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한국사회의 방향타 역할을 했던 계간지 시장이 쇠락하면서 계간지들은 줄줄이 문을 닫거나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영상과 인터넷 시대가 도래하면서 정보의 소비는 더 빠르고 더 쉬워졌지만 긴 호흡의 텍스트로 무장한 계간지들은 이른바 ‘디지털 세상’에 맞지 않았다. 특히 시사계간지는 이제 명맥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쇠락해왔다.

인천을 기반으로 탄생한 황해문화가 창간 20주년을 맞은 것이 특별해 보이는 이유다. 지난 1993년 창간한 황해문화는 2013년 겨울 81호를 통해 창간 20주년 기념호를 발간했다. 그리고 이번 81호에는 해고노동자, 노동운동가, 인권운동가, 촛불소녀 등 46명의 이른바 민중들의 글이 실렸다. 김명인 편집주간은 이들의 글에 대해 ‘집단적 민중자전’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황해문화가 신자유주의 피해대중의 삶에 천착하겠다는 의미다. 이는 좌우의 이념적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에 직접 마주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들을 계간지 특유의 긴 흐름으로 바라보겠다는 의지도 보인다.

미디어오늘은 김명인 황해문화 편집주간을 만나 ‘디지털 세상’에 계간지가 갖는 의미에 대해 물었다. 김 주간은 4일 오후 인하대에서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를 갖고 “현재의 이슈가 중심되면서도 상당한 정도의 심층성, 폭과 깊이로 분석하고 곱씹는 것”이라며 “계절마다 특정 이슈를 깊이 있게 통찰하게 만드는 것이 계간지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

   
김명인 황해문화 편집주간
@이치열 기자
 

- 황해문화가 창간 20주년을 맞는 소감은?
“내가 황해문화 편집주간이 된지는 14년 정도 됐다. 사실 나는 다른 잡지 주간처럼 황해문화에 엄청난 시간을 투여했던 것은 아니다. 현 편집국이 워낙 강팀이고 내가 게을러 노심초사 하면서 맨날 황해문화를 걱정하진 않는다. 그래도 14년 동안 포맷도 바꾸고 유가지로 전환도 했고, 전국지로 바꾸다보니 어떻게 20년이 됐다.
이는 잡지를 잘 만들었기 때문보다는 ‘새얼문화재단’(황해문화 발행재단)이란 풀뿌리 시민재단이 황해문화를 독자적 사업으로 지원을 했기 때문이다. 잡지가 불가능한 시대에 아무 조건 없이 만들 수 있게 해 준 새얼문화재단과 지용택 이사장의 의지, 문화 사업에 대한 자세가 황해문화를 품격 있게 만든다. 좁게는 새얼문화재단, 넓게는 인천시민들이 이 잡지를 만든 것이다”

- 계간지 시장이 위축되면서 여러 계간지들이 위기를 맞았다. 황해문화가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처음 황해문화는 지역성과 전국성을 반반씩 갖췄다가 지금은 9대 1로 전국성이 강해졌다. 전국적인 계간지가 많으면서 상대적으로 한국 시사문화 계간지의 모든 짐을 황해문화가 지고 가게 됐다. 다른 문학계간지 같은 경우는 수익구조가 별도로 있는데 일반 시사 계간지는 계간지만으로 존립이 힘들다.
게다가 다른 계간지와는 달리 황해문화는 동인지(경향이 같거나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발행하는 잡지)가 아니기 때문에 특정 이슈에 정치적 프레임을 집어넣는 것이 아니라 이슈를 중심으로 스팩트럼이 넓은 글을 받아 소개하는 형태다. 그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하나의 비결이자 존립근거라고 봐야 할 것이다”

