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체제의 장성택 숙청과정은 충격적이다. 독재체제의 폭력성이 고스란히 노출됐기 때문이다. 견제 없는 권력은 언제든 독재로 흐르기 마련이다. 때문에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야당과 언론의 기능이 제대로 흘러야 한다. 특히 언론이 견제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북한 조선로동당의 기관지 ‘로동신문’과 다를 바 없다.

지난 몇 일 조선일보는 장성택 숙청 과정을 놓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조선일보는 14일 사설 <기관총으로 사살됐다는 장성택, 저 북을 어찌해야 하나>에서 “사람이나 조직은 허약할수록 잔인해진다고 한다”며 “(중략) 그러나 당장 이들이 인간을 벌레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는 것을 세계의 누구도 막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조선일보는 그 누구보다 북한 독재체제의 야만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조선일보는 그동안 국가권력기관의 대선개입의혹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왔다. 특히 이 문제를 거론하며 박 대통령의 책임을 강조한 사람들에 대해 ‘대선불복’, 여기에 더 나아가 ‘종북’이라며 교묘하게 여론의 방향을 흩어놓았다.

특히 조선일보의 친노에 대한 보도는 이 두 가지를 혼용하곤 한다. 이는 지난 15일 노무현재단 송년행사에 대한 조선일보의 보도에서 드러나는데 조선일보는 이날 기사를 통해 ‘대선불복’을 부각시키고, 사설을 통해 ‘종북’의 뉘앙스를 풍겼다. 문재인 의원이 “북한은 비정상국가”라고 비판했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 조선일보 12월 16일자. 8면.
 
해당 기사 내용은 송년회 당시 참석 인사들의 발언과 이에 대한 민주당 내, 새누리당 내 목소리를 전달하는 수준이었지만 기사 제목이 <친노, 연일 세 결집 행사…박 대통령을 맹비난>이라고 올렸다. 또한 소제목으로 <대선 1년도 안됐는데…문 북 콘서트·노 재단 송년행사>를 뽑았다. 대선 1년도 안되면 친노진영이 결집하면 안 되는 것일까?

이는 친노진영이 결집해 박 대통령을 향해 대선불복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물론 이날 행사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나왔지만 ‘대선불복’을 언급한 대목은 없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기사 내부에서도 “행사에서 지지자들은 문 의원이 소개되고 발언할 때마다 커다란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며 “대선출정식이 연상될 정도”라고 표현했다.

조선일보의 이 같은 보도는 문재인 의원과 친노 진영을 ‘대선불복’의 중심세력으로 끌고 가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사회 일각에서 터져 나오는 대선불복의 목소리를 ‘친노’ 프레임에 가두고 여기에 ‘정권을 흔드는 세력’이라는 이미지를 덧칠한다.

   
▲ 조선일보 12월 16일자. 39면.
 
물론 종북도 빠지지 않는다. 조선일보는 사설 <북의 정상화와 문명화에 국력 모아야 한다>에서 “문 의원을 지지하는 사람 중에선 북의 참상을 일부러 외면하고 북에 대한 고발을 오히려 정치적으로 비난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인권법이 국회에 막혀 있는 것은 문 의원과 같은 사람들이 막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한때 권력의 중심이었던 친노 세력을 비판할 수는 있다. 이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허용되는 것과 마찬가지의 원리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정권에 대한 비판과 견제의 발언을 대선불복 흐름과 연결시키면서 친노를 비판하고 있다. 심지어 이날 사설에서 드러나듯 북한인권법에 대한 실효성 여부에 의문이 드는 상황에서도 이를 ‘친노 때문’이라고 덧씌운다.

친노에 대한 태도가 유독 심하긴 하지만 사실 박 대통령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다른 사람 혹은 단체에 대해서도 조선일보는 유독 가혹했다. 이는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태도와 비슷하다. 조선일보는 박창신 신부의 대선불복 발언이 있던 다음날인 지난달 31일 사설을 통해 “(정의구현사제단은) 북한 3대 세습 왕조의 폭정에 시달리며 최소한의 기본 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2300만 북한 주민들의 고난에 대해선 입을 닫고 있다”고 비판했다. ‘종북’을 씌운 것이다.

북한은 장성택 처형과 관련해 “장성택이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의 명령에 불복하는 행위를 서슴없이 강행했다”고 했다. 북한이 독재국가이기 때문에 적용할 수 있는 죄목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조선인민군 사령관이건, 대통령이건, 최고존엄이건 비판할 자유가 있다. 이것이 장성택 숙청 과정에서 드러난 민주주의의 소중함이자 교훈 중 하나일 것이다.

민주주의에 동의한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국론 분열’을 언급하며 반대 여론을 차단하고 검찰은 박창신 신부에 대한 수사에 착수한 것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 정당할 것이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불복’이라며, ‘종북’이라며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오히려 차단해왔다. 조선일보가 장성택 사태를 보며 어떤 민주주의를 느꼈는지 궁금한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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