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학사 한국사 교과서가 불러일으킨 역사교과서 논란은, 교학사 교과서 채택률이 0%에 근접하면서 교학사, 나아가 이른바 ‘보수 역사학계’의 완패로 끝났다. 하지만 한국사회 주류층의 역사전복시도는 아직 진행형이다. 그들은 그들이 주장하는 이른바 ‘대한민국 사관’이 관철될 때 까지 현 역사학계를 좌파로 매도하고 교학사 교과서 채택을 반대한 사람들을 ‘종북’으로 몰고 갈 것으로 보인다.

대체 그들이 주장하는 ‘대한민국 사관’이란 것이 무엇일까? 여기에 대한 솔직한 답변이 나왔다. 동아일보 9일자 34면에 실린 황호택 논설주간의 칼럼에서다. 칼럼의 제목은 <주류 좌파에 찍히면 아웃되는 한국사>다.

황 주간은 “교학사를 제외한 7종 교과서 중에서는 지학사 교과서가 비교적 균형이 잡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그 ‘균형’의 근거는 아래 문단에서 설명한다.

“지학사 교과서는 일제강점기에 동아 조선일보가 한국인을 대변하는 표현기관임을 자임하며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 이바지했다고 평가한다. 지학사 교과서는 1936년 동아일보의 손기정 선수 일장기 말소 사건을 다루며 그때까지도 항일정신이 살아 있었지만 마침내 1940년 총독부에 의해 폐간됐다고 소개한다”

   
▲ 동아일보 1월 9일자. 34면.
 
물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초기 민족지의 성격을 띄었던 것은 사실이다. 특히 1936년 동아일보가 마라토너 손기정 선수의 사진에 일장기를 말소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임꺽정>의 저자 벽초 홍명희, 남로당의 박헌영 등도 동아일보 출신이다.

그러나 이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사실상 일본에 ‘굴복’했다. 특히 조선일보는 방응모 사장이 인수한 이후 노골적인 친일행각을 드러냈다. 조선일보는 여러 기록에서 친일파로 분류된 방응모 사장이 ‘민족주의적 선각자’라고 주장했지만 지난 2012년 방우영 조선일보 명예회장이 행정안전부를 상대로 낸 친일반민족행위 결정 처분 취소 청구소송에서 재판부는 방응모 사장의 행위가 친일행위로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동아일보 김성수 사장도 마찬가지다.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폐간된 동아일보가 1937년 복간된 뒤에는 여러 차례 동아일보에 일본 침략전쟁을 미화하는 글이 올라왔다. 김성수 본인도 중일전쟁 발발당시 일본의 정당성을 설파하기 위해 직접 연설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지속적으로 이들의 행적을 민족주의자로 미화하고 친일행각은 일본의 탄압이 거세 어쩔 수 없는 행동이었다고 변명하고 있다. 황호택 주간이 지학사 교과서를 ‘균형있다’고 표현한 것은 이 교과서가 이들의 행동을 ‘민족지’라고 평가하기 때문일 것이다.

   
▲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중
 
실제도 이들 언론들이 옹호하고 있는 교학사 교과서의 경우 조선·동아일보의 초기 민족적 성격을 부각하면서 친일행각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다. 아래는 최종 검정 통과 전 교학사 교과서에 나오는 김성수 사장에 대한 평가다.

“일제로부터 창씨개명을 강요당하였으나 거절하였고, 일제가 주는 작위도 거절하였다. 그는 일본의 진주만 공습을 보고 일본이 패망할 것이라고 예상하였다. 이승만이 하는 ‘미국의 소리’단파 방송을 송진우, 장택상 등과 함께 비밀리에 청취하기도 했다. (중략) 그러나 1943년 총독부 기관지라 할 수 있는 매일신보 사설란에 김성수 명의로 징병에 찬성하는 (중략) 글이 실렸다. 물론 이 글은 매일신보의 김병규 기자가 명의를 도용하여 쓴 것이라고 하는데 오늘날까지 논란이 되고 있다”

교학사는 이후 최종검정을 거치면서 ‘일본식 성명 강요를 거부하고, 일제가 제의하는 작위와 귀족원 의원직도 거절하였다’는 내용을 삭제하고, “경영자로 활동하면서, 일제의 통치정책에도 상당 부분 협력하였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또한 ‘해방 후 이승만, 김구와 함께 신탁통치 반대 운동을 이끄는 정치인이 되었다’는 내용을 추가했다.

   
▲ 동아일보를 창간한 인촌 김성수 회장이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1943년 8월 5일)에 기고한 학병 권유 칼럼
 
최종 검정을 통해 내용은 수정되었지만 교학사 교과서는 김성수 사장과 동아일보를 ‘독립운동가’와 ‘민족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아울러 친일 행적은 ‘도용’이라고 주장한다. 애초에 이 교과서의 목적을 드러내는 한 단면이다.

하지만 민족문제연구소 박수현 연구실장은 “교학사가 친일을 미화하고 있다는 문제가 되는 결정적인 부분이 바로 이것”이라며 “창씨개명으로 친일 여부를 가리는 건 부적절하고 매일신보 표절 내용은 현재 김성수가 반민족행위자가 아니라는 소송이 진행중인 상황에서 (동아일보 쪽이)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박 실장은 “매일신보 사설 외에도 김성수의 친일행각은 드러난 것이 많다”며 “친일단체에서 활동한 흔적도 있고 자기집 문짝을 떼어 (일제) 군수품으로 냈다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 민족지가 되고 싶은 동아일보. 2010년 2월 23일자. 29면.
 
교학사 역사 교과서가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자발적 움직임으로 자연스럽게 퇴출됐듯이 동아일보 또는 조선일보가 자신들을 아무리 ‘민족지’라고 강변해도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에선 쉽게 받아들여질 수 없다. 창간 초기 민족지의 성격을 띄고 있었다고 해도 일제 후기 이들을 민족지라고 표현하기에는 그들의 행위가 너무 적나라했다.

다만 이들이 왜 교학사 교과서를 ‘마녀사냥’, ‘인민재판’이란 표현을 쓰면서까지 보호하고 있는지, 그 이유의 일단은 황호택 주간 칼럼으로 일부분은 드러난 것 같다. ‘민족지에 대한 콤플렉스’, 대한민국 건국 이후 오랜 시간 동안 한국사회 주류를 형성해왔던 이들 언론들과 지배층은 친일행각을 했거나 친일행각으로 인한 부를 물려받았거나 혹은 독재정권에 부역하며 지배구조를 유지해왔다.

   
▲ 동아일보 1면에 실린 천황과 천황 부인
 
‘균형잡힌 역사’란 대한민국 건국이 이루어졌지만 친일 잔재를 청산하지 못했고, 경제발전은 이루어졌지만 그 부작용도 함께 발생했으며, 결정적으로 독재와 친일은 잘못된 행위라는 인식이 담겨야 한다. 건국의 정당성, 경제발전에 대한 공과는 평가가 다를 수 있지만 독재와 친일이 잘 한 행동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들은 친일과 민족자결운동, 독재와 경제발전을 명암으로 맺는다. 이에 동의하지 않으면 ‘좌파 사관’이다. 하지만 대중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니 아예 ‘국정교과서’로 가자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민족지’가 되고 싶은 욕망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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