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 이후 ‘통일은 대박’이란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조선일보도 올해 신년 기획으로 통일 이후 얻을 수 있는 경제적 효과를 강조하는 ‘통일이 미래다’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다. 대통령이 ‘통일’을 언급함에 따라 통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기대감도 높아진다. 그건 좋은데, 문제는 이 말에 실체를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북한은 최근 몇 차례 한국에 유화적 신호를 보냈다. 북한은 올해 열리는 인천 아시아게임에 남녀 축구대표팀을 참가시키기로 했고 지난 16일에는 상호 비방을 중단하자는 제안을 했다. 물론 북한의 속내는 알기 어렵다. 정작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최근 잇따라 군부대를 시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알길 없는 것은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이다. 대통령이 ‘통일은 대박’이라는 말을 계속해서 언급하고 있지만 그럼 통일을 어떻게 이룰지는 답이 없다. 저의가 의심스럽다고 해도 북한의 유화 제스쳐가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24일 “북한이 말만 내놓을게 아니라 행동을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말은 통일로 가는데 한 발 물러서 있다.

이런 상황에서 관심 가는 대목은 보수언론의 ‘엇박자’다. 지난해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대북정책으로 내세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해 이들 언론들은 큰 이견을 보이지 않았다. 대체로 이것이 민주당 정부 10년의 햇볕정책과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한다는 평가였다.

그런데 ‘통일은 대박’ 이후 북한의 유화적인 움직임이 나타나면서 보수언론의 평가가 갈리기 시작했다. ‘통일이 미래다’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는 조선일보는 북한의 유화적인 움직임에 대해 보다 선제적으로 대응할 것을 촉구한 반면,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지난해 박근혜 정부가 가져온 강경책을 유지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 조선일보 1월 24일자. 30면.
 
조선일보 최보식 선임기자는 24일 <“만나서 당신네 얘기 한번 들어보자”> 칼럼에서 “상대(북한)의 의도를 파악했다고 해서 곧바로 이를 떠드는 것은 하수”라며 최근 북한의 움직임에 대한 우리 정부의 대응을 비판했다. 최 기자는 “북한의 제안이 명백히 ‘술수’에 불과할지라도 ‘비방 중상을 중지하겠다는 북한의 전향적 자세를 환영한다. 실천 이행을 지켜보겠다’고 논평할 수 있었다. 빈말이라도 그렇게 해야 우리 입장이 유연해진다”고 지적했다.

최 기자는 “지금 북한 정세는 어느 때보다 예측이 어려워졌다. 폐쇄된 북한과 만나지 않고는 내부를 정확히 알아낼 길이 없다”며 “‘중대 제안’은 북이 우리 쪽으로 공을 던져준 것과 같았다. 북한을 잘 다루려면 접촉면을 늘려도 모자랄 판에 스스로 만날 기회를 차단한 격이 됐다”고 지적했다.

최 기자는 ‘통일 대박’ 발언에 대해서도 “상황적으로 북한의 급변사태를 염두에 뒀을 것이나 북한 체제 붕괴가 현실에서 통일로 연결되지 않는다”며 “북한 주민에게 ‘남한 사람처럼 사는 삶’을 원하는 움직임을 만들지 못하면 ‘통일 대박’은 한낱 선전술이거나 감상적 통일론에 그칠 뿐”이라고 지적했다.

   
▲ 동아일보 1월 24일자. 31면.
 
반면 동아일보의 방형남 논설위원은 다르다. 방 위원은 이날 <북을 변화시켜야 ‘통일 대박’ 된다>에서 “정부가 북한의 유화공세에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며 구체적 행동을 요구한 것은 바람직한 대응”이라며 “박 대통령이 ‘통일대박론’을 편 뒤 통일논의가 뜨거워졌지만 남북관계가 긴박해지면 통일담론은 순식간에 공론이 되고 만다”고 지적했다.

중앙일보도 동아일보와 같다. 중앙일보는 이날 1면에 <도발의 공식…북, 심상찮다>에서 “유화 공세 이면에 수상한 군사 동향이 감지된다”며 “북한은 대형 도발에 앞서 대화제의 등 유화공세를 펼치는 패턴을 보여왔다”고 지적했다. 다만 중앙일보 배명복 논설위원은 21일 “(정부대응이)이해는 되면서도 정부가 북한 정세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그런 대응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 중앙일보 1월 24일자. 1면.
 
보수 진영 사이에서도 이렇게 대북관계에 대한 의견이 갈리는 것은 앞서 언급한 바 대로 박근혜 정부의 통일 정책이 애매하기 때문이다. ‘통일은 대박’이라는데 통일을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알 수 없고, 신뢰 프로세스는 신뢰를 쌓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건지, 북한의 변화를 기다리겠다는 건지 알 수 없다. 북한의 변화가 전제라면 비핵·개방 3000과 같기 때문에 이 정책이 민주당 정권과 이명박 정권의 장점을 취합했다는 보수언론의 전제도 무너지게 된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통일은 대박’이라는 말은 기본적으로 실체가 별로 없는 것 같다”며 “남북관계를 갑을관계로 보는 의지가 강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말할 때는 과정을 강조했는데, ‘통일 대박’은 결론이 비약된다”며 “어떤 과정으로 통일이 되는지 말은 없고 상업주의적 발상만 강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럼 대통령이 이 알 수 없는 담론을 꺼낸 이유는 무엇일까? 정 대표는 “통일에 관심을 높이는 부분은 긍정적인데 과정과 수단이 없는 상태에서 뜬금없다”며 “북한의 급변사태가 멀지 않았다는 의식이 있는 것 같고, 통일이 진보적 아젠다라고 할 수 있을텐데 그 아젠다를 가로채서 공식적으로 통일론을 주도하려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통일은 대박’이라는 발언과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SBS 안정식 기자(북한학 박사)는 북한의 유화적 태도와 관련 “평화공세 차원이 강하다”며 “비방 중지는 좋지만 한미군사훈련 중단은 우리 정부도 수용할 수 없고 그걸 북한도 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측면에서 정부 말마따나 진정성이 있는 것 같지 않다”며 “결국 한미군사훈련을 하면 긴장 조성 국면으로 갈 가능성이 있지 않나 본다”고 말했다.

안 기자는 ‘통일은 대박’에 대해서는 “원론적으로 보면 우리가 통일을 해야 한다고 얘기하지만 왜 통일을 해야 하는지는 갈수록 설명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며 “젊은 층에서 세금도 더 많이 내는데 이대로 살았으면 좋겠다는 사람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왜 통일이 필요한가’에 대한 논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흡수통일이 목전에 온 것 같은 인상으로 접근한 것 아니냐는 생각은 든다”며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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