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8일 언론인권센터(이사장 남성우) 윤여진 사무처장과 이영주 존엄사회연구소장이 센터 소식지 <언론인권통신> 565호(2014년 1월 28일자)에 쓴 것으로 인권센터 누리집(www.presswatch.or.kr)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편집자주

지난 주 언론인권센터에 낯선 사람으로부터 임순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특별위원의 연락처를 묻는 전화가 걸려왔다. 직감적으로 “진흙탕으로 뛰어들고 싶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언론인권센터는 그 사람에게 임 위원의 연락처를 알 수 없다고 했고, 왜 언론인권센터에 그 분의 연락처를 묻는지 따져 물었다. 그 사람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임순혜 위원 해촉, 진흙탕 싸움 시작

임순혜 위원은 “경축! 비행기 추락 바뀐 애 즉사”라고 적힌 손팻말을 찍은 사진을 재전달(리트윗)했고, 일부 극단적 ‘애국우파’의 좋은 먹잇감이 되었다. 이들은 임 위원이 대통령을 위해했다며 화형식까지 거행했다. 그리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긴급히 임 위원을 해촉했고, 임 위원은 이에 불복해 해촉처분무효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맞섰다. 또 야당 심의위원들은 임 위원이 재전달한 내용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때문에 당사자를 해촉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억업한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진흙탕 싸움”은 진행형이다.

임 위원의 재전달 사건은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 아무리 내 편과 네 편이 분명히 나뉘어져 싸우고 있더라도, 넘어서서는 안 될 선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정도를 넘어선 언행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날 선 공방은 지켜보는 이를 참으로 불편하게 한다. 임 위원이 재전달한 내용은 방통심의위원회 특별위원이라는 공적 지위에 있는 사람으로서 정치적 비판의 금도를 지키지 못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충분하다.

   
▲ 고 이남종씨 추모집회에 참석한 한 시민이 손팻말로 쓴 '바뀐애 즉사'를 촬영한 사진 트위터를 임순혜 방통심의위 자문위원이 리트윗했다.
 
재전달 문제 있지만 증오감 넘치면 안 돼

자신이 인정하지 못하는 대통령이면, 설사 그가 부정선거로 ‘바뀐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그의 죽음을 기원하고 축하해야 할 일일까. 정말 우리가 무슨 주장을 하고 있는지조차 무감각해졌을 정도로 우리 사회는 증오와 혐오가 넘치고 있는 것일까. 임 위원은 그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 실수로 재전달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도 그 내용은 현재 국민의 정서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내가 한 일이 좀 과하기는 하지만 틀린 일은 아니라는 뜻으로 들렸다.

일부에서는 임 위원의 재전달 행위는 표현의 자유에 속하는 것으로 간섭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언론출판의 자유는 헌법에 명시되어있는 국민의 권리이다. 하지만 임 위원의 재전달 사건과 표현의 자유의 문제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로 봐야 한다. 지금 우리는 표현의 자유니 민주주의니 하는 말들로 이 사건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진보나 보수 진영에서 오가는 정치적 비판이나 적대적 언어들의 윤리에 대해 성찰해야 한다.

저주의 언어.. 그리고 방심위의 헛발질

저주의 언어들은 개인의 존엄성과 인격을 모욕해가며 확산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정치적 반대 인사나 집단에 대한 비판 언어의 윤리와 미학은 좌․우, 진보․보수를 떠나 우리 사회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좋은 덕목 중 하나일 것이다. 특히 진보 진영의 인사들이 이러한 정치 언어의 윤리와 미학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할 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진보의 언어에 공감하고 지지를 보낼 것이다. 상대편도 막 나가니 우리도 막 나가자는 생각은 세련되지 못한 생각이다. 그래서 임 위원의 재전달 사건에서 우리가 제안해야 하는 것은 정치적 비판 언어의 윤리이다.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다. 이 기구는 ‘국가원수에 대한 명예훼손’을 사유로 임 위원 해임했다. 임 위원이 작성한 것도 아니고, 본인 스스로가 실수로 재전달한 것이라고 해명하고 사과한 사안인데 당사자의 해명과 사과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고 전격적으로 해임을 결정한 것이다. 그야말로 과잉반응에 헛발질이다. 방송통신심의위가 개혁되어야 하는 이유를 또 하나 덧붙인 것에 불과하다.

공적 인사의 정치적 비판은 달라야 한다

정치적 비판과 반대가 존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그리고 정치적 반대자를 향해 날선 비판의 언어를 쏟아 붓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특정한 정당의 편이나 집단의 편에서 내보낸 전위 투사가 아니고 공적인 역할을 위탁받은 사람들의 정치적 비판의 언어는 다른 사적인 언어와 달라야 한다.

인간의 존엄성과 인격을 말살하는 저주의 언어는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올 뿐이다. 그뿐 아니라 비판에 대한 지지는 사라지고 혼돈만 남을 것이다. 그러니 진보가 먼저 제안하고 시작하자. 정치적 비판 언어의 윤리와 미학이 우리 사회를 조금 더 변화시키는 밑거름이 될 것이란 생각을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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