- 텍스트 시장이 인터넷 뉴스로 넘어가면서 짧은 호흡의 텍스트가 각광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호흡의 계간지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
“지금은 월간지도 많이 죽고 주간지가 저널리즘을 주도하는 부분이 있다. 일간지는 속보가 우선이고, 매체의 정치편향에 따라 엄청나게 달라진다. 때문에 최근의 이슈를 일간지만 보고 판단하기 힘들다. 마찬가지로 주간지도 호흡이 짧고 단일한 인상을 준다. 반면 호흡이 더 긴 매체들은 아카데믹한 것이 많다. 계간지는 그 중간 쯤 있는 것이다.
현행 이슈를 중심으로 가져가되 아카데믹한 정도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정도의 심층성과 폭과 깊이로 분석하고 곱씹는 것이다. 속보성, 선정성에 휩쓸리지 않고, 고담정론으로 가지 않고 그 계절마다 이슈를 깊이 있게 통찰하게 만든다. 여러가지 입장을 통해 이슈를 성찰하게 만든다. 이는 현대사회에서 가장 결핍된 부분이기 때문에 가장 필요한 것이다.
요새 신문들을 보면 저건 ‘좌빨논리’ 저건 ‘수꼴논리’ 밖에 없다. 그게 블로그 등을 통해 재생산되고 자기 영역 속에서 펌핑이 되면서 각자의 진영 속에서 부풀려지고, 강화된다. 그런 것들이 서로 만난다거나, 교류하거나 변증되거나 조정되는 과정이 전혀 없다. 만약 사상시장이 활성화 되고 논쟁이 활발한 백가쟁명이 일어나는 구조라면 우리도 어떤 스탠스를 취했겠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
때문에 현상의 이면을 들추고 표면적 논리를 뒤집을 수 밖에 없다. 그런 저널리즘 매체가 없기 때문에. 물론 편집위원들은 꼴보수도 아니고 중도도 아닌 진보적인 사람들이 많지만 그 한도 안에서도 공론장의 기능을 하려고 애를 쓴다”

   
황해문화 81호 ( 창간 20주년 기념호) 표지
 
 

- ‘전문성’과 ‘심층성’을 갖춘 계간지가 어렵다는 사람들이 많다.
“답답하다. 글의 논리는 짧은 글로 표현할 수 없다. 나도 트위터를 하다가 포기한 이유는 40자 이내로 도저히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쓰니 오해가 오해를 계속 낳는다. A는 A의, B는 B의 입장이 있기 때문에 이를 비교·검토해야 하는데 그냥 A는 좋은 놈, B는 나쁜 놈이라고 해버리면 폭력일 뿐이다. 또한 진실을 오도할 수밖에 없다.
계간지 원고가 원고지 70~80매 써도 그 논리를 다 설명하지 못하고 오해를 받기 마련이다. 그런데 요즘에 일간지 한 면을 다 써봐야 30매 정도 밖에 안 된다. 블로그가 길다 해봐도 10~13장 정도다. 그걸로 할 말 다했다고 할 수 없다. 그렇게 짧은 텍스트 안에 논리를 풀기 위해서는 더 강한 말을 써야 하고, 예각화 돼야 하고, 논거의 부족한 점이나 유보한 부분을 제거해야 한다. 그러니 소통이 불가능해진다.
댓글들을 보면 중요한 사안에 대해 ‘니 입장은 뭐냐’며 단순화 시켜 폭력적으로 쫒아버린다. 그러고 보니 남는 댓글은 내가 잘났다 니가 잘났다 밖에 없는 것이다. 사상, 이념, 논리의 폭력만 남는 것이다. 사람들의 호흡은 짧아지고, 신경질적이 되고, 다른 사람의 말을 안 듣게 되고 폐쇄화되고 자기중심적이 된다. 이것이 굉장히 위험한 것이다.
대립은 첨예화되고 소통이나 대화는 없어지고 완충이 없어진다. 훨씬 온건하고 정제될 수 있는 좋은 논의들도 첨예화 되고 극단화 된다. 정말 심각하다. 나도 개인 블로그에 교학사 교과서 문제를 언급하며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인간에 대한 애정이 결여된 것 같다, 수많은 고통 받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능력이 부족한 것 같다’고 썼더니 그 안에서 싸움판이 벌어졌다. 처음 댓글을 단 사람은 ‘그럼 당신은 북한 사람들 고통 어떻게 생각하냐?’고 묻더라.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그냥 ‘너는 좌빨이니, 너는 북한주민 인권을 어떻게 생각하냐’ 묻는 거다.
그러면 반대쪽 사람들이 또 ‘너는 뭐냐’며 싸운다. 두 쪽 다 못봐주겠더라, 그런 싸움은 좌빨, 수꼴만 남고 상처만 남는다. 더 나쁜 건 논리를 가장한 괴변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예전에 계간지를 많이 볼 때는 계간지나 논문을 봐야 해당 이슈에 대한 대화가 됐다. 그걸 중심으로 논의를 확장해야 하는데 그게 없다”

