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회사 비정규직 문제 심각하다고 고발하는 거대 언론사가 어떻게 사람을 이런 식으로 채용할 수 있나!”

지난 23일 만난 프리랜서 노동자 배모씨는 SBS 아트텍에 총 세 차례, ‘사실상 해고’를 당했다며 울분을 터트렸다. SBS아트텍은 1998년 경영효율화를 이유로 SBS로부터 떨어져 나온 회사로 무대제작, 컴퓨터그래픽, 영상제작, 방송제작에 필요한 미술 등 기술업무를 맡고 있다.

배씨가 아트텍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99년이다. 광고회사를 다니던 배씨는 아트텍이 막 SBS에서 분사해 신규 사업이 필요했던 99년 11월 아트텍에 입사한다. 배씨는 아트텍의 박모 부장으로부터 입사 제의를 받고, 국내 최초로 PPL(간접광고)을 도입하자는 제안서를 작성해 아트텍에 제출했다. 아트텍은 별도의 급여 및 4대 보험 가입 없이 성과에 대한 수당만을 지급하는 계약을 제시했다. 배씨는 “박모 부장이 자리 잡으면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는 언약을 했기에 프리랜서 계약을 했다”고 말했다.

배씨는 2년 6개월 간 일하며 국내 최초로 SBS에 PPL을 도입했으며 경쟁사인 KBS와 MBC에서 교육요청을 받을 정도로 사업을 안착시켰다. 하지만 2년 6개월 후 아트텍은 계약종료를 통보한다. 배씨는 “프리랜서이긴 했지만 출퇴근과 휴가 등을 일일이 승인받는 등 일반 근로자와 다름없는 근무를 했는데도 한 순간에 계약해지 당했다”고 말했다.

아트텍은 배씨에게 다시 손을 내민다. 배씨에 따르면 2003년 6월, 아트텍 전략기획팀의 김모 팀장은 배씨에게 신규 사업을 제안한다. 배씨가 이 때 기획한 사업이 ‘SBS 옥션사업’이었다. 배씨는 “사업이 실시되는 경우 채용하겠다”는 약속을 믿고 1년 8개월 간 해당 신규 사업의 기획과 사업 실시 직전까지의 작업을 수행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회사 내부 사정’에 따라 사업은 무산됐고, 채용도 무산됐다. 계약조차 맺지 않았기에 해고도 ‘계약해지’도 성립되지 않았고, 결국 배씨는 1년 8개월 간 무임금 노동을 한 셈이 됐다. 배씨는 “아이디어만 줬다면 억울하지도 않다. 열 개가 넘는 결과물을 만들었다”며 “SBS아트텍이 이 업계의 워낙 거대한 큰 손이기에 보복이 두려워 이의제기를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 SBS아트텍 홈페이지 갈무리
 
배씨는 방송 일을 포기하고 고향에 내려가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았다. 월 수익이 천만 원이 넘는 기업이었다. 그러던 2010년 3월, SBS아트텍에 신규사업 ‘보컬로이드’를 기획하고 발제한 김모 팀장이 배씨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한다. 김모 팀장은 배씨가 PPL 사업을 담당하던 당시 같은 부서에 근무한 디자이너였다.

배씨는 “(정규직 채용) 확실한 거냐고 두 번 되물었다. 서울에 가려면 아버지 사업을 정리하고 가야했기 때문”이라며 “김모 팀장은 ‘이 사업은 신 동력 사업으로 뽑힌 사업이고, 본사기획팀 허가까지 받은 사업이다. 이 사업이 무너지거나 네가 발령 못 받을 일은 없을 것’이라고 확신 하더라”라고 말했다. 그래서 배씨는 아버지의 가업을 정리하고 아트텍으로 향한다. 2010년 9월이었다. 9월부터 업무를 수행하지만, 채용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배씨는 일을 시작한지 3개월 만인 2010년 12월 5일 프리랜서 계약을 맺는다.

프리랜서로 정식 입사한 배씨는 보컬로이드 사업 시행에 대한 마케팅 계획수립, 시장조사, 관련업체와의 업무협의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임금을 받았다. 이후 한 달 짜리 계약 두 번, 1년 짜리 계약 두 번 등 총 4번 아트텍과 계약을 맺는다. 배씨는 “회사에서는 신사업인데 사람을 새로 뽑고 시작하는 건 무리이며, 프리랜서로 하면 1년 뒤에 발령을 내준다고 했다. ‘일을 하고 있는데 월급은 받아야 하지 않겠냐’라고 하기에 알았다고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네 번째 계약이 만료된 2013년 2월 5일, 더 이상의 계약 갱신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에 배씨는 경기지방노동위원회(이하 경기지노위)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접수한다. 배씨의 노무사는 배씨가 독자적인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아트텍과의 종속관계 하에서 일했다는 각종 증거들을 제출했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근로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였는지”를 입증해야, 즉 배씨의 근로자성을 인정받아야 ‘부당해고’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아트텍은 경기지노위에 “계약기간 만료로 인한 자동 종료일 뿐 해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보냈다.

