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총체적인 부정선거 1주년을 맞아 19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벙커1’에선 ‘표창원과 김어준의 대선 1주년, Festival for the survivors’라는 주제로 ‘유쾌한 RO(혁명 조직)’ 모임이 열렸다. 

이날 벙커1은 좁은 공간임에도 500여 명의 시민들로 가득 찼다. 행사 주최 측은 300여 개의 좌석을 마련했지만 벙커1을 찾은 시민들은 3시간 반 가까이 긴 시간 진행된 행사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와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의 대담에 귀를 기울였다.

김어준 총수는 정치적인 질문이나 첨예한 현안에 관한 이야기 대신 표 전 교수에 대한 청문회 형식으로 토크쇼를 이어나가면서도 중간 중간 특유의 독설을 빼놓지 않았다. 김 총수는 표 전 교수에 대해 “이 남자는 4년이 지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도 있지만 시스템도 체제도, 월급도 그를 길들이는 데 실패한 늑대 같은 남자, 선물과 같은 존재”라며 “국정원에서 온 분이 있다면 김어준이 표창원을 동물로 지목했다고 정리해 달라”고 말해 청중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표 전 교수 역시 “현재 부인이 첫사랑이냐”는 김 총수의 짓궂은 질문에 “내가 검찰총장인가. 왜 그러나. 당연히 첫사랑이 아닌데 중계하면 안 된다”고 재치 있게 답했다.

두 사람의 향후 활동 계획에 관해서도 넌지시 내비쳤다. 표 전 교수는 “아직 비밀이지만 추리소설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고, 김 총수는 내년에는 김용민 국민TV PD와 함께 방송을 시작할 수 있음을 시사하며 “국민TV 방송을 하고 안 하고는 부차적인 것이고 내년에 무엇을 할 것인지 나름 계획이 있다”고 말했다.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총체적인 부정선거 1주년을 맞아 19일 저녁 서울 종로구 동숭동 ‘벙커1’에선 ‘표창원과 김어준의 대선 1주년, Festival for the survivors’이 열렸다. 사진=강성원 기자
 
표 전 교수는 1부 강연을 시작하며 “지금 이 시간 서울광장에서는 시민들이 추운 날씨에도 우리와 같은 마음으로 촛불 들고 있다”며 “정말 이제는 현 정권에 주는 마지막 온정이이고 연말까지 스스로가 죄를 자백하고 선처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어 “보수적 성향이 강한 대한예수교장로회를 포함해 모든 종교단체에서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다고 외치고 있다”면서 “이는 단지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와 진리, 신의 뜻과 관련된 단계까지 와 있음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표 전 교수는 정부·여당이 국가기관의 총체적인 부정선거가 드러났음에도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범죄 심리의 4단계 중화작용으로 설명했다. 그가 말한 첫 번째 단계는 ‘가해부정’으로 자신이 범죄를 저지르고 나쁜 일인지 알지만 그렇게까지 나쁜 일이 아니라고 합리화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피해부정’으로 “새누리당 의원 155명은 국가 공무원이 트위터에 수십만 건의 트윗을 남긴 것에 대해서도 대선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믿고 있다”고 표 전 교수는 지적했다.

세 번째 단계는 ‘상위 가치에 호소’이다. 선거개입 행위보다 더 상위에 있는 ‘애국’이라는 가치 위해 행한 것이므로 괜찮다는 것. 표 전 교수는 “상대가 종북이고 그들이 집권해 권력을 잡는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어서 우리나라를 위해 애국한다고 합리화하는 단계별 범죄심리가 작용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마지막 단계는 ‘비난자에 대한 비난’으로 마음속으로 찔리면서도 지난 정부도 그랬다고, 노무현 정부 때도 공문으로 댓글을 달라고 했다고 주장하는데 그때는 사실과 다를 내용에 대해 국민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대응하라는 것”이었다며 “숨어서 상대 후보를 비방하며 정권의 하수인 노릇한 것과 어떻게 똑같느냐”고 반문했다.

표 전 교수는 최근 대학생들의 ‘안녕들 하십니까’ 열풍에 대해서도 “젊은 대학생들이 본인의 잘못이 아니라 부모세대 잘못으로 사교육 입시 경쟁에 내몰리고 대학에 들어가서도 스펙과 취업 등 전쟁 같은 삶을 살면서 늘 마음속에 미안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라며 “뭔가 잘못됐다는 것에 대한 상식과 정의감이 꿈틀거리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드러내 줘서 너무 고맙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대자보를 붙인 주현우 학생 글의 팩트를 논하는 사람들은 비난자에 대한 비난 심리로 자신들 부끄러움 감추려는 반발”이라며 “글을 쓰게 된 학생들의 마음과 정신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들여다 봐야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이날 행사에선 표 전 교수가 강산에의 ‘넌 할 수 있어’를 열창해 참여자들의 호응을 끌었다. 두 사람의 토크 시작과 중간에는 홍대 밴드 ‘블루오션’과 ‘블랙스완’의 공연도 진행됐다. 블랙스완의 공연 중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육성으로 부른 ‘상록수’ 노래가 나오자 일부 시민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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