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경찰이 철도노조 지도부에 대한 체포영장 하나 들고 경향신문 사옥을 초토화시키면서 노동계는 물론 언론계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민주노총은 즉각 총파업을 결의했고 한국노총도 정부와의 대화 단절을 통해 민주노총을 지지하고 나섰다. 철도노조 파업의 전선이 확대된 것이다.

이런 사태를 예견해서였을까? 경찰의 경향신문 사옥 강제진입이 벌어진 하루 뒤인 23일, 그동안 철도노조의 파업을 일방적으로 비판해 온 일부 언론들의 논조는 한결 부드러워졌다. 민영화 의혹을 ‘괴담’으로 치부해버리고 강제진입 역시 ‘정당한 법 집행’이라는 기준은 흔들리지 않았으나 이날만큼은 박 대통령의 소통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에 주목했다.

조선일보는 사설 제목부터 <부실 철도 개혁 성패는 국민 지지 얻는데 달렸다>로 잡으며 “지금 각종 민영화 괴담이 다시 횡행하는 것은 공기업 실태를 알리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개혁저항세력의 대국민 심리전에 밀린 결과”라고 지적했다.

중앙일보 역시 이날 <대통령, 당당하게 기자들 앞에 서야> 사설에서 “국내외로 중요한 일이 이어지는데 국민은 대통령의 생각을 직접 들을 수가 없다”며 “대통령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라고 비판했다. 중앙일보는 “이번에 법과 원칙이 밀리기라도 하면 내년부터는 사회적 갈등이 거리로 쏟아질 판”이라며 “그런데도 대통령은 국민 앞에 나서질 않고 있다. (중략) 이런 간접화법으로는 부족하다. 생중계 기자회견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 역시 이번 민주노총 강제진입에 대해 공권력의 편을 들면서도 ‘대화’를 촉구했다. 동아일보는 사설 <민주노총에 첫 공권력, 그래도 노정대화는 이어 가라> 사설에서 “민노총 사무실은 성역이 아니”라며 “불법파업에는 엄정하게 대응하되 노정 관계를 막다른 길로 몰지 않고 대화의 끈도 놓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 조선일보 12월 24일자. 1면.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23일 “당장 어렵다는 이유로 원칙 없이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간다면 우리 경제·사회의 미래를 기약할 수 없을 것”이라며 ‘강경대응’ 원칙을 재확인하자 24일 이들 언론들의 24일 보도 뉘앙스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조선일보는 24일 1면에 2장의 사진을 배치했다. 하나는 2006년 철도파업으로 시민들이 힘겹게 지하철을 이용하는 모습이고 또 하나는 2013년 서울역 플랫폼이 시민들로 북적이는 모습이다. 아울러 <역대 정권이 두손 든 철도노조…박 정부는 해낼까> 기사를 통해 “‘철도 개혁’은 역대 정부마다 핵심 국정 과제의 하나로 추진해온 것”이라며 “지난 20년 간의 이런저런 철도 개혁 시도는 철도노조의 반발에 눌려 번번이 좌절됐다”고 주장했다.

마치 철도공사 개혁이 철도노조의 ‘밥그릇 지키기’로 실패해왔다는 뉘앙스다. 아울러 조선일보는 박 대통령의 말을 전하며 “철도노조의 기득권을 깨지 못하면 향후 본격적으로 전개될 공기업 개혁도 물거품이 된다는 우려도 깔려있다”고 보도했다. 또한 이날 조선일보는 2면 <연 5000억 적자 코레일, 대학생 7만명 등록금 날리는 셈>, <기관사들 3시간만 열차 몰면 교대…사고 내도 자동 승진>, 3면 <철도노조, 정권이 철도 개혁 나설 때마다 ‘묻지마 파업’> 등의 기사를 통해 철도파업의 모든 책임을 철도노조로 돌렸다.

중앙일보도 1면 <불신의 늪 빠진 철도> 기사에서 “박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대처리즘을 연상케 한다”며 “마가렛 대처 전 영국총리는 정권까지 굴복시킬 정도로 막강했던 탄광노조의 불법파업에 타협 대신 법의 잣대를 들이대 해결했다”고 보도했다. 22일 사태에 대해 정부를 옹호한 것이다.

중앙일보는 이날 사설 <더 이상의 코레일 파업은 비극만 낳을 뿐이다>에서 “철도노조는 민영화 괴담에 편승해 철밥통을 지키겠다는 기대는 접는게 좋다”며 “철도노조는 투쟁지상주의의 금단현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근거 없는 괴담은 설 자리를 잃고 부메랑을 맞게 된다”고 주장했다.

전날에 주춤했던 일부 언론의 철도노조 공세가 강화된 것은 역시 박 대통령의 ‘강경대응’ 발언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청와대가 새해 특사, 연초 기자회견 등의 방침을 밝히면서 ‘소통’의 모양새를 취했다는 것도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했던 대로 전날 이들 언론들은 모두 박 대통령의 적극적인 소통을 주문했다.

   
▲ 중앙일보 12월 24일자. 3면.
 
여기에 22일 경향신문 사옥 내 민주노총 강제 진입에 대해 야권과 노동·언론계가 비판의 목소리를 내며 결집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철도노조에 대한 비난의 수위를 높인 것으로 보인다. ‘철도노조’라는 ‘공적’을 만들면서 보수진영의 결집도 유도한 것이다.

하지만 ‘민영화를 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공언을 위해 법제화라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상황에서 강경대응만을 내 건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한다고 진짜 소통이 이루어질지는 미지수다. 그런 상황에서 단지 기자회견을 한다는 이유로 ‘박 대통령이 소통에 나섰으니 파업을 접으라’는 주장에는 어폐가 있다.

중앙일보는 3면 <통합·소통 나선 박 대통령…새해 특사·기자회견> 기사에서 “박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하기로 한 것은 2년차 국정운영 구상을 알리는 동시에 ‘불통 논란’을 잠재우기 위한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희완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총장은 “박근혜 정권이 강경대응 원칙을 표방했기 때문에 조중동도 마찬가지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일 것”이라며 “23일에는 톤을 낮춰 대화를 촉구했다가 정부가 예상외의 강경발언을 내놓으면서 자신들이 더 이상 충고조로 나갔다가 팽 당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 아닌가”라고 분석했다.

이 총장은 “여론에 밀리고 시민사회가 촛불집회를 열겠다고 한데다 한국노총까지 나선 상황에서 더 크게 번질까봐 단속하는 차원에서 강경논조의 기사를 내는 것 같다”며 “대통령의 기자회견 역시 철도파업의 본질적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대화 창구를 열어놓은 것이라면 소통을 위해 말문을 열었다는 표현도 상관없겠지만 강경대응으로 사태를 악화시키는 발언을 한 상태에서 기자회견을 열겠다는 것은 대화에 나섰다고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