔링 한 번 해봐야죠? 디지털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한데 언제까지 종이식 기사만 쓸 수는 없잖아요. 이건 꼭 스마트폰 손에 쥐고 구식 계산기 용도로만 쓰는 것이나 마찬가지 같다니까요.”

경향신문 편집국 내에서 뉴미디어 관련한 동향과 기획을 맡고 있는 미디어기획팀 내에서 이 같은 대화가 오간 것은 지난해 여름 무렵이었다. 뉴욕타임스의 ‘스노우폴’과 가디언의 ‘파이어스톰’이 제시한 디지털스토리텔링을 턱 떨어질 듯 감탄하며 보다가 분명 우리도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기사와 동영상, 인터랙티브 그래픽과 사진을 모두 활용하는 새로운 방식의 기사는 새로운 바람이 될 것이 확실했다.

지난해 10월 아이템 선정으로 시작해 석 달 만인 지난 22일 첫 선을 보인 디지털스토리텔링 ‘그놈 손가락-2012 국가기관 대선개입 사건’은 그렇게 시작됐다. 디지털스토리텔링을 처음 제작하는 과정은 나침반만 들고 숲과 강을 가로지르는 경험과도 같았다. 어려움보다는 새로운 경험의 즐거움이 더 컸다.

   
▲ 경향신문 '그놈 손가락'
 
제작기간은 넉넉하게 잡고 아이템을 선정했다. 뉴스로서의 요건을 갖추되 하루 지나면 녹는 아이스크림처럼 시의성이 강한 소재는 곤란했다. 우리는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령부가 대선에 개입하고 경찰과 검찰이 수사를 방해하거나 압력을 행사한 2012년 사건을 주목했다. 여러 조직이 복잡하게 얽힌 데다, 각 사건 보도들이 퍼즐처럼 흩어져있어서 신문 지상에서는 그 거대한 실체를 담아내기가 버거웠다.

기사는 많았지만 전체를 조망하는 기사는 찾기 어려웠다. 11월에 시사주간지 <시사인>이 ‘응답하라 7452’를 통해 크라우드소싱 형태로 독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새로운 실험을 내놓았지만, 여전히 ‘한 눈에’ 사건 파악은 쉽지 않았다. 뉴스가 넘쳐나는 시대에 독자들이 원하는 것은 중요한 뉴스의 본질을 깔끔하게 정리해 시간과 노력을 아껴주는 큐레이션 서비스이다. ‘이 기사 하나로 끝내는’ 기획이 필요했다. 그같은 용도에 디지털은 안성마춤이다.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사건이 수면 밑으로 잦아든 뉴스가 될 리스크도 있었다. 하지만 기자의 소명은 조선시대로 치면 사관과도 같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우리는 묵묵하게 사건을 기록하고, 정리하고, 동시대 사람들과 후세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그 수단이 ‘디지털’로 발전했을 뿐이다.

일단 소재를 확정한 뒤에 태스크포스팀을 꾸렸다. 정치부 구교형 기자와 사회부 박홍두 기자에게 사건 취재의 원자료와 국정원 직원 오피스텔 동영상 등을 건네받았다. 취재기자들은 텍스트를 쓰기엔 현업에 너무 바빴다. 그래서 미디어기획팀의 이영경, 김향미 기자와 디지털뉴스팀의 박용하 기자가 1차 초고와 인포그래픽을 구성하고 미디어기획팀장인 본인이 내용을 종합 재구성 및 편집해서 취재기자들의 감수를 거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동시에 박용하 기자는 동영상 취재 및 영상자료 확보와 편집 작업도 시작했다.

   
▲ 경향신문 '그놈 손가락'
 

원고의 윤곽이 나왔을 때부터 윤여경 아트디렉터가 페이지 디자인 콘셉트작업을 동시 진행했다. 화려한 기술보다는 내용을 간명하게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추자고 윤 디렉터는 강조했다. 독자들을 놀라게 할 만한 멋진 페이지 구성이나 효과는 그래서 처음부터 배제됐다. 공급자의 나르시시즘을 버리고 철저히 수요자 입장에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고민했다. 전체 디자인이 확정된 뒤 콘텐츠 운영팀의 차현정 기획자와 기술개발팀의 박광수 팀장, 이익형 디자이너가 구현을 맡았다.

페이지가 지난 22일 오픈한 이래 다행히도 ‘그놈 손가락’에 독자들의 호평이 이어졌다. 정독하는 데 10분 넘는 기사를 6만 명이 읽었다.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도 큰 호응을 얻었다. 기획의도대로 “한 눈에 알아보기 쉽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혔다. 지면으로는 다 담아내지 못했던 기자들의 취재역량을 디지털을 통해 보여줄 수 있었던 점도 보람찼다.

   
▲ 최민영 경향신문 미디어기획팀 팀장
 
이번 기획을 하면서 새삼 깨달은 것은 디지털미디어에서는 각 부서의 장벽을 넘어서는 긴밀한 협업이 소중하다는 점이다. 별도법인이던 닷컴을 신문으로 2010년 통합하고, 디지털뉴스국을 편집국 산하에 둔 조직의 특성 덕분에 현장 기자들과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졌다. 새로운 실험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적극적으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경향의 조직문화가 정말 건강하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었다. 차기 디지털스토리텔링도 재밌게 만들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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