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국가정보원 여직원 댓글 사건’ 수사를 축소·은폐하도록 부당한 외압을 행사하고, 대선 직전 허위 중간수사결과 발표를 지시해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 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에게 징역 4년을 구형했다.

26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1부(이범균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김 전 청장에 대한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김 전 청장이 공정선거와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을 무너뜨린 중대 범죄를 저질렀고 서울청장으로서 경찰 내 지휘·감독 권한을 남용해 경찰 조직의 수사와 수사공보 기능을 현저히 침해하면서 국민 여론을 왜곡했다”며 ‘공직선거법’과 ‘경찰공무원법’ 위반죄로 징역 2년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로 징역 2년을 각각 구형했다.

검찰은 특히 김 전 청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서는 “대법원 양형 기준상 공무원의 지위를 이용한 가중구간에 해당한다”며 “선거가 임박한 시점에서 김 전 청장이 서울청과 서울수서경찰서의 공조직을 동원해 증거분석과 수사공보 기능을 계획적이고 조직적으로 침해했으며,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간 언론보도를 하는 등 불특정 다수 상대를 대상으로 한 범행에 해당해 양형 기준상 가중구간인 1년 이상, 3년 이하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에 대해서는 “서울지방청장은 소속 경찰관의 지휘·감독 권한 있어 수사에 간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으나 형사소송법상 사법경찰관이 아니므로 수사 담당자(수서서 수사팀)에게 일방적으로 수사를 지시하고 지휘할 권한이 없다”면서 “허위 중간수사결과 보도자료 배포와 게시, 언론브리핑을 지시해 법령상 지방청장으로서 의무가 없는 일을 지시하고 디지털증거분석 결과에 대한 회신과 송부조차 거부해 수사팀의 정당한 수사권 행사를 방해했다”고 덧붙였다.

   
▲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 사진=이치열 기자
 
아울러 검찰은 김 전 청장의 혐의가 선거운동의 구성요건에 충족한다는 점을 주장하며 “국정원 여직원 사건은 대선 직전 정치적 중립이 요구되는 국가최고기관이 조직적으로 선거운동을 한 사실이 있는지, 아니면 저질 내거티브 선거운동을 한 것인지 진상 결과에 따라 특정 후보의 도덕성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어 선거 막판 최대 이슈로 주목되는 상황이었다”며 “중간수사결과 발표 내용과 결과에 따라 특정 후보자에게 유리하고 다른 후보자에게 불리했음에도 은폐·축소 결과를 발표해 표심에 영향을 미친 행위에 해당해 선거운동의 객관적 요건을 충족한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어 “중간수사결과 발표 파급효과를 보면 지난해 12월 16일 3차 대선후보 TV토론 직후 중간수사결과가 발표됨에 따라 주요 언론에서 TV토론 내용보다 국정원 여직원 관련 이슈 공방 관련 기사를 부각해 대대적으로 보도하는 등 마치 민주당의 주장이 사실이 아닌 것처럼 단정적으로 보도했고 새누리당 대선캠프에선 ‘국정원 여직원은 제2의 타블로이자 민주당은 정치권의 타진요’라고 강도 높게 비방했다”며 “남은 대선 기간 내내 선거 소재로 적극 활용돼 김 전 청장의 행위가 선거에 미친 행위임을 계량화할 수는 없으나, 일부 여론조사 기관에서도 일정 정도 표심에 영향을 미쳤다 발표하는 등 당선과 낙선 목적 행위이라면 선거에 간접적으로 관련한 행위라도 선거운동으로 판단하는 주관적 구성요건에도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김 전 청장 측 변호인은 검찰의 공직선거법 위반 주장에 대해 “경찰의 수사 공보 관행에 따라 보도자료를 일선 경찰서 홈페이지에 게시하도록 지시한 행위는 서울청장의 권한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상적이고 의례적인 업무의 일환으로, 증거분석 결과가 나오면 바로 발표한다는 기존 방침에 김기용 당시 경찰청장의 승인이 있었고 이광석 수서경찰서장의 동의도 있었다”며 “이런 상황에서 증거분석 결과를 알린 것 외에 특정 후보 지지를 호소하고 특정 후보를 비방하는 내용은 (중간수사결과 보고서에)포함돼 있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변호인은 김 전 청장의 직권남용 혐의와 관련해서도 “경찰법과 직제 시행규칙 등에 의하면 서울청장은 경찰청장의 지휘감독을 받고 수서경찰서도 서울청의 관할 구역으로서 서울청장의 지휘감독을 받는데, 이 지휘는 수사 지휘도 포함한다”고 해명했다.

김 전 처장은 공판 최후진술을 통해 “당시 여야 정치권 모두 경찰이 신속히 국정원 직원의 컴퓨터를 분석해 결과 발표를 해야한다는 입장을 피력했고, 경찰 또한 본청과 서울청 내에서도 분석결과가 나오면 바로 발표한다는 대원칙을 갖고 있었다”며 “분석 결과가 공식 발표되기 전에 분석 내용의 유출을 막기 위해 구두·메모보고 등 보안 조치를 강조한 것을 두고 증거 인멸을 위한 교묘한 행위라며 자의적으로 해석한 검찰이야말로 견강부회이자 짜맞추기 왜곡수사의 극치”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잘못된 검찰의 결론 도출에는 경찰 시스템의 이해 부족도 적지 않고 검찰은 경찰에 대한 비하적 선입견에서 비롯된 적반하장의 독선적 관점을 갖고 있다”며 “경찰 조직이 계급 조직이라고 해도 상관의 지시에 반발 없이 무조건 따르는 경찰관은 단 한명도 없고, 내가 의도를 가지고 축소·은폐 지시에 부당하게 관여했다면 경찰관들의 양심선언이 줄을 이뤘을 것인데 너무 황당한 논리로 기소한 검찰의 수사에 경악했고 큰 충격과 실망을 남겼다”고 덧붙였다.

한편 김 전 청장에 대한 재판부의 판결선고는 해를 넘겨 오는 2014년 2월 6일에 내려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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