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많았던 클리어쾀 TV가 마침내 풀렸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저소득 계층을 대상으로 2일부터 클리어쾀 TV 구입 신청을 받고 있다. 클리어쾀이란 쾀(QAM, 직교 진폭변조)이 없다는 의미인데 케이블 방송사가 스크램블(암호화)을 걸지 않고 송출하면 셋톱박스 없이 케이블을 직접 TV에 연결해 디지털 방송을 수신할 수 있게 된다. 셋톱박스가 내장된 TV를 클리어쾀 TV라고 한다.

미래부가 공개한 클리어쾀 TV는 삼성전자와 LG전자, 대우디스플레이 등 8종, 가격은 21만9000원에서 64만2000원까지다.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 계층, 국가유공자, 시청각 장애인 가구만 신청할 수 있다. 197만 가구가 대상이다. 클리어쾀 TV를 구입하면 월 3000~4000원 수준의 저가 케이블 상품에도 가입할 수 있다. 채널이 30여개 밖에 안 되지만 디지털 케이블 상품이 약정 없이 월 2만~3만원 수준이라는 걸 감안하면 파격적인 가격이다.

그동안 유료방송 업계에서는 클리어쾀 TV가 가입자 이탈을 막으려는 케이블 업계의 꼼수라는 비판이 많았다. 그런데 정작 케이블 업계에서는 클리어쾀을 버리기는 아깝지만 딱히 먹을 것도 많지 않은 계륵 취급을 하는 분위기다. 업계에서는 클리어쾀 TV 구매자가 많아 봐야 50만명 정도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월 3000~4000원의 저가 상품에 목을 맬만큼 케이블 업계의 사정이 절박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10월 말 기준 아날로그 케이블 가입 가구는 887만6652명, 전체 케이블 가입자의 59.5%에 이른다. 지난해 12월, 지상파 방송의 디지털 전환이 완료됐지만 이들은 여전히 디지털로 전송되는 지상파 방송을 아날로그 케이블을 통해서 본다. 미래부에 따르면 아날로그 TV 수상기로 TV를 보는 사람들이 아직도 557만 가구, 전체 가구 대비 31% 수준이다. 이들이 어디로 옮겨 가느냐가 유료방송 시장에서는 최대 관심사다.

   
▲ 유료방송 시장 점유율 ⓒ흥국증권
 
아날로그 케이블 가입자는 지난해 말 971만명에서 83만명 가까이 줄어들었는데 디지털 케이블 가입자는 520만명에서 604만명으로 84만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전체 케이블 가입자는 겨우 1만명 늘어났다. 반면 IPTV 가입자는 지난해 4월 500만명에서 11월 600만명, 올해 5월에는 700만을 넘어섰고 최근 800만명을 돌파, 무서운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내년에는 1000만명을 거뜬히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전체 유료방송 가입 가구 2493만 가구 가운데 최소 800만 가구 이상이 여러 유료방송에 중복 가입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케이블은 정체 상태인데 IPTV를 중심으로 중복 가입이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다. 결국 아직까지 아날로그 케이블에 가입돼 있으면서 조만간 TV를 바꿀 557만 가구가 유료방송 시장의 최대 격전지가 될 가능성이 크다. 클리어쾀 TV는 이 가운데 저소득 계층을 붙들려는 케이블 업계의 고육지책이라고 할 수 있다.

미래부 관계자는 “저소득 계층 197만 가구 가운데 디지털 TV가 없는 가구는 105만 가구 정도로 추산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70만 가구 정도가 2017년까지 TV를 바꿀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TV 수상기를 최대 30%까지 싸게 살 수 있는 데다 일반 디지털 케이블 상품이 1만7000원부터 시작하는데 같은 상품을 4000원에 볼 수 있다면 메리트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양방향 서비스를 지원하지 않는 짝퉁 디지털 전환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해서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느냐”면서 “저소득 계층 가운데 상당수는 저가 아날로그 상품에 머물러 있으려고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런 정도의 유인책이 없으면 디지털 전환을 마무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지상파 디지털 전환 때는 정부에서 TV 구매 비용을 지원해 줬는데 이번에는 정부 지원이 없다”고 덧붙였다.

   
▲ 아직까지 아날로그 TV로 방송을 보는 가구가 557만 가구에 이른다. 사진은 폐기물 처리장의 아날로그 TV들 ⓒ연합뉴스
 
케이블 방송사들에게 특혜를 준 것 아니냐는 비판에 대해서는 “디지털 케이블에 가입하라고 독려하는 게 아니라 지상파 직접 수신과 IPTV나 위성방송 가입 등에 대해서도 안내를 하고 있다”면서 “실제로 신청 첫 날 통계를 보면 직접 수신을 하게 해달라거나 IPTV 가입 신청을 하는 비율이 꽤 높게 나타났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직접 수신을 원하면 안테나를 무료로 설치해준다”고 덧붙였다.

케이블 업계 관계자는 “클리어쾀은 하면 할수록 손해”라면서 “케이블 업체들이 요청한 건 맞지만 디지털 케이블로 옮겨가야 하는 상황에서 이런 저가 상품이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한 상황이라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투자를 더 해서 가입자들을 상위 상품으로 끌어올리는 게 우선 순위지 저가 상품을 전략으로 가져갈 수는 없다”면서 “정부의 디지털 전환에 보조를 맞추는 차원으로 이해해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반면 한국방송협회 관계자는 “저가 케이블 상품 가입을 정부가 독려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저소득 계층 복지를 생각한다면 지상파 직접 수신 비율 제고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KT스카이라이프 관계자는 “클리어쾀은 아날로그 케이블 가입자를 그대로 디지털 케이블로 가져가려는 전략”이라면서 ”여러 유료방송 사업자들 가운데 케이블 방송사들에게만 주는 특혜”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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