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때마다 등장하는 언론의 단골메뉴는 ‘시민불편’이다. 이번에도 철도노조의 파업으로 ‘시민 불편’이 야기된다는 기사가 많이 나왔다. “표 예매했던 시민들 바뀐 열차 시간표에 어리둥절”(YTN 12월 9일자) ““택시 타고 가라고?”…열차 이용 승객들 분통”(SBS 12월 9일자) “철도노조 오전 9시 총파업 돌입…일부 열차 운행 차질”(KBS 12월 9일자) “철도노조 총파업 돌입…예약 열차 잇단 취소에 “또 시민이 볼모””(파이낸셜뉴스 12월 9일자)
▲ 9일자 SBS 뉴스 갈무리 | ||
노동자들이 일을 멈추면 시민들이 불편하고, 경제에 타격을 입힌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중요한 건 ‘왜’ 노동자들이 파업했느냐이다. 노조는 임금인상을 요구했지만, 임금인상만이 이번 파업의 목적은 아니다. 철도노조는 이전에 파업을 했다가 해고 등 중징계를 받은 적이 있고, 이번에도 노조 지도부에 대한 고소 고발과 파업 참가자에 대한 직위해제 조치가 이루어졌다. 임금 몇 푼 올리자고 중징계를 감수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번 파업의 핵심 쟁점은 ‘민영화’다. 10일 코레일 이사회는 수서발KTX 분할, 즉 수서발KTX를 운영할 코레일의 자회사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이 자회사의 지분은 41%의 코레일 지분과 59%의 공공자금 지분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하지만 노조는 공공자금 몫의 지분을 민간회사에 매각해 민영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이에 대해 코레일은 공공자금 몫의 지분을 살 수 있는 주체를 지자체나 공공기관, 지방 공기업 등으로 한정했기 때문에 민영화란 있을 수 없다고 반박한다. 이에 노조는 코레일이 정관을 바꿀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대다수 언론은 ‘수서발KTX’ 안을 전하며 중계식 보도를 반복하고 있다. 수서발KTX 안이 민영화로 이어질 것이라 의심하는 철도노조의 주장을 전하고, 민영화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코레일 측의 반론을 전하며 이번 사안을 ‘공방’ 수준으로 처리하는 보도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대다수 언론은 정부가 파업에 직위해제 등 강경책으로 맞서고, 철도노조는 ‘무기한 파업’을 이어가겠다고 반발하는 모습을 전하며 대립과 갈등을 보여주는 데 그치고 있다.
▲ MBC 9일자 뉴스데스크 갈무리 | ||
또한 언론은 ‘민영화’를 두고 노사가 대립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줄 뿐 민영화가 국민들의 삶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짚어주지 않는다. 철도노조는 수서발KTX 자회사를 설립할 경우 인력과 비용 낭비가 일어나고, 자회사와 모회사가 서로 출혈경쟁을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민간회사가 철도를 운영할 경우(민영화) 시설 등에 투자하기보다 비용을 아껴 최대한 수익을 남기려 할 것이기에 요금은 높고 서비스의 질을 낮아질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처럼 민영화는 노사 간의 대립 의제로 그치지 않는 국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이슈인데도, 대다수 언론은 이 점을 짚어주지 않고 있다.
▲ 9일자 KBS 9시뉴스 갈무리 | ||
철도노조를 비롯해 민영화에 반대하는 이들은 철도민영화가 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파업으로 인해 국민들이 불편을 겪고 그것이 가시적인 국민 손실로 이어지는 것 못지않게 민영화로 인해 국민 손실이 늘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언론이 철도파업을 전하며 ‘시민 불편’ ‘물류대란’ ‘노사대립’ 등 눈에 보이는 현상을 넘어, 보다 심도 있는 분석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영환 철도노조 지도위원은 10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보수언론은 철도노조의 파업으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다고 보도하는데, 철도가 외국자본에 개방되거나 민영화되어 발생하는 돌이킬 수 없는 피해에 대해서는 왜 이야기하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시민 불편이 문제라면 철도의 주인은 시민이라는 뜻인데 몇몇 소수가 밀실에서 철도정책을 결정하는 현실에는 왜 문제제기하지 않는가”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