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배 중인 철도노조 집행부가 14일 자진출두 의사를 밝혔지만 경찰은 민주노총 앞에 진을 치고 이들을 굳이 연행하겠다고 버텼다. 한겨레는 15일자 사설에서 “전쟁에서 진 장수에게도 마지막 예의는 갖추는 법”이라며 “하물며 제 발로 경찰서로 향하는 노조 지도부를 향해 먹잇감 채가듯이 달려드는 것은 최소한의 자존심마저 짓밟는 야만행위”라고 비판했다.

그런데 동아일보는 철도노조 집행부가 제 발로 경찰서를 들어가는 모습을 찾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동아일보는 사설 <“국민의 뜨거운 성원 받았다”는 철도노조의 국민 우롱>에서 “(철도노조) 핵심 지도부는 자진 출두한다고 했다가 ‘경찰 철수 없이는 자진 출석도 없다’고 오락가락하며 공권력을 우롱했다”고 주장했다.

이날 동아일보 사설은 몇 가지 중대한 오류가 있다. 글의 도입부에 있는 위의 ‘공권력 우롱’이 동아일보의 판단이라고 해도 문제가 있는 표현인데, 그 아래 문단부터 드러나는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김명환 철도노조 위원장은 어제 기자회견에서 ‘국민의 뜨거운 성원이 있었기에 철도 민영화 저지의 대장정을 할 수 있었다’며 ‘민영화를 하면 안 된다는 전 국민적 합의를 이뤄낸 것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성과’라고 말했다. 제멋대로 끌어다 붙인 어불성설이다. 국민이 파업 기간에 불편함을 참고 견딘 이유는 툭하면 ‘떼 법’으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공기업 노조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기 위해서였다. 수서발 KTX 자회사가 ‘철도 민영화’가 아님은 확인했지만 철도를 민영화해선 안 된다는 국민적 합의가 이뤄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코레일의 경영효율화를 위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국민이 알게 된 것이 지난 파업이 가져다 준 성과라면 성과다.”

   
▲ 동아일보 1월 15일자. 31면. 사설.
 
동아일보는 철도노조 김명환 위원장의 발언을 ‘어불성설’이라고 하지만 동아일보의 사설이 진정한 ‘어불성설’이다. 파업기간 동안 많은 시민들이 ‘민영화 저지를 위해 불편함을 참고 견디겠다’는 발언이 SNS 등을 통해 이어졌다. 철도민영화 저지 결의대회에는 10만여명의 인파가 몰리기도 했다.

물론 동아일보의 주장대로 “노조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동아일보는 그런 사람들을 전체 국민의 뜻인 양 확대해석하고 있다. 여기에 철도노조 파업이 진행될 당시 여론조사에서 KTX 철도민영화 추진에 반대하는 사람이 61%였다.(리서치뷰 12월 19일 발표) 누가 더 ‘어불성설’을 하고 있는지, 어디서 국민적 합의가 이뤄졌는지 알 수 있다.

두 번째는 사실의 자의적 해석이다.

“코레일 부채는 18조 원으로 빚을 내서 빚을 갚는 형편이다. 지난 5년 동안 부채 비율이 73.8%에서 214.7%로 급증했고 이대로 가면 2020년에는 부채가 30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코레일은 5년간 수천억 원의 성과급을 지급했고 철밥통을 대물림하는 고용 세습 단체협약까지 만들었다.”

코레일 부채는 그동안 언론에서 보도된 바대로 정부정책과 더 깊은 연관이 있다. 지난해 12월 26일 박원석 정의당 의원 주최의 ‘철도 민영화 방지 해법 마련을 위한 토론회’에 참석한 사회공공연구소의 박흥수 객원연구위원은 “코레일 부채 17조원 가운데 10조원 정도는 영업부실과 관계없이 쌓인 빚”이라고 말했다.

박 위원에 따르면 2009년 민자사업으로 추진됐던 인천공항철도를 인수하면서 1조2000억원, 용산개발 무산으로 인한 대손충당금 2조7000억원, 법인세 1조원 등이 빚에 포함됐다. 여기에 자산으로 분류되는 차량구입비 2조5000억원, 회계기준 변경으로 늘어난 빚이 3조원이다. 하지만 동아일보 등은 마치 이 빚이 철도 노동자들의 고임금과 방만경영 때문이라는 등 사실을 아전인수 해왔다.

또한 동아일보가 주장한 ‘철밥통을 대물림하는 고용세습 단협’은 ‘유가족 특채’를 말한다. 철도 노동자가 숨질 경우 자녀를 특별채용하는 조항인데, 이 조항의 적절성 여부에 대해서는 찬반이 오간다. 다만 코레일에서는 이 조항이 지난 2010년 폐지됐다.

동아일보의 내심은 민영화다. 동아일보는 지난 2일 <방만경영과 부패로 얼룩진 공기업의 개혁 원년 만들자> 사설에서 “민영화를 논의구조에서 처음부터 배제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2월 21일 <철도 경쟁 체제 도입을 위한 진통 멈출 수 없다> 사설에서도 “‘철도 민영화=악(惡)’이라는 식의 단순 논리부터가 철밥통 공기업 노조의 기득권 보호를 위한 낙인찍기”라고 밝힌 바 있다.

이런 상황에서 15일 등장한 동아일보의 이 같은 무리한 사설은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민영화 하지 않겠다’는 못을 박도록 만든 철도노조에 대한 불만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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