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VSB(8레벨 잔류측파대)가 뜨거운 이슈다. 8VSB는 디지털 지상파 방송 고유의 전송 방식인데 미래창조과학부 등은 케이블 채널(PP)들에 8VSB 방식을 허용하겠다는 방침이다. 아날로그 케이블 가입자들은 지금까지 지상파 방송만 HD 화질로 보고 다른 채널은 SD 화질로 봤는데 PP에 8VSB 방식을 허용하면 HD 화질 채널이 늘어나게 된다. 8VSB 방식 확대는 시청률에 목을 맨 종합편성채널들의 숙원 과제였다.

그동안 종편과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등은 8VSB 방식을 확대해도 채널이 줄어들지는 않는다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이 말은 절반 정도만 맞다. 아날로그 케이블 방송은 지상파 5개 채널과 55개 PP채널, 모두 60개 채널을 내보내고 있는데 각각 6MHz폭씩, 360MHz 폭이 필요하다. 그런데 8VSB 방식을 확대하면 디지털 수상기를 가진 가구와 아날로그 수상기를 가진 가구에 방송을 따로 보내야 하기 때문에 주파수 대역폭을 나눠서 써야 한다.

이를 테면 디지털 수상기 가구에 240MHz 폭을 할당하고 아날로그 수상기 가구에 120MHz 폭을 할당하는 방안이 가능하다. 이 경우 MMS(다채널 서비스)를 적용해 6MHz 폭 1개 채널을 쪼개 풀HD 채널은 1개씩, HD 채널은 2개씩, SD 채널은 4개씩 담아서 전송하면 채널 감소를 최소화할 수 있다. 240MHz 폭이면 풀HD 채널 20개와 HD 채널 20개, SD 채널 40개, 모두 80개까지 제공할 수 있다.

문제는 아날로그에서는 MMS가 안 되기 때문에 120MHz 폭이면 6MHz 폭씩 20개 채널 밖에 담을 수 없다는 데 있다. 결국 아날로그 수상기로 보는 가구는 채널이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아날로그 수상기로 보는 가구에 디지털 변환 셋톱박스를 나눠주고 360MHz 폭을 통째로 8VBS로 전환해 전송하는 방법도 가능하다. 이 경우 케이블 방송 사업자(SO)들에게 셋톱박스 구매 비용이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SO 마다 다르지만 전체 SO 가입자 가운데 아날로그 수상기 가구 비율은 10~30% 정도로 추산된다. 결국 8VSB 방식을 확대하려면 일부 가구에 채널 감소를 감수하라고 하거나 상당한 비용을 들여 셋톱박스를 나눠줘야 하는 상황이다. CJ헬로비전처럼 디지털 전환이 상당히 진행된 SO들은 8VSB 도입을 탐탁지 않게 여기지만 씨앤엠을 비롯해 군소 SO들은 8VSB 방식 확대를 가입자 이탈을 막는 극약 처방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김용배 케이블TV방송협회 홍보부장은 “아날로그 케이블 상품 가입자 대부분이 채널 20~30개 미만의 저가 상품에 가입돼 있기 때문에 이 정도면 8VSB 방식으로 전환해도 채널 감소가 거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 부장은 “채널 50개 이상의 고가 아날로그 상품 가입자는 상대적으로 많지 않고 고가 상품 가입자의 상당수는 디지털 상품으로 옮겨가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SO 업계 한 관계자는 “SO들도 입장이 다 달라서 8VSB 방식 확대를 허용하더라도 실제로 얼마나 보편화될지는 모르겠다”면서 “8VSB 방식이 확대되면 채널이 줄어드는 건 확실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 같은 경우는 디지털 전환을 늘리는 게 장기적으로 수익성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8VSB 방식 확대가 허용돼도 실제 적용 여부는 검토해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채수현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장은 “8VSB 방식 확대는 지상파 방송과 동등하게 경쟁하기를 바라는 종편의 열망과 IPTV에 가입자를 뺏기고 있는 군소 SO들의 절박한 위기의식이 만든 짝퉁 디지털 상품”이라고 지적했다. 채 위원장은 “정부가 SO의 디지털 전환을 독려해도 부족할 판에 디지털 전환의 발목을 잡게 될 짝퉁 디지털 상품에 돈을 쓰게 만드는 건 시대착오적이다 못해 퇴행적인 현상”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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