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림수산식품부가 전북 고창 동림저수지를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근원지로 추정하고 방역작업과 사람에 의한 전이를 막기 위한 통제 등을 강화하고 있지만 발병 위험 사실을 알고도 방역 조치가 미흡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특히 고병원성 AI(H5N8)가 검출된 것으로 확인된 동림저수지에선 철새의 영상취재를 위해 방송사가 헬기까지 띄우는 등 되레 야생철새의 이동을 부추긴 것으로 확인됐다.

SBS는 지난 20일자 8시뉴스에서 “동림저수지를 사이에 두고 반경 10km 안에서 철새와 오리의 폐사가 집중된 만큼 이 지역이 이번 AI의 최초 발생지일 수도 있다”며 자사 헬기가 철새들 위로 비행하는 장면을 내보냈다.

하지만 이때는 지난 17일 고창 종오리 농장에서 고병원성 AI 확진 판정이 나온 후 농림수산식품부와 환경부가 인근 철새도래지에 야생철새가 집단 폐사한 것을 확인하고 폐사체 수거에 나섰던 시점이어서, 저수지를 출입하던 관계자들에 대한 방역절차도 소홀한 채 언론사 헬기까지 진입토록 해 AI 보균이 의심된 철새들의 이동을 부추겼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번 AI 발생과 관련 환경부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철새 전문가 주용기 전북대 전임연구원은 22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야생철새 폐사체 수거가 진행 중이던 지난 19일 방송 인터뷰를 하러 저수지 현장에 도착했을 때 행정공무원과 경찰, 취재기자, 조류보호단체 관계자 등이 방제복도 입지 않은 채 몰려 있었다”며 “더욱이 SBS 방송사가 헬기까지 띄워 접근하는 바람에 새들이 많은 위협을 받았는데 혹시라도 병에 걸려 있는 조류라면 저항력이 더 떨어져 죽을 수 있고, 새들이 다른 서식지로 이동해 전국적으로 병이 전파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SBS 촬영 헬기가 고병원성 AI가 검출된 전북 고창 동림저수지 위를 날고 있다. 사진=SBS 8시뉴스 갈무리
 
실제로 동림저수지의 가창오리 등 야생철새 일부는 충남 당진의 삽교호로 이동한 것으로 확인됐다. 주용기 연구원에 따르면 22일 오전 삽교호에서는 가창오리 4만여 마리가 발견됐으며 동림저수지에서 이동했던 철새들이 점차 떼 지어 들어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주 연구원은 “이미 지난달 20일 환경부 자연보전국장이 주관한 회의에서 이 같은 철새 이동 사실이 전달됐지만 관계 당국은 아직까지 별다른 방역작업이나 통제조치를 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SBS 촬영 당시 현장에 함께 있었던 한 지역언론 기자는 22일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SBS 등 방송사에서 헬기를 띄워 고창군 관계자들과 주민들이 크게 분개했다”며 “철새가 청각에 민감한데도 헬기 소리가 매우 컸고 취재진이 무리해서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철새가 스트레스를 받아 날아간 원인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기자는 “저수지에 접근하는 공무원들이나 취재진에 대한 소독도 제대로 하지 않았으며 특히 초기에는 공무원을 포함해 기자들도 방역복도 입지 않고 들어가 촬영을 했다”며 “(나를 포함한 취재진의 현장진입을) 엄격히 제재하지 않아 그렇게 된 면도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지역방송사 기자도 “우리가 현장에 갔을 때 일부 출입 통제가 되긴 했지만 방역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고 말했다. AI 확산 조짐을 보이던 지난 21일에도 의심 신고가 들어온 정읍시 소송면 축산농가에서는 방문한 기자들이 방제복도 입지 않은 채 축사 근처에서 촬영하고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지난 21일 AI 의심 신고가 들어온 정읍시 소송면 축산농가에 방문한 기자들이 방제복도 입지 않은 채 축사 근처에서 촬영하고 있다. 사진=주용기 전북대 전임연구원 제공
 
김종률 환경부 생물다양성과 과장은 22일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폐사체 수거 현장에 나가 있는 국립환경과학원 직원들은 방역복을 입고 재오염과 감염 부분을 잘 조치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기자들과 공무원들이 제대로 방역을 했는지는 현장에 없어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신동수 전라북도청 산림축산과 담당자는 “현재 국립환경과학원이 상주하며 계속 폐사체 수거를 진행하고 있는데 취재진의 진입 문제에 대해서도 얘기를 들었다”며 “도에서도 가급적 방문 취재를 삼가고 통제구역 밖에서 촬영하도록 협조 요청을 하고 있지만 사실상 강제로 제재하기는 힘들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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