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민의 요구를 무시하고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에 ‘종북몰이’, ‘직위해제’로 대응하는 현 시국에 저항하는 대학생들의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 ‘안녕하지 못한’ 한 대학생의 대자보와 1인 시위가 ‘안녕들 하십니까’ 열풍으로 번져 나가며 온라인에서는 이미 9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이 응답에 동참하고 있다.

14일 오후 서울 안암동 고려대학교 정경대 후문 앞에서는 눈발이 휘날리는 영하의 날씨에도 대학생을 비롯한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군중을 이뤘다. 이날 이곳에서는 온라인 페이스북 페이지 ‘안녕들하십니까’에서 준비한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의 성토대회가 열렸다.

300여 명을 육박하는 학생들과 시민들은 모자를 눌러쓰고 장갑을 끼고서도 안녕하지 못한 사연이 담긴 피켓을 저마다 손에 들고 또래 학우들의 성토에 박수갈채와 함성을 보냈다.

   
14일 오후 3시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후문 대자보 앞에 모인 3백여 명의 대학생, 시민들이 대자보 안녕들하십니까에 대한 대답으로 '안녕하지못한' 이유에 대해서 릴레이 발언을 하고 있다.
@이치열 기자
 
‘잊혀진 희망으로 인해 안녕하지 못합니다. Exister, c’est resister’, ‘말하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라서 안녕하지 못합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무한경쟁 시스템 때문에 안녕치 못합니다’, ‘헌법이 보장하는 절대가치가 무너지고 있어서 나는 안녕하지 못합니다’, ‘언론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사회, 안녕하지 못한다’, ‘내일이 전혀 기대되지 않는 5년을 생각하니, 걱정이 돼 안녕 못합니다’ 등 안녕하지 못한 이유들은 다양했지만 모인 사람들은 모두 서로의 ‘안녕’을 갈망했다.

“여러분 안녕들 하십니까?”
“아니요! 안녕하지 못합니다.”

성토대회 발언자들이 ‘안녕’을 물을 때마다 군중들은 ‘안녕 못하다’고 응답했다. 이번 대자보 열기의 첫 신호탄이었던 주현우 고려대 학생(경영학과 08학번)은 “지금 저 대자보를 보고 별의별 얘기가 다 나오고 있고 내가 사람들을 선동하려고 썼다고 하는데 웃기는 소리”라며 “나는 아직도 지금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 않고, 여기 모인 사람들은 대자보 내용에 공감해 모인 것이지 나라는 사람 때문에 모인 게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은 사전에 계획도 없었던 급조된 사람들로 우리가 해야 할 진짜 정치를 하기 위해 대자보를 쓰기 시작했고, 여러분이 이 자리를 만들었다”며 “나라는 존재는 여러분과 같은 밀알에 불과하고 우리는 우리로서 우리 정치를 우리 손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의 모임에 참석한 경희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 김재섭(23) 학생은 “대자보를 처음 쓴 사람이 얼마나 답답했으면 이런 글을 썼을지,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공개적으로 얘기는 못했지만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라며 “학생들은 학점과 취업, 스펙 경쟁에 힘들어 하지만 우리사회는 힘들다는 얘기를 못하게 하고 스스로 참고 이겨내야 한다고만 하다 보니 저마다 쌓였던 피로감이 폭발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성공회대 대자보를 썼던 강은하(23) 사회과학부 학생은 “나는 트랜스젠더이자 양성애자, 여성, 20대, 88세대, 노동자계급을 물려받은 세대지만 우리의 필요와 욕구에 대해 말하지 못하는 현실이 틀렸다고 말하고 싶었고 그래서 대자보를 썼다”며 “성소수자도 여러분과 같은 시민이고 철도민영화와 비정규직으로 사람들의 삶이 팍팍해지면 저 역시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학생 신분이자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는 조규현씨(연세대 06학번)는 “대자보를 읽으며 주변의 가까운 문제에도 소홀했다는 것에 부끄러웠고, 그것을 리트윗하고 지성인인 양 내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한 것도 부끄러워 안녕하지 못했다”며 “나도 사회적 기업가로서 내 정체성 안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이고 여러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살리면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의 모임은 이날 고대에서 진행된 성토대회가 끝난 후 서울광장으로 이동해 밀양 송전탑 공사 반대 농성을 하다가 음독자살로 숨을 거둔 밀양주민 고 유한숙씨(74세)의 추모문화제에 참가했다. 이후 이들은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관권부정선거 규탄과 철도민영화 저지 제24차 범국민 촛불대회’에 합류하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한편 이날 오후 12시 30분경에는 한남대학교 기계공학과 김근현(22) 학생이 올린 대자보가 한 시간 만에 철거되는 일이 발생했다. 누구의 소행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전국에서 ‘안녕들 하십니까’ 응답 대자보가 철거된 곳은 한남대학교가 처음이다.  

   
'안녕하지못한사람들'의 대열에 참여한 다양한 학생들이 들고 나온 피켓에서 안녕하지 못한 다양한 이유를 읽을 수 있었다.
이치열 기자 truth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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