2013년 5월 말, 경기지노위는 배씨의 근로자성과 부당해고를 인정하며 배씨의 손을 들어줬다. 경기노위는 “30일 이내에 배씨를 원직에 복직시키고, 해고기간 동안 정상적으로 근로하였다면 받을 수 있었던 임금상당액을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이에 배씨는 7월 1일자로 복직한다. 하지만 다음날인 2일 배씨는 회사로부터 징계위원회에 회부될 것이라는 통보를 받는다. 그리고 징계위원회 심의결과를 거쳐 8월 29일 해고된다. 배씨는 다시 지노위로 향했다. 지난해 9월 16일 경기지노위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접수한다.

아트텍이 배씨를 징계위에 회부하고, 해고까지 결정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 번째 이유는 허위이력서 제출이다. 배씨는 2010년 9월, 2011년 2월, 그리고 복직 판정을 받고 입사한 2013년 7월, 총 세 번의 이력서를 아트텍에 제출했다. 아트텍은 2010년과 11년에 제출한 이력서의 학력 란에는 A모 대학 졸업 및 B대학 재학 중이라고 적혀 있지만, 13년에 제출한 이력서에는 A대학 휴학 중이며, B대학 관련 사항은 아예 적혀 있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한 이력서 세 가지에 공통으로 등장하는 ‘C사 기획사업팀장’이라는 이력 역시 허위라고 주장한다. 회사 경영지원팀은 근무사실을 확인하고자 C사를 방문해 이모 대표로부터 배씨가 근무한 사실이 없다는 사실 확인서를 받았다.

   
▲ 2013년 10월 11일 SBS아트텍 담당 노무법인이 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보낸 답변서 내용 갈무리
 

이에 대해 배씨는 이력서 허위 제출은 단순과실이라고 주장한다. 2010년과 11년의 경우 이력이 아닌 사업제안서를 보고 채용된 것이기에 이력서의 사실여무에 신경을 쓰지 않고 대충 써서 보냈다는 것이다. 나아가 설사 이력서를 허위로 제출했다 하더라도 판례에 따라 “학력허위기재가 되는 이유는 사용자가 이를 알았더라면 근로자의 정직성 등 인격적인 측면 등을 고려하여 채용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근거”로 하기 때문에, 이력이 아닌 사업제안으로 채용된 배씨가 이전의 허위이력서를 근거로 해고되는 건 지나치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과거 경기지노위에서 ‘근로자성’을 두고 다툴 때 아트텍은 사업제안서를 보고 배씨를 뽑았다는 취지의 답변을 한 적이 있다.

배씨는 또한 C사 기획사업팀장 경력은 허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배씨는 C사 이모 대표를 만나 경력증명서를 발급받았고, 아트텍 경영지원팀에 작성해준 자필확인서는 유효하지 않다는 사실 확인서를 받았다. 경기지노위는 엇갈리는 증언에 사실 확인을 거쳤고, 이모 대표로부터 “아트텍 직원이 찾아와 배씨의 근무 경력을 물었으나, 당시에는 이 사건 근로자를 사진으로 봐서 누군지 몰라 근무한 사실이 없다는 자필확인서를 작성해주었고, 그 후 배씨가 직접 방문했을 때 친구 후배임을 기억하였으며, C사에서 프리랜서로 일한 사실이 있으므로 경력증명서를 발급해줬고 아트텍에도 이와 같은 내용을 통보하였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두 번째 징계 이유는 직무태만으로 인한 재산 손실이다. 아트텍이 2013년 4월 보컬로이드 사업에 대한 감사를 실시했는데, 재고관리 부주의로 보컬로이드 에디터(프로그램 CD)가 24개 부족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 감사로 인해 배씨의 상사인 김모 팀장과 김모 차장 견책과 주의환기 등의 징계를 받았다.

배씨는 “사람들이 많이 들락날락하는 곳에 물건을 쌓아둬서 분실 우려가 있다고 따로 보관할 장소가 필요하다고 제안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내 업무였기에 책임은 있으나 차상위 관리책임자들은 가벼운 징계를 받고 나만 해고되는 것은 징계형량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배씨는 또한 “분실된 물품의 가격은 총 60-70만원 정도다. 배상을 명하고 경고 정도의 조치만 해도 충분한데, 이걸 이유로 해고까지 한 것은 지나치다”고 반박했다.

세 번째 징계 이유는 부당금품거래다. 아트텍은 배씨의 통장내역을 문제 삼았다. 배씨가 2011년 10월 25일 거래업체 대표로부터 100만원을, 2013년 1월 18일 또 다른 거래업체 대표에게 25만원을 입금 받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배씨는 마케팅 사업을 하다 보니 거래업체 대표와 술을 마셨고 술값을 자신이 지불했는데, 거래업체 대표가 나중에 자신의 몫인 25만원을 통장에 입금했다고 해명했다. 또한 배씨는 거래업체 대표 등과 야구동호회 활동을 했고, 100만원은 야구동호회비라고 설명했다.

