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전북 고창의 종오리 농장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병한 후 28일까지 살처분된 오리와 닭의 수는 155만여 마리에 이르지만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어서 피해보상과 환경오염 문제로 인한 국민 불안은 더욱 커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 23일에는 AI 감염 오리농가의 살처분 과정에서 매몰지 침출수 일부가 유출된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었다. 구제역과 AI 등 해마다 되풀이되는 유행성 가축 전염병에 따른 살처분 대책으로 지하수와 토양 오염, 악취 문제로 또 다른 환경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은 시민·환경단체에서도 끊임없이 제기해 왔다.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28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이번에 오리를 살처분한 전북 고창의 육용오리 농장에서도 침출수가 유출돼 문제가 됐는데 10톤들이 정화조 통에 살처분 가축을 너무 많이 채워 부풀어 오르기도 하고 이번처럼 가금류의 대규모 살처분이 시작되면 이것만으로 가능할 지도 의문”이라며 “예전보다 살처분 매뉴얼 상으로만 보면 나아지고는 있지만 인력과 장비 등의 한계가 있어 여전히 2차 오염의 위험성을 배제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 처장은 예방적 살처분 방식에 대해서도 “반경 500m 이내 구간까지는 확산 가능성이 있어 살처분할 수 있지만 3km 이내 의심구역 전체에 대한 예방적 살처분은 너무 과도하지 않은가 생각이 든다”며 “오히려 영국 등에서처럼 전염된 해당 농가와 핵심구역을 중심으로 확산 여부에 따라 선별적으로 살처분할 필요가 있는데 가축을 상품처럼 몰수해 전부 털어버려야 한다는 발상은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개별 농가나 권역별로 3만 수 이상의 대규모 사육농가에 대한 집중적인 방역관리와 소독, 검사가 보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방제가 될 수 있다”며 “근본적으로 축산업 허가제를 강화해 적정 사육두수로 축사가 관리될 수 있도록 축산업을 진흥하고 농가 방역 지원이라든지 혈청검사, 인수공통전염병 연구 지원 등에 대해 보완 대책이 세워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지난 22일 전북 부안군 줄포면의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발병지로부터 3㎞이내에 들어있는 한 오리농장에서 살처분 작업이 진행됐다.
ⓒ연합뉴스
 
이와 관련해 정용완 환경부 토양지하수과 주무관은 28일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고창 오리농가 매몰지 침출수 유출은 부패해서 발효가스로 폭발한 것이 아니라 토압(土壓)에 의해 문제가 생긴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기존 매몰지에 대한 조사도 충분히 진행했고 이제는 비닐과 차수막이 아닌 FRP(섬유강화플라스틱)를 넣어 묻기 때문에 침출수가 발생할 수 없다”고 해명했다.

정 주무관은 향후 살처분이 늘어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2차 오염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살처분이 전국적 확산되면 농림부가 조류인플루엔자 긴급행동지침(SOP)지침대로 잘 이행하고 있는지 살피고 점검할 것”이라며 “이후 안정단계 들어서면 지자체와 합동으로 매몰 현장에 대한 환경영향조사를 할 것이고 침출수와 악취 등의 문제도 다시한번 되짚어 보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환경 문제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예방적 살처분으로 당장 생계가 막막해진 농가에 대한 보상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에 가장 큰 AI 피해를 본 전북 지역에서 예방적 살처분 조치를 받은 한 농가는 집단폐사 등 특별한 AI 이상 증세가 없었음에도 혈청검사가 양성으로 나왔다는 이유로 멀쩡한 오리 2만 수를 땅에 묻어야 했다.

이 농장주는 가축전염병예방법에 따라 사육가축에 대해서는 정부로부터 80%까지 보상받을 수 있지만 가축과 함께 매몰한 사료값은 40%밖에 보상받지 못한다. 보통 축산농가에게 사료비 지출은 생산비 중에서도 가장 큰 부담인데 이 농가의 경우도 40톤, 2200만 원에 달하는 사료를 처분했음에도 보상 법령에 따라 880만 원밖에 돌려받지 못하게 됐다.

정부에서 AI 살처분 피해 농가에게 최대 6개월을 기준으로 1400만 원까지 생계안정자금을 지원해 준다더라도 사료비와 소독용 생석회, 유류비, 인건비까지 합하면 3000만 원 가량 손해를 입게 돼 정부의 보상 대책이 농가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박기준 농림축산식품부 방역총괄과 주무관은 28일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생계안정자금은 가축전염병예방법 제49조에 따라 살처분 명령을 이행한 가축의 소유자(가축을 위탁 사육한 경우에는 위탁받아 실제 사육한 자)에게 직접 지원토록 돼 있다”면서도 “살처분 보상을 전액 지원하지 않는 이유는 가축 검사 결과 양성으로 나온 농가의 평소 방역에 대한 책임을 고취하기 위함이고 사료값 보상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보완하거나 검토해봐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박 주무관은 이어 “설도 다가오고 있는데 AI가 확산되면 살처분을 위한 평가단 구성과 평가 기간 등의 시간이 소요돼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면서 “당장 생계가 막막한 피해 농가에 대해 지자체에서 절반 정도까지 보상비가 최대한 빨리 선지급될 수 있도록 지원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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