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지난 6일부터 12일까지 5차례에 걸쳐 몇 가지 법안을 제시하며 이것이 연내 통과돼야 한다며 주문하고 나섰다. 대체로 시장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축소시키는 법안들인데, 문제는 해당 법안들의 ‘효능’만 적혀있고 ‘부작용’이 없다는 점이다.

조선일보가 제시한 해당 법안들의 상당수는 ‘재벌·부자 배불리기’라는 지적이 많다. 또한 서민경제에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법안들이다. 그럼에도 조선일보는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 주요 법안들이 국회에 발목을 잡히면서 서민 경제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6일자 3면 <서울서 내몰린 전세난민 31만명인데 여야는 정쟁만>)이라며 ‘서민경제’란 표현을 쓰고 있다.

조선일보가 제시한 관련 법안은 부동산 관련 3개 법안(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취득세 영구인하, 분양가 상한제 탄력운용), 투자 활성화 관련 2개 법안(외국인투자촉진법, 산업입지개발법), 기업 간 내부운용에 대한 2개 법안(일감몰아주기 규제법, 가업승계공제법), 서비스산업 관련 법안(관광진흥법), 그리고 배임죄 개정이다.

   
▲ 조선일보 12월 12일자. 6면.
 
당장 부동산 법안만 살펴보면 조선일보는 6일 3면 <서울서 내몰린 전세난민 31만명인데…여야는 정쟁만> 제하 기사에서 “전문가들은 이들 법안이 여야 간 정쟁으로 올해 말까지 통과 되지 못할 경우 세금 감면혜택 종료, 계절적 비수기와 겹쳐 주택시장이 더 깊은 침체의 ‘늪’에 빠져들 수 있다고 경고한다”며 “장기화되는 전세난과 거래 침체라는 ‘이중고’를 겪는 주택시장은 서민들의 주거안정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위의 관련 3개 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주장했는데 사실 이 법안들은 부동산 경기를 활성화하는 법안이지, 서민들의 주택마련을 지원하는 법안이라 보기 어렵다. 이중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의 경우 다주택자가 주택을 매매할 때 양도차익에 대한 중과세율을 적용하는 제도다. 즉 다주택자들이 부동산 매매로 더 큰 이익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취득세도 그동안 감면정책이 이어져 온 만큼 사실상 무용지물이된 상황이다. 더욱이 취득세는 대체로 부동산 구매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효과를 발휘했을 뿐, 집을 살 돈이 없는 서민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 오히려 취득세를 낮춤으로서 부족한 지방세수에만 악영향을 미쳤을 뿐이다. 그러나 결국 취득세 영구인하는 11일 국회를 통과했다.

분양가 상한제의 경우는 집값이 기하급수적으로 오를 당시 나온 주택거래가격 안정대책으로 나온 법안이다. 이마저도 풀자는 것이다. 현 부동산 시장의 위기는 이미 올라갈 대로 올라가버린 집값 문제가 핵심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에서 더 부동산 경기를 부양하자는 정도 밖에 안된다.

선대인 선대인경제연구소장은 “취득세 인하를 통한 거래 활성화 효과는 전혀 없다”며 “게다가 부동산 양도소득세 중과문제는 계속 유보된 상태였기 때문에 실제 시행된 적도 전혀 없다”고 말했다. 선 소장은 “부동산 시장이 계속 가라앉아 왔는데 그런 법안이 통과된다고 해서 없던 효력이 생기겠나”라며 “여전히 집값이 비싸서 집을 안사고 있는데 분양가 상한제를 풀어서 분양가를 높여주면 집을 산다는 것은 근본적 상황인식을 잘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선 소장은 “현재 부동산 시장의 문제는 가격이 높아서 거래가 없는 것”이라며 “시장은 이미 빚을 내서 집을 살 만큼 다 산 상태이기 때문에 더 이상 부동산 시장을 떠받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마치 국회에서 몇 가지 입법이 안돼서 주택시장에 침체가 일어나는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웃기는 이야기”라며 “그런 법안으로 부동산 대책을 세운들 거품만 커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 조선일보 12월 10일자. 8면.
 
그 외 기타 법안들의 내용 역시 대체로 재벌과 부자들의 요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조선일보는 이들 법안들을 내세우면서 ‘서민 삶 안정’과 ‘일자리 창출’을 강조했지만, 이중 일감몰아주기 규제법은 재벌 내부 계열사 간 일감몰아주기로 중소기업을 살리자는 취지이고, 가업상속세제 개편 요구는 기업세습에 어느 정도 세금을 무는 법안으로 오히려 중소기업 보호를 해치거나 서민 생활과는 상관없는 법안들이다.

더 큰 문제는 조선일보가 10일과 12일에 보도된 법안들이다. 조선일보가 10일 처리를 당부한 법안은 관광진흥법이다. 관광진흥법은 대한항공이 옛 미국대사관 직원들 숙소였던 서울 경복궁 옆 송현동터에 7성급 호텔을 지으려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하지만 근처에 학교가 3개가 있어 규제에 걸려 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10일자 8면 <학교 옆 호텔은 무조건 불허…일자리 4만7천개 날릴 판>제하 기사에서 “규제가 풀리면 대한항공의 투자건만 7000억원 규모이고 전국적으로 따지면 약 2조원 규모 신규 투자가 호텔 산업에서 일어난다”며 “전국적으로 4만7천여명의 신규 고용도 창출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제 규모와 일자리 창출에 대한 구체적 근거가 모호한 상황에서 이들을 위해 ‘학교 옆 호텔’을 허가해달라는 주장과 다름없다.

12일에는 아예 배임죄 적용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12일 6면 <기업활동으로 생긴 손실도 배임죄…새가슴 된 기업인들> 보도에서 “작년부터 몰아친 경제 민주화 바람으로 기업인들은 ‘확실한 근거도 없이 경영자들을 처벌할 때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는 배임죄 규정을 이번에는 바꿔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고 전했다. 해당 보도의 요지는 경영상 판단으로 인한 손실은 배임죄를 적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조선일보 보도에 대해 경실련 김한기 경제정책팀장은 “조선일보가 보수 쪽을 대표하는 신문이기 때문에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장하는 사안을 반영해 보도하는 부분이 있다”며 “실제 법안이 통과가 되면 정부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경제 전반이 활성화 될지, 오히려 양극화가 심해질지, 이런 것은 두고 봐야겠지만 조선일보의 기조 자체는 재벌 편향적인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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