- 갈등의 조정이 안되고 극단화 되는 현상에 언론이 영향을 끼친 것이 있는가?
“사실 그게 큰 문제다. 조중동이 큰 잘못을 했다. 모든 사실을 루머로 만들거나 풍문으로 만들거나 가십으로 만들었다. 자기들이 원하는 어떤 방향으로 채색을 하고 임팩트를 준다. 그런 방식이 사람들을 굉장히 쉽게 선동하고 움직이는 방식인 것처럼 굳어졌다. 그것이 제일 큰 문제다. 무책임하거나 ‘아님 말고’식이다.
요즘 사람들 사이에 여유가 없어진 것이 사실이다. 성찰하지 않는 세상이 된 것은 너무 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니 깊게 생각할 틈이 없고 또 그럴수록 손해다. 중요한 정치적 사회적 문제에 대한 성찰할 시간이 없고, 불안하니까, 가장 낮은 차원에 문제에 집중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에 집중하게 되면서 다른 것들을 돌아볼 겨를이 없다.
사건이 생기고 이슈가 생기면 이를 소화해야 하는데, 그 방식이 샌드위치 사먹고 라면 먹듯이 하는 것이다. 인터넷을 보면 말은 풍성하지만 전부 단편적인 것이고, 극단화 된 것이다. MP3 음악처럼 여운도, 풍성함도, 명암도 없는 아주 건조한 뼈다귀 같은 소리만 남는다. 조중동 뿐 아니라 온라인상의 모든 소통방식이 그렇다.
책을 안봐도 사람들은 다 안다고 생각한다. 일단 정보는 있으니까, 조중동 식의 저널리즘에 의해 착색된 정보를 전부라 생각하고 받아들인다면 그 정보의 가치나 의미, 맥락은 완전히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김명인 황해문화 편집주간
@이치열 기자
 

- 창간 20주년 특집호로 신자유주의 피해대중의 직접 발언에 주목했다. 20주년 권두언에서도 민주화체제보다 신자유주의체제에 관심을 집중했는데 그 이유는?
“우리나라에서 87년 체제가 갖는 의미가 큰 것은 사실이다. 엄혹한 공안 통치를 뚫고 민주화라는 거대한 성취를 이룬 건 사실이고 세계사적으로도 중요하다. 이를 전제로 삼고, 문제는 그 안에서 우물 안 개구리처럼 거기에 주관적으로 고무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엄밀히 말하면 1980년 민주화 투쟁은 70년대 말 오일쇼크 때 호황을 누리던 서구 자본시스템이 엄청난 타격을 입으면서 레이건 노믹스 같은 신자유주의 체제가 대두됐다는 것과 연결된다. 그 정치적인 영향으로 중남미·중동·동남아 독재국가들의 시장에 대한 정치적 통제력이 깨진 것이다. 그것이 민주화 도미노로 연결됐다.
박정희 정권의 붕괴는 김재규의 암살로 이루어졌지만 박정희 정권 막판에 핵 보유 움직임 등 반미적 성향으로 나타났고 여기에 미국이 개입한 것은 사실이다. 한국식 독점 자본주의 체제를 붕괴시키는 과정인 셈이다. 이후 전두환 정권부터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이면서 정치적 독재체제가 유지된 셈이다.
결국 문민정부 YS체제가 들어서면서 부르주아 민주화 체제 시스템이 완성됐다. 87년의 노동자 대투쟁도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대두가 아닌 노동자 계급이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에서 시민권을 얻은 것이다. 그걸 획득한 순간 급격하게 노동자 계급은 보수화 된다. 억압된 민중 뿐 아니라 지식인·정치인들도 ‘이만하면 됐다’는 거다.
정치적 자유가 만들어지니, 그 다음엔 증권이나 부동산 투기에 올인했다. 그러니 운동이니 변혁이니 다 없어지고 운동권이 하나의 서클로 축소됐다. 91년 강경대 사건이 있었음에도 1년 뒤에 모든 것이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현실 사회주의 붕괴 영향도 없지 않았지만 급진적 사람들의 고립과 소외가 진행된 것이다.
그렇게 보면 87년 체제를 엄청난 의미로 규정할 수 있는가? 오히려 95년 YS의 노동유연화 정책을 저지 못하고 관철되면서 곧바로 IMF가 터졌고 신자유주의가 마각을 드러낸 것이다. 그 때부터 시장주의는 족쇄를 풀려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고착됐고 노동자들은 시민권은 다시 붕괴됐다.
그 이데올로기 힘이 강하니 10년 정도 지나면서 사람들이 피로해진 것이다. 아무데도 올라갈 수 없고, 불안하고, 부자는 더 부자가 되는 이 모순을 깨닫기 시작한 것이 얼마 안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출마하면서 복지 얘길 한 것은 이 영향을 완화할 수 있는 이슈를 안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다 배반하고 있다.
만약 정상적인 의미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체제라면 사회적 타협과, 최소한의 민주적 규율은 있을텐데 한국사회가 그런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득권층이 희생해야 한다. 한국 기득권층은 도덕적으로 불안정하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붕괴는 기득권에 대해 역사적으로 굉장한 위협을 가했다는 점이다. 그것이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한국사회 보수화의 본질은 군부와 반북론자다. 여기에 조중동이라는 강력한 이해관계 구조가 결합돼 정작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요구하는 기본적인 자유도 허용하지 못할 정도로 경직되어 있는 것이다. 결국 87년 체제의 문제가 아니라 97년 체제의 문제다. 특히 조선일보, 사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모두 조선일보가 만들었다고 봐야 한다. 내가 조선일보를 사회적 흉기라고 했다가 고소됐는데, 사회적 흉기 맞다”