아트텍은 지난해 10월 경기지노위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금품수수는 없었음이 확인되었다”면서도 “하지만 거래업체 대표와 부적절한 장소에서 술을 마시고 금품거래가 있었다는 사실은 직원으로서의 품위를 손상시킨 것이 명백하여 징계사유로 삼았다”고 밝혔다.

   
▲ SBS아트텍 홈페이지 갈무리
 
이전에 배씨의 손을 들어줬던 경기지노위는 이번엔 아트텍의 손을 들어줬다. 배씨의 구제신청을 기각한 것이다. 지노위는 근로자가 총 3회에 걸쳐 이력서 및 입사지원서를 제출하며 학력 및 경력에 대해 사실관계를 확인해 정정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는데도 이를 이행하지 않은 점과 아트텍이 허위 사실임을 알았다면 채용 당시 동일한 조건으로 채용했을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점 등을 근거로 허위 이력서로 인한 징계는 정당하다고 결론 내렸다. 직무태만 및 재산상 손실과 품위유지 위반에 대해서도 아트텍 내부 상벌규정에 해당 조항이 있으므로 징계사유가 정당하다고 판정했다.

배씨는 지노위의 판정에 불복해 지난 7일 중앙노동위원회(이하 중노위)에 재심을 청구한 상태다. 배씨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남의 회사의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이에 대해 고발하는 방송사가 어떻게 사람을 이런 식으로, 그것도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이렇게 채용할 수 있나”고 말했다.

SBS아트텍 경영지원팀 관계자는 27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지노위에 보냈던 답변서 이후로 입장이 변한 것은 없고, 현재 중노위에서 절차를 진행 중”이라며 “지노위 결정문에도 나와 있지만 허위 학력, 허위 이력임이 워낙 명백해 회사 규정상 처리한 것”이라고 밝혔다. 아트텍은 지난 24일 중노위에 답변서를 제출했다. 중노위는 배씨의 이유서와 아트텍의 답변서를 종합해 2월 중으로 부당해고 구제신청에 대한 판정을 내릴 예정이다.

배씨의 사연은 지난 20일 경향신문에도 소개된 바 있다. 아트텍 경영지원팀 관계자는 “지노위에서 허위판명이 났는데도 근로자 입장만 기사화했다. 회사 입장을 싣지 않아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SBS아트텍, 미술부문 인력 73% 비정규직…임금은 정규직 반토막
방송3사 비정규직 실태 공개‥“꿈과 희망 이용하며 정당한 노동의 대가 지급 안 해”


배씨의 사례를 통해 드러났듯 프리랜서를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상시적인 해고, 계약해지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노동법 사각지대에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이들은 ‘정규직 전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열악한 처우와 부당한 대우를 감당하고 있다.

미디어오늘이 입수한 ‘방송3사 미술부문 인원현황 비교’와 ‘방송3사 미술부문 인건비 비교’ 문건에서도 프리랜서와 간접고용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방송3사의 미술부문 인력들은 SBS아트텍, MBC미술센터, KBS아트비전 등을 통해 운영된다. 이 문건은 SBS 아트텍 경영지원팀이 2011년 3월 작성한 것이다.

이 문건에 따르면 2011년 2월 기준으로 SBS아트텍의 미술부문 인력 424명 중 73%인 308명이 비정규직(파견직, 도급직, 프리랜서, 협력업체 등)이었고, MBC미술센터는 전체 401명 중 57%인 228명이 비정규직, KBS아트비전은 전체 527명 중 74%인 388명이 비정규직이었다.

   
▲ 방송3사 미술부문 인원 비교. 자료=SBS아트텍 경영지원팀 문건
 

임금에서도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의 차이가 많이 났다. 방송3사의 미술부문 인력 인건비를 비교한 결과 SBS아트텍 정규직의 평균임금은 약 6468만원인 데 반해 비정규직의 평균임금은 약 3226만원이었다. 임금이 2배 넘게 차이 나는 것이다. MBC미술센터 미술부문 비정규직 평균임금은 약 2671만원, 정규직 평균임금은 약 4539만원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간에 약 1.7배의 차이가 있다. KBS아트비전 미술부문 비정규직 평균임금은 약 3073만원, 정규직 평균임금은 3947만원으로 약 1.2배 차이가 났다.

   
▲ 방송3사 미술부문 인건비(1인당 평균임금) 비교. 자료=SBS아트텍 경영지원팀 문건
 

부당해고 여부를 두고 SBS아트텍과 법적 공방을 벌이고 있는 배씨 측 노무사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일을 하려면 일단 계약을 하고 일을 시작하는 것이 당연한데, 우세한 위치를 이용하고 꿈과 희망을 이용해 무급으로 부리거나,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주지 않기 일쑤다. 그러다 사업이 현실화되면 계약을 해지한다”며 프리랜서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에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배씨는 마케팅 업무를 맡았는데, 무슨 마케팅 업무까지 프리랜서를 쓰나”라고 말했다. 비정규직 고용이 남발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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