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주요 일간지들은 안철수 신당이 가시화 된 소식을 내보냈다. 그런데 이날 일간지 가운데 사설과 칼럼 등으로 안철수 신당에 조언 혹은 충고, 나아가 경고를 하는 일간지가 있어 주목된다. 조선일보·동아일보·세계일보가 사설을 썼고, 중앙일보는 김진 논설위원이 칼럼을 썼다.
해당 신문사의 공식 입장인 사설을 통해 특정 정치세력을 언급하는 일이 드문 일은 아니나 대체로 ‘발생한 사건’에 대한 비판 혹은 격려 정도지 향후 방향에 대한 훈수를 두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이들 신문사들의 입장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야권 연대를 하지 마라”
▲ 동아일보 1월 22일자. 31면. | ||
동아일보는 이어 “공천을 하기도 전에 ‘이번에는 우리가 양보 받을 차례’라며 특정 지역에서 민주당의 양보를 거론하거나 야권과의 연대를 기대한다면 존립 기반을 허무는 자충수”라며 “야권연대 같은 정치 공학에 의존해서는 안철수 현상을 극복하기 어렵다”고 충고했다.
조선일보는 지난 20일 자사가 보도한 안철수 의원의 ‘박원순 양보론’을 두고 안 의원 측을 비판하는 칼럼을 썼다. 그러나 이에 대해 새정치 추진위원회 금태섭 대변인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실제로 (박원순 시장이든 누구든 안 의원이) 양보하라고 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 조선일보 1월 22일자. 31면. | ||
조선일보는 “정당이 정강과 정책을 세우고 정상적인 과정을 통해 후보자를 공천해 유권자의 심판을 받는 것이 정치의 기본”이라며 “아름다운 듯했던 안·박 두 사람의 갈등을 보면서 정치의 기본을 벗어나는 행동은 어떤 대중적 ‘감동’으로 포장하더라도 정도가 아닌 사도라는 평범한 진실을 다시 확인한다”고 주장했다.
어조의 차이는 있지만 두 신문은 분명 안철수 신당을 향해 야권연대를 하지 말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것이 정치의 기본이고, 야권연대를 이루는 것은 ‘한국정치의 병폐’이며 ‘정치공학’이라고 주장이다.
정치의 기본은 공약의 이행인데, 이들 언론이 자꾸 대통령에게 공약 이행을 하지 말라고 주문하는 것은 둘째 치고, 정치적 연대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주로 내각제를 채택한 국가에서 연정이 이어지고 있지만 지난 2010년 야권의 입장에서 지방선거 연대는 비교적 성공적인 사례였다.
물론 그 평가는 다를 수 있고 유권자들의 선택도 다를 수 있다. 2012년 총선에서도 일부 야권연대가 이뤄졌지만 유권자들은 새누리당의 손을 들어주었다. 2012년 대선도 마찬가지다. 각 정치세력은 각자의 판단에 맞춰 선거전략을 꾸리면 된다. 이를 선택하는 것은 유권자의 몫이다.
그런데 아직 선거전이 돌입되기도 전에 야권연대에 대해 일방적 비난을 퍼부으면서 안철수 의원 측을 향해 비판을 혹을 훈수를 두는 것은 뭔가 자연스럽지 못하다. 두 언론의 주장의 근거가 새누리당의 주장과 일치한다는 점은 ‘기분 탓’이라고 해도, 마치 야권연대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처럼 겁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 중앙일보 1월 22일자. 31면. | ||
김진 위원은 “선거연대는 정치적 선택의 문제라는 주장도 많다”며 “이는 정당정치의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어 “국고를 받으면 정당은 자유로운 민간 결사체가 아니라 공동체의 의무를 지켜야 하는 공공의 존재가 된다”고 말한다. 선거연대가 ‘공동체의 의무’를 해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정당이 선거 승리를 위해 목을 매는 것은 한국정치 구조가 ‘승자독식’으로 이루어져있기 때문이다. 30%의 지지만 받아도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다면 70%의 의사가 무시되는 선거제도가 한국정치의 진정한 병폐다. 그런데 이들 언론들은 그런 지적 없이 ‘야권연대’가 병폐라고 한다.
이들 언론들은 현재 선거제도에 대해 관심이 없다. 보수세력의 장기집권에 현행 선거제도가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야권연대가 ‘국민을 기만한다’고 주장한다. 1+1 수준의 현재 야권연대가 보기 껄끄러울 수 있지만 사실은 야권연대가 아닌, 야권의 승리에 더 겁이 나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