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대학생이 사회에 던진 질문, ‘안녕들하십니까’가 화제입니다. 고려대 학생 주현우씨는 고려대에 붙인 대자보를 통해 4000명이 넘는 철도노동자들이 직위 해제되고, 국회의원이 ‘사퇴하라’ 한 마디 했다고 제명 위기에 처한 작금의 현실을 비판하며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주씨의 대자보 이후 수십 개의 대자보가 고려대학교에 붙었고, 전국의 대학교에 대자보 릴레이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진보언론은 물론 보수언론들까지 이 ‘안녕들하십니까’ 열풍에 주목하는 중입니다. 조선일보의 인터넷페이지인 조선닷컴에는 12일부터 14일까지 총 14개의 관련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하지만, 예상대로 그 중 ‘안녕들하십니까’를 소개하는 세 개의 기사를 제외한 나머지 9개의 기사는 이를 비판하는 기사입니다.

<안녕들하십니까 시위대, 실체 없는 ‘철도민영화’ 반대하며 거리로…대학은 ‘감성의 전당’?>
<안녕들하십니까 시위대, 추진되지도 않는 ‘철도민영화’ 반대한다며…>
<‛안녕들하십니까’, 논리도 팩트도 부실한데…“집회 먼저?”>
<안녕들하십니까 시위대, 실체 없는 '철도민영화'에 반대한다며 서울역으로...>
<‘안녕들하십니까’ 고려대 대자보, 진보신당 당원의 일방적 선동문이 뜬 까닭은?>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전제 자체가 틀렸는데 선동만…이런 글에 몰리는 대학생들>
<안녕들 하십니까, 고대에 붙은 대자보 화제 “일방적 주장, 논리적 비약”…일반 대중이 보는 시각은?>
<안녕들 하십니까, 고대에 붙은 대자보 화제…“일방적 주장, 논리적 비약”>
<고대 대자보? “비약만 있고 팩트는 부실!”>

어떤 분들은 이 많은 기사를 보고 조선일보가 ‘안녕들하십니까’ 현상을 정말 열심히 취재했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기사의 내용을 읽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게 금방 드러납니다. 위의 기사 내용들은 복사+붙여넣기를 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천편일률적입니다. 13일에 올라온 관련 기사들의 핵심은 주씨의 대자보 내용이 팩트도 부실하고 논리도 없는데 대학생들이 선동당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4일이 되자 이 내용에 이들이 촛불집회까지 몰려갔다는 내용을 덧붙여 기사를 만들었습니다. 똑같은 이야기를 가지고 기사를 9개나 만들어낸 겁니다.

   
▲ 지난 12일부터 14일까지 조선닷컴에 올라온 ‘안녕들하십니까’ 관련 기사들
 
조선일보의 이 기사들이 안타까운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조선일보는 “정부가 철도를 민영화하겠다고 밝힌 적은 없다”며 “정부는 “철도민영화 가능성은 0.1%도 없다”고 못 박으면서 파업자 전원을 직위해제했다. 민영화 반대는 구실일 뿐이고 파업의 속내는 다른 데 있다는 판단이다“라고 말합니다. 노조가 제기하는 우려는 그렇게 의심하면서, 사측과 정부의 ‘민영화 아니다’라는 말은 철썩 같이 믿어버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노조의 주장은 의심해야 하는 선동이고 사측과 정부의 말은 그냥 믿어도 되는 모양입니다. 조선일보는 ‘안녕들하십니까’ 대학생들이 선동 당했다고 말하는데, 그렇게 따지면 조선일보야말로 사측과 정부에 ‘선동’ 당한 것 아닌가요. 조선일보는 대학생들이 ‘수서발KTX=민영화’라는 잘못된 전제를 가지고 있다고 비판하는데, 조선일보야말로 ‘정부의 주장=맞다’는 잘못된 전제를 가지고 있는 건 아닌가요? 기자의 가장 기본적인 자질은 ‘권력을 가진 자에 대한 의심’입니다.

둘째, 이 조선일보 기사들에는 ‘이름’이 없습니다. 기자의 이름도, 이메일도 없습니다. ‘안녕들하십니까’에 동참한 대학생들의 대자보에는 학생들의 이름이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대자보를 쓴 학생들에게, 조선일보는 자기 이름을 감춘 기사로 응답하며 ‘선동’이니 ‘팩트는 없다’느니 하는 딱지를 붙였습니다. 조선일보 기사 밑에 “이 글은 바이라인도 없네요. 글 쓴 기자 스스로도 아는 거죠, 본인이 얼마나 부끄러운 글을 쓰고 있는지를”(김성민) “바이라인도 없는 이 기사가 저 대자보와 비교해 어느 정도의 신뢰성을 지니는지, 선동성은 없는 기사인지 궁금합니다”(오지연) 등의 댓글이 달린 이유입니다.

셋째, 이 기사들이 검색어 장사를 위한 기사인 것 같아서 더욱 씁쓸합니다. 조선닷컴 등의 인터넷 언론들은 당일의 포탈 인기검색어에 맞춰 기사를 만들어내고, 더 눈길을 끌기 위해 자극적인 제목을 붙이곤 합니다. 영화 ‘변호인’ 개봉을 앞두고 변호인이 인기검색어에 오르자 조선닷컴에는 <설국열차, 관상 이어 변호인까지...송강호 연이어 영화출연 “급전 필요한가?”>라는 기사가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13일과 14일, ‘안녕들하십니까’가 포탈 인기검색어 1위였습니다. 검색어 장사로 조회수를 올릴 수밖에 없는 언론의 현실이 나타나 다시 한 번 씁쓸합니다. 조선일보 기사에는 “계~속 똑같은 기사를 ‘안녕들하십니까’ 검색어 뉴스 첫 페이지에서 조선일보 기사가 뒷 페이지로 밀릴 때마다 올리고있음(이승현)” “아까부터 같은 내용으로 계속 올라오네(정나은)”라는 댓글도 달렸습니다. 독자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조선일보의 이 기사들은 권력을 가진 자의 말은 철썩 같이 믿으면서 그렇지 않은 이들의 항변은 ‘선동’이라고 낙인찍는 보수언론의 행태, 기자이름도 밝히지 않은 채 쏟아내는 기사의 문제점, 인기검색어에 의존해야 하는 언론의 씁쓸한 현실을 모두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묻고 싶습니다. 조선일보 기자들, 모두 안녕들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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