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서 유일하게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채택했던 경북 청송여자고등학교가 8일 교과서 선정 재검토 방침을 밝혔지만 청송여고 설립자인 고 박명준 전 이사장의 과거 행적과 관련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박지학 청송여고 교장은 8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학부모들의 요구에 따라 학부모들이 원하는 대로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며 “교학사 교과서 채택 철회는 아니고 재검토를 해보겠다는 것이므로 결과는 지켜봐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청송여고는 지난 교과서 선정 과정에서 생략했던 학교운영위원회의를 오는 9일 오전 열어 교과서 선정을 재논의할 예정이다.

박 교장은 또 박 전 이사장이 5·16군사쿠데타 이후 박정희 정부의 반공 이념과 정권의 정당성 홍보했던 국가재건국민운동본부 청송군지부장을 지냈던 것과 관련해서는 “돌아가신 부친이 이것저것 안 한 일이 없지만 그런 것을 따지는 사람이 개인 재산을 희사해 학교를 세웠겠느냐”며 “(부친의 행적을 미화하려는 의도라는 주장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 청송여고 공식홈페이지 갈무리
 
미디어오늘이 대구일보(2004.10.14.), 영남일보(2007.3.14.), 경북도민일보(2007.3.12.) 등에 실린 기사 내용과 민족문제연구소의 인물DB 자료를 살펴본 결과, 박명준 전 이사장은 현 박지학(장남) 교장의 부친으로 지난 1925년 일제강점기 경북 청송군에서 태어나 청송공립심상소학교를 졸업하고 해방 전후인 1940~50년대 청송군청 내무과 지방행정주사로 근무했다. 특히 그는 1961년 5·16군사쿠데타 이후 6월 박정희 전 대통령이 공포한 ‘재건국민운동에관한법률’에 따라 전개된 국가재건국민운동본부의 청송군지부장을 역임했다.

한국근현대사사전 등 사료에 따르면 5·16군사쿠데타 세력은 정권을 장악하자마자 쿠데타를 ‘국민혁명’으로 만들기 위해 사회지도층이 참여하는 재건국민운동을 전개했다. 이들은 재건국민운동을 자신들의 통제 아래 두고자 재건국민운동본부를 ‘국가재건최고회의’ 산하 기구로 배치하고 재건국민운동본부를 하향식 건설방식으로 전국에 걸쳐 조직했다.

이 본부는 △용공중립사상의 배격 △내핍(耐乏)생활 실천 △근면정신 고취 △생산 및 건설의식 증진 △국민도의 앙양 △정서순화 △국민체위 향상 등 7가지 세부 실천요강을 정해 활동했지만 당시 본부장이었던 유진오 박사(전 고려대 총장)가 “이것은 전체주의체제에 불과하다”며 자진해 물러난 뒤, 국민의 냉소적인 반응으로 흐지부지됐다가 1975년 12월 새마을운동중앙회로 흡수·합병됐다.

박 전 이사장은 이후 1973년 학교법인 청경학원을 설립하고 청송여자중·고등학교 이사장을 지내다가 몇 해 전 병환으로 타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2007년 참여정부 시기 청경학원을 설립해 농촌여성교육 확대하고 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했다는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 고 박명준 청송여자고등학교 초대 이사장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정의당 경북도당은 8일 논평을 내고 “청송여고의 박명준 초대 이사장은 독재정권을 옹호하던 소위 재건운동본부라는 조직에서 활동한 이력이 있다”며 “혹시라도 청송여고가 교학서 교과서를 통해 박 전 이사장의 불명예스러운 행적을 미화하려는 것이 주목적이 아니라면 교학사 교과서 선정은 즉각 취소돼야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정의당은 이어 “왜곡 교과서를 정부가 앞장서서 승인하는 것도 비상식적인 일이지만,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우리의 역사를 왜곡해서 가르치는 것도 대단히 비상식적인 일”이라며 “이는 비정상화를 정상화한다는 박근혜 정부의 정부시책과도 엇나가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한편 교육부가 이날 오전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선정했다 철회한 전국 20개 고교의 특별조사를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나승일 교육부 차관은 “몇몇 학교가 일부 시민단체 등의 특정 교과서 선정 결과에 대한 일방적 매도에 따른 부담감, 학교 현장의 혼란 방지 등을 위해 교과서 선정을 변경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주장해 물타기라는 비판을 사기도 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의원들은 이날 오후 국회 기자회견에서 “헌법 31조가 규정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고 학교 자율성을 보장해야 할 교육부가 청와대·새누리당의 꼭두각시가 됐다”며 “학생과 학부모, 동문회 등이 부실·친일 교과서가 학교로 들어오는 것을 막았는데 정부·여당은 국민 입에 재갈을 물리려고 외압 논란을 만들어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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