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가 그야말로 대학가를 뒤덮고 있다. 지난 10일 고려대학교 한 학생이 철도노조 파업 참가자 직위해제와 국가기관 선거개입 등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올려 반향을 일으킨 후 전국의 대학으로 대자보 열풍이 퍼져 나갔고, ‘안녕들 하십니까’ 페이스북 페이지 ‘좋아요’ 숫자는 6만 명을 넘어섰다.

처음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의 자필 대자보를 학교 게시판에 붙이고 고려대학교 주현우 학생(경영학과 08학번)은 지난 13일 저녁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 “철도노조 파업 참가자 4200여 명 직위해제 등 현재 일어나고 있는 많은 일이 그냥 조용히 넘어갈 수만은 없는 이야기들이고, 이런 이야기들에 대해 뭔가 답답한 심정을 털어놓자는 심정으로 썼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단 하나도 안녕하기 어려운 사태가 연이어서 일어나고 있는데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서 얼마만큼 스스로 생각하고 있을까, 정말 우리는 안녕한지 한 번 고민해 봐야 하지 않겠느냐”며 “전혀 지금 안녕하지 못한 상황에 대해서 혹시라도 일종의 가면 식으로 안녕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지 우리에게 되물어야 한다는 느낌으로 대자보를 적었다”고 설명했다.

   
고려대 정경대 후문에는 '안녕하지 못한 사람들'의 대자보 응답 행렬이 이어졌다. 사진=이치열 기자
 
주씨는 대자보 내용과 관련해선 “국정원 (선거)개입뿐만 아니라 밀양의 송전탑 얘기도 들어 있고,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가 벌금과 징역 선고를 받은 일과 사실 안정된 일자리가 필요한데도 비정규직이 양산되는 문제에 대해서도 얘기를 했다”면서 “이런 사회적 문제들이 내가 사는 사회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그냥 소설책과 영화를 보듯 내가 사는 곳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이에 대해 ‘안녕하신가’라고 물어본 것”이라고 말했다.

주씨는 또 대자보가 대학가의 화제가 된 후 열풍처럼 번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마치 물이 끓을 때 99도에서 100도가 되면 기체가 되지만, 사실 그건 1도밖에 안 올라간 것처럼 지금 사람들이 너무 답답하고 이게 울화가 치미는데, 이런 이야기들을 할 만한 공간을 잘 못 찾았다가 어느 한 곳이 그냥 뻥 터지듯이 나왔다고 생각한다”며 “적극적으로 스스로 나의 문제로서 얘기할 수 있고, 같이 고민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감대를 계속 만들어내며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까지도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주씨가 쓴 대자보의 전문이다.

   
▲ 10일 고대 정경대 후문 게시판에 붙은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사진='안녕들 하십니까' 페이스북 페이지
 
<안녕들 하십니까?>

1. 어제 불과 하루만의 파업으로 수천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다른 요구도 아닌 철도 민영화에 반대한 이유만으로 4,213명이 직위해제된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본인이 사회적 합의 없이는 추진하지 않겠다던 그 민영화에 반대했다는 구실로 징계라니. 과거 전태일 청년이 스스로 몸에 불을 놓아 치켜들었던 '노동법'에도 "파업권"이 없어질지 모르겠습니다.

정부와 자본에 저항한 파업은 모두 불법이라 규정되니까요. 수차례 불거진 부정선거의혹, 국가기관의 선거개입이란 초유의 사태에도, 대통령의 탄핵소추권을 가진 국회의 국회의원이 '사퇴하라'고 말 한 마디 한 죄로 제명이 운운되는 지금이 과연 21세기가 맞는지 의문입니다.

시골 마을에는 고압 송전탑이 들어서 주민이 음독자살을 하고, 자본과 경영진의 '먹튀'에 저항한 죄로 해고노동자에게 수십억의 벌금과 징역이 떨어지고, 안정된 일자리를 달라하니 불확실하기 짝이 없는 비정규직을 내놓은 하수상한 시절에 어찌 모두들 안녕하신지 모르겠습니다!

2. 88만원 세대라 일컬어지는 우리들을 두고 세상은 가난도 모르고 자란 풍족한 세대, 정치도 경제도 세상물정도 모르는 세대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1997~98년도 IMF 이후 영문도 모른 채 맞벌이로 빈 집을 지키고, 매 수능을 전후하여 자살하는 적잖은 학생들에 대해 침묵하길, 무관심하길 강요받은 것이 우리 세대 아니었나요? 우리는 정치와 경제에 무관심한 것도,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단 한 번이라도 그것들에 대해 스스로 고민하고 목소리내길 종용받지도 허락받지도 않았기에, 그렇게 살아도 별 탈 없으리라 믿어온 것뿐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수조차 없게 됐습니다. 앞서 말한 그 세상이 내가 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다만 묻고 싶습니다. 안녕하시냐고요. 별 탈 없이 살고 계시냐고요. 남의 일이라 외면해도 문제없으신가, 혹시 '정치적 무관심'이란 자기합리화 뒤로 물러나 계신 건 아닌지 여쭐 뿐입니다. 만일 안녕하지 못하다면 소리쳐 외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것이 무슨 내용이든지 말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묻고 싶습니다. 모두 안녕들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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