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민주노총 총파업 결의대회에 10만여명의 노조원 및 시민들이 운집했다. 이는 박근혜 정부 출범 후 최대규모다. 이를 바라보는 30일 일부언론의 시각은 두 가지다. 무시하거나 혹은 비난하거나.

동아일보는 총 4면에 걸쳐 철도파업을 ‘불법파업’으로 규정하고 총파업 결의대회를 ‘불법집회’로 규정했다. 그리고 공권력의 엄정한 법 집행, 즉 ‘강제진압’을 부추긴다. 그 근거는 ‘시민들의 불편’이다.

“국민을 위해 철도 민영화를 막겠다며 거리로 나온 철도노조 등 민노총 조합원들의 안중에 정작 국민은 없었다”(1면 <툭하면 불법파업-시위…국민이 우선이다> “주말인 28일 오후 서울의 심장부인 태평로와 세종로가 불법 시위대에 의해 유린당했다. 이 부근에 있던 시민들은 체감온도로 영하 8.4도의 추위 속에 발이 묶인 채 오도 가도 못했다”(2면 <수천명 도로로 우르르…‘폴리스 라인’ 맥없이 와르르>), “불법 시위의 1차적인 원인은 ‘떼쓰면 통한다’는 후진적인 시위문화 때문이라는 지적”(3면 <불법시위자는 풀려나고 경찰만 문책>)

   
▲ 동아일보 12월 30일자. 1면.
 
동아일보는 바로 그 ‘국민’들이 왜 영하의 추운 날씨 속에서도 10만여명이나 모였는지는 관심이 없다. 파업을 하면, 집회와 시위를 하면 당연히 국민들은 불편하다. 하지만 이날 모인 집회 참가자들 역시 국민이다. 시민들의 불편한 목소리를 전할 수는 있지만 그 10만여명이나 되는 취재원의 목소리가 동아일보에는 단 한 줄도 나오지 않았다.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거나 이번 선거를 부정선거로 바라보는 국민의 목소리는 ‘시위-파업이 불편하다’는 또 다른 국민들의 목소리에 가려져 소개되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총파업 집회 현장을 보도하지 않았다. 조선일보의 30일 보도 속에는 이동휘 사회정책부 기자의 <엄동설한 집회 속, 철도 노조원들의 푸념> 제하의 기자수첩이 현장의 목소리 전부다. 이 기자는 “(철도노조원들 중에는) 강추위로 투쟁 의지도 얼어붙었는지, 투쟁가를 크게 따라 부르거나 구호를 외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며 “취재 중 만난 철도노조원 중에는 ‘솔직히 누구 말이 맞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고 보도했다. 취재가 사실인지 모르지만 굳이 ‘더러’ 나오는 목소리 말고 ‘대부분’이 주장하는 목소리는 담기지 않았다.

10만명이나 되는 철도민영화 반대 목소리 중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면 사실 ‘관제언론’이나 다를 바 없다. 이들을 이렇게 부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번 수서발 KTX 자회사 분리를 바라보는 이들의 시각 때문이다. “정부가 말하니 믿으라”, 이것이 해당 언론들의 일관된 시각이다. 왜 자회사를 분리하는 경쟁체제가 민영화의 전초로 받아들여지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정부를 비판하는 시각도 “선전이 제대로 안됐다”에 그친다.

   
▲ 중앙일보 12월 30일자. 30면.
 
중앙일보는 이날 사설 <철도파업 고질병, 시민의 인내심으로 뿌리 뽑자>에서 “정부와 코레일이 수서발KTX를 공기업 자회사로 설립해 선의의 경쟁을 하며 시민들에게 더 값싸고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데 왜 노조의 허락을 받아야 하나”라고 말했다. 정부 입장에서 한 치도 틀림이 없다.

왜 코레일이 기간망인 선로도 다 국세로 깔아놓고 이제 흑자만 보면 되는 알짜노선을 따로 독립을 시킨다는 건지, 코레일의 누적적자가 크면 흑자노선을 운영해야 하는데 왜 그걸 따로 떼어낸다는 건지에 대한 의심에 이들 언론들은 답하지 않고 있다. 중앙일보는 “노조가 노사협상 대상이 아닌걸 요구하면서 철도라는 국가 기간망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게 이번 사태의 본질”이라고 말했지만 국가 기간망은 정부가 함부로 건드려서도 안 되는 것이다. 국가의 주인은 헌법에 규정된 바대로 국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정부는 대화도 중재도 협상도 없다.

철도노조와 많은 전문가들은 자회사가 분리된 후 자회사의 정관만 개정하면 민영화 수순으로 쉽게 넘어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정부는 ‘절대 아니’라고 하지만 이들 언론들 사이에서는 조금씩 “민영화 하면 어때?”라는 말이 새어나오고 있다.

   
▲ 조선일보 12월 30일자. 38면.
 
중앙일보 이철호 수석논설위원은 30일 <민영화가 뭐 어때서> 칼럼에서 “민영화의 실패사례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며 “적어도 국내에서 나쁜 민영화의 기억은 없다”고 말했다. 이 수석논설위원은 그러면서 KT&G, KT 등을 예로 들었는데 이들 기업이 민영화로 전환하면서 이뤄졌던 구조조정 쓰나미는 관심조차 없다. 그들이 애타게 찾는 ‘국민’들의 일자리가 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박살이 났음에도.

더구나 철도는 이들과 다르다. 기호품인 담배를 기간산업인 철도와 맞물려놓는 것은 어이없는 일이다. KT가 민영화해서 성공했다고 하는데, 우리 국민들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통신비를 물어야 한다. 석유공사가 SK가 됐지만 가격담합으로 가격부담은 높아졌다.

조선일보에 칼럼을 쓴 김영용 전남대 교수도 마찬가지다. 김 교수는 지난 26일 <정부, 당당하게 민영화 관철해야> 칼럼에서 “코레일은 계열사 설립을 통한 경쟁 체제 도입으로 경영 개선을 괴하려 하지만 코레일이 정부 투자 기업으로 남는 한 의도하는 목적은 달성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보수인사들도 이번 자회사 분립에 대해 이렇게 바라보고 있다.

때문에 김 교수는 “경제를 비롯한 사회문제 대부분은 사(私)보다 공(公)이 우월하다거나 사적 시장에 맡겨 놓으면 혼란에 빠질 것이라는 그릇된 개념에 그 근원이 있다”며 “공이 사를 완전히 대체한 것이 사회주의며, 사회주의는 완전히 몰락했다”며 민영화를 더 강력하게 추진할 것을 주장했다. 그의 발언의 위험성은 차지하고라도 차라리 이런 내용이 더 솔직하다.

이들 언론에게 국가는 청와대며 국민은 청와대의 통치 아래 평화로운 시민들을 뜻한다. 이런 시각은 관제언론이나 다를 바 없다. 물론 어떤 국민은 파업과 집회가 불편할 수도, 어떤 조합원은 파업을 반대할 수도 있다.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도 있을 수 있지만 민영화를 반대하고 정권을 비판하는 것 또한 국민이다. 이런 국민들의 목소리를 무시한 체 ‘국민을 위해’라고 말하는 것은 공정하지 못한 일이다. ‘법과 원칙’이 중요하다면 추상적인 ‘불편’ 말고 ‘집회와 결사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는 것이 더 맞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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