- 황해문화의 매번 주제 선정과 외고 진행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
“편집회의를 항상 한다. 한 3개월 정도 앞서서 하고 2달 전부터 원고를 청탁해야 한다. 어떨 때는 주제선정이 힘들고 어떤 때는 또 쉽게 되기도 한다. 주제에 따라 업무조정을 하고 권두언을 쓰는 사람도 결정된다”

- 초기 황해문화는 인천의 지역성을 강조하는 기획들이 많았는데 전국단위 의제로 이슈를 확장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전국지적인 이슈 발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책임감이 생긴 것이다. 인천문제는 전국적 문제에 늘 따라간다. 한국사회의 문제가 인천에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는 꼭 집어넣는다. 처음 황해문화는 인천시민들의 발언을 실었는데 이는 최근 인터넷 등에서도 많이 한다. 굳이 그런 것을 소화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인천에서 인천일을 하는 분들에게는 좀 불만일 것이다. 하지만 다 할 수는 없으니까, 그런 부분이 있고, 막상 또 해보면 딱 떠오르는 것이 없다. 인천문제는 로컬과 글로벌, 내셔널, 맥락 속에서 풀어야 하는데, 신중한 독자는 이게 인천문제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 것이다. 분명하 사실은 황해문화는 분명 인천잡지라는 것이다”

- 젊은 독자들에 대한 확장 방안은 있는가?
“독자모임도 만들고 SNS를 통해 활동하긴 한다. 하지만 계간지로서 정체성을 유지해야 한다. 홈페이지에 내용을 올려도 역시 안 읽는다. 책은 책으로 읽어야 한다. 책을 찾아볼 수 있게 만드는 효율적이고 매력적인 동기부여를 더 해야 할 것이다. 사실 그 부분의 연구가 부족하다. 지역독자모임 만들고 순회강연도 하면 좋은데 인천에 있어 어려운 부분은 있다”

- 황해문화의 목표가 있다면?
“양쪽의 흑백논리에 대한 허약한 지반을 들춰내고 불필요하게 부풀려진 부분과 왜곡된·과장된 허상을 끄고, 리얼리티를 추구한다. 진짜 사태의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자는 것이다. 주류에 경직되고 편향·고착된 사유를 교정해 나가는 방향이다. 또한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거나 아무도 안 짚고 넘어 가는 것을 찾아 문제제기 해야 한다. 그게 저널리즘의 본령이라고 본다.
우리도 좀 더 부지런해야 하는데, 문제는 편집위원들도 고령화가 돼서 젊은 감각이 없다. 계간지에 젊은 필자가 없다. 대학에 젊은 조교수·부교수 급 젊은 필자들이 자기 논문 쓰느랴 글을 못쓴다. 그것도 큰 문제다 7~80년대만 해도 계간지에 글을 쓰는 것이 논객으로서 일종의 데뷔무대였다. 그런 현상도 없어져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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