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다케시마(독도의 일본명)는 일본 고유영토’라는 주장을 중·고교 교과서 제작 지침에 반영하겠다고 밝히면서 언론이 이를 주요 뉴스로 다뤘다. 하지만 일본 교과서의 역사왜곡에 주목하던 몇몇 언론은 교육부 최종승인을 받은 교학사 교과서에서 수백 개의 추가 오류가 발견되었다는 점에는 침묵했다.

시모무라 하쿠분 일본 문부과학상은 14일 기자회견에서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과서 편집지침인 ‘학습지도요령해설서’에 독도와 센카쿠열도가 일본의 고유영토라고 명기하겠다는 방침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시모무라 문부상은 “아이들이 영토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국가로서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부는 즉각 반발했다. 조태영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일본의 움직임은 제국주의적인 영토 야욕을 상기시키는 매우 온당치 못한 행동”이라고 강조했다.

많은 언론이 일본 교과서 소식에 대해 보도했다. 국민일보와 세계일보 등은 15일자 기사를 통해 일본의 교과서 지침과 외교부의 반발을 전했다. 중앙일보는 15일자 기사 ‘아베와 사상적 동지로 분류되는’ 시모무라 문부상이 ‘교과서 도발’을 감행했다며 “한·일 관계는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라고 밝혔다.

   
▲ 15일자 중앙일보 10면
 
MBC와 KBS도 ‘비판적인 논조’로 관련 소식을 전했다. MBC 뉴스데스크는 메인뉴스 첫 번째, 두 번째 꼭지에서 관련 소식을 다루며 “일본 정부, 한일관계를 개선시킬 의사가 있기는 있는 걸까” “아베 정권은 침략과 가해사실을 인정치 않는 역사 교육 체제를 임기 내에 마무리하겠다는 의도를 숨기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KBS 뉴스9는 ‘일본 정부, 교과서 지침에 “독도는 고유 영토”’에서 “일본 내에서도 비판이 나오고 있다”며 “아베 정권이 들어선 후, 교과서에 우익시각을 심는 움직임은 착착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이들 언론은 하나같이 ‘교학사 교과서’ 관련 소식에는 침묵했다. 14일 교육부가 최종 승인했던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에 여전히 수백 건의 오류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교학사 교과서 최종본의 한국 근현대사 부분을 조사한 결과 357건의 오류가 발견됐다고 밝힌 것이다. 간도 분쟁을 서술하며 엉뚱한 지도를 사용하거나 미국이 인도차이나에 식민지를 가진 적 없다고 서술한 부분이 대부분이다. 친일이나 독재를 미화하는 부분도 남아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 14일자 MBC뉴스데스크 갈무리
 
이뿐만이 아니다. 교학사는 교육부가 수정하라고 지시한 사항이 수정되지 않은 교과서를 배포했다. 교학사가 교육부 최종승인을 받은 자체 수정안 751건 중 교과서 292쪽 하단 ‘이야기 한국사’ 코너로 담은 ‘인촌 김성수’를 완전히 삭제하겠다는 내용이 있는데, 교학사가 13일 배포한 교과서에는 해당 내용이 삭제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 38조는 검정도서의 내용·체제·지질 등이 검정한 것과 다를 때는 교육부장관이 검정 합격을 취소하거나 1년의 범위 내에서 발행을 정지시킬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아예 ‘검정을 취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일본 교과서의 왜곡 소식을 전하던 언론들은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의 왜곡에는 침묵했다. 일본 교과서 발행지침을 질타하던 KBS와 MBC는 교학사 교과서 관련 소식은 전하지 않았다.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주장이 역사왜곡이라면, 교학사 교과서에 나오는 수백 개의 사실관계 오류와 친일독재 미화 등도 역사왜곡 아닐까.

보수언론과 MBC·KBS 등은 아베 정권과 일본 문부상이 역사왜곡을 통해 ‘우익의 시각’을 심으려 한다고 비판했다. 같은 논리로 교학사 교과서를 지키자며 구매운동을 벌이는 한국 우익들, ‘검정 취소’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은 채 교과서 반대운동에 대한 ‘외압’ 조사를 벌이는 교육부, 교학사 교과서가 채택이 되지 않자 ‘국정교과서’ 운운하는 집권세력도 ‘우익의 시각’을 심으려 무리수를 둔다고 비판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SBS 9시뉴스는 균형을 맞췄다. 14일자 SBS 9시뉴스는 ‘“독도는 일본 영토”…日 교과서 제작지침 강행’에서 일본 교과서 소식을 전한 뒤, 이어 “이번에는 우리나라 교과서 이야기다. 당장 오는 3월부터 사용해야 하는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가 엉망으로 만들어졌다는 게 다시 한 번 드러났다”며 교학사 교과서의 문제점을 짚었다.

JTBC 9시 뉴스 역시 일본 교과서와 교학사 교과서 문제를 같이 짚었다. JTBC 뉴스9는 ‘최종본 또 대폭 수정한 교학사 교과서…허술한 검정 논란’에서 교학사 교과서의 문제점을 짚고, 양철우 교학사 회장을 스튜디오로 불러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후 ‘일본 “교과서 지침에 독도는 일본 땅 반영” 공식 확인’에서 일본 교과서 지침의 문제점도 짚었다.

   
▲ 14일자 JTBC뉴스9 갈무리
 
하지만 무엇보다 날카로웠던 보도는 미국 ‘뉴욕타임즈’ 사설이었다. 뉴욕타임즈는 13일자(현지시각) 사설 ‘정치인과 교과서’에서 “두 나라 정부의 역사 교과서 수정 노력으로 역사의 교훈이 뒤집힐 위험에 빠졌다”며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전쟁과 친일 문제에 민감한 가정사를 가졌다. 박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는 일제 때 만주군이자 1962~79년 한국의 독재자”였고, 아베 총리의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는 A급 전범 용의자“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즈는 이어 “박 대통령이 일제 때 친일파 문제를 축소하길 원해, 지난해 여름 ‘친일은 일제의 강압에 의한 것’이라고 기술한 새 교과서를 승인하도록 교육부에 압력을 가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즈의 비판이 박근혜 정부는 물론, 일본 교과서의 역사왜곡에는 분노하면서 한국 교과서의 역사왜곡에는 침묵하는 한국 언론의 모순을 지적한 것처럼 들리는 이유는 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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