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관의 총체적 불법·부정선거 신호탄을 알렸던 일명 ‘국정원 댓글녀’ 사건이 터진 지 1년이 지났다. ‘가녀린 여직원’의 ‘인권유린’을 운운하던 박근혜 대통령은 사과는커녕 “국정원에 도움받은 것이 없다”고 함구하고 있고, 새누리당은 특검을 통한 진상규명 대신 진실을 요구하는 종교인 등을 ‘종북몰이’하며 물타기 하고 있다. ‘대선 스캔들’로까지 번진 이 사건에 왜 아직까지 아무도 책임지고 있지 않은지, 일개 국가정보원 직원이 아닌 부정선거의 ‘상징’으로서의 댓글녀의 거짓말과 드러난 진실,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을 통해 돌아봤다.

지난해 12월 11일 국정원 여직원 김하영씨(29)는 공직선거법 위반 의혹이 제기된 후 13일까지 약 43시간을 강남구 역삼동 오피스텔에 ‘셀프 감금’해 있으면서 경찰·선관위 단속반에게 “나는 국정원 직원이 아니다”는 거짓말로 수사 협조에 불응했다. 이날 저녁 원세훈 전 국정원장도 민주당 의원들과 통화에서 ‘국정원 직원이 아니다’고 속였다.

이후 김씨가 국정원 직원이고 이곳에서 사이버 여론 공작 활동을 펼치고 있었음이 드러났지만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17일 충남 천안 유세 현장에서 “그 불쌍한 여직원, 결국 무죄인데도 민주당은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있다. 인권유린에는 말이 없다”고 비판했다. 새누리당 역시 16일 논평을 통해 “국정원 여직원 김씨는 국가공무원이기 전에 대한민국의 한 국민이요, 20대의 가녀린 여성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국민에게 공언했던 이 같은 발언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대선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국가정보원 여직원 김모씨가 지난 1월 서울 수서경찰서에서 3차 조사를 받은 뒤 변호인과 함께 경찰서를 빠져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제가 감금돼 있을 당시 밖에서 워낙 공포스러운 상황이 계속되고 있었어요. 문을 뜯고 들어와 내 컴퓨터를 탈취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업무용 노트북이기 때문에 직무 관련 기밀사항이 포함돼 있어 최소한의 보안 조치로 파일을 삭제했습니다.”

지난 9월 23일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재판 중인 원 전 원장 5차 공판에 증인으로 나온 김씨는 울먹이며 오피스텔 발각 당시 문을 잠그고 숨어있었던 이유를 항변했다.

하지만 경찰과 검찰 조사 결과 김씨가 복구 불가능하도록 디스크 조각모음까지 하며 삭제했던 메모장 파일 187개 중 복원된 1개 파일에는 김씨가 사이버 공작 활동을 벌였던 ‘오늘의유머’ 등 인터넷 사이트에서 사용한 아이디와 닉네임, 비밀번호 등이 기재돼 있었으며, 국정원 외부조력자로 알려진 이정복(42)씨의 주민등록번호도 적혀 있었다.

지난해 12월 13일 김씨가 국정원 상부의 지시에 따라 데스크톱 컴퓨터와 노트북을 임의제출한 불과 3일 후 ‘혐의 없음’이라는 경찰의 중간수사결과 전후로 국정원 간부들이 김씨에게 보낸 문자도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최영탁 전 심리전단 3팀장 15일 “고생했어요. 시간이 지나면 추억으로만 남을 것이고 위기에 잘 대처했다는 영광도 남을 것입니다”고 전했고, 민병주 심리전단 단장은 17일 “경찰 공식 발표도 났고 이제 가닥을 잡아가고 있으니까, 마음 편히 갖기를 바랍니다.”고 말했다. 민 단장은 20일 대선 다음날에도 “김하영씨 덕분에 선거 결과를 편히 지켜볼 수 있어서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는 문자를 보냈다.

이 외에도 김씨의 거짓말은 검찰 수사와 공판 과정에서 속속들이 드러났다. 검찰은 지난 1월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 관련 경찰 조사 과정에서 김씨가 이규열(42) 국정원 심리전단 3팀 5파트장과 이 파트장의 대학 동기(연세대 정치외교학과 90학번)인 외부조력자 이정복 등과 만나 허위 진술을 짜 맞춘 사실을 밝혀냈다.

김씨는 경찰 진술에서 이씨를 지인의 소개로 두 번 정도 만났으며 이씨에게 인적사항을 직접 받은 후 오유 사이트 아이디도 직접 만들어줬다고 진술하며 둘을 소개해준 지인에 대해서는 누군지 밝히지 않았다. 앞서 국회 국정조사에 김씨는 “이정복은 나와 무관한 사람이다”고 까지 말했다.

하지만 원 전 원장에 공판 과정에서 검찰은 “김씨는 검찰 조사에서 지난 1월경 경찰 조사가 3차례 진행되는 무렵 외부조력자 이정복을 처음 만났고, 이규열 파트장의 존재를 숨기려고 경찰에서 허위로 답변했다”고 밝혔다. 이에 김씨도 “경찰 조사에서 허위로 진술한 것은 맞다”고 시인했다.

   
국정원 직원 김하영(왼쪽)씨와 민병주 전 국정원 심리전단장이 지난 8월 19일 오후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 출석한 모습
ⓒ연합뉴스
 
아울러 이들이 허위진술을 모의한 자리에는 김씨의 전 ‘연인’으로 알려진 신동재 당시 서울수서경찰서 개포파출소 경위가 참석했다는 사실도 새로운 의혹으로 떠올랐다. 신 경위는 외부조력자 이씨의 사촌동생으로 이씨의 소개로 김씨를 만났으며 당시 수서서가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을 수사하며 이씨를 추적하는 와중에 신 경위는 이씨와 수사에 연루된 국정원 직원들을 만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15일 경찰청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신 경위는 “사촌형(이정복)이 여직원(김하영)을 만나러 가는데 같이 가자고 해서 갔는데 내용을 잘 모른다”며 “당시 사촌형이 참고인이라는 것도 잘 몰랐고, 여직원의 안부를 묻는 자리로 알고 잠시 있다가 금방 나왔다”고 말했다.

이에 진선미 민주당 의원은 “신 경위는 당시의 모의가 범죄 혐의 은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했을 수 있고, 경찰이라면 당연히 그 자리에 함께 참석한 것 자체가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다”면서 “남의 죄를 덮기 위한 모의에 참여한 것은 증거인멸, 직무유기 등의 범죄행위에 해당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아직 드러나고 있지 않은 의혹은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에 대거 연루된 연세대 정외과 90학번들이 어떻게 조직적으로 움직여 왔느냐는 것이다. 이미 경찰과 검찰 조사 결과 이규열 파트장과 이정복 외부조력자, 김하영 직원에게 대포폰을 제공한 김아무개씨가 모두 같은 과 동기생임이 확인됐지만, 이정복이 일찍이 지난 2004년 17대 총선에서 선거운동을 도왔던 또 다른 동기생 김희정 새누리당 의원의 관련성 여부는 밝혀지지 않았다.

김 의원은 예전 한나라당 시절부터 사이버팀 기획부장과 디지털정당위원회 위원장을 지냈으며, 지난 2009년에는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초대 원장을 역임했다. 지난 10월 25일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KISA가 설립된 2009년 7월부터 최근까지 국정원이 매년 직원 1명을 KISA에 파견해 온 것으로 나타나 ‘민간 사찰’ 논란이 일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