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과 국군 사이버사령부를 비롯한 국가기관의 총체적인 불법·부정선거 개입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박근혜 정부에 대한 시국선언이 ‘사과’ 수준이 아닌 ‘정권 퇴진 운동’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종교인들이 앞장선 사퇴 요구에 박근혜 대통령이 “용납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놓자 시민사회와 정치권도 ‘도를 넘은’ 대통령의 태도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입장들이다.  

정영일 시민사회단체 연대회의 공동대표는 26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이 종교계 시국선언 등 국민 분열을 야기하는 일을 용납하지 않겠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 “이는 국민에 대한 협박이자 옛날 박정희 대통령이 그랬던 것처럼 국민을 주눅 들게 해 독재 권력을 연장하기 위한 술수”라며 “우리사회 최후의 양심적 보루인 종교인들을 종북으로 몬다면 이 정권도 막장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 대표는 이어 “국민의 끊임없는 사과와 해명 요구를 정면으로 받아치며 국민을 협박하면 더 이상 국민의 대통령 아니다”며 “정권 퇴진 운동과 대통령 사퇴 요구가 나오는 것 자체가 자연스러운 일이고 이런 목소리가 들불처럼 사회에 번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치권과 종교계, 시민사회 대표 등이 ‘국정원과 군 등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진상규명과 민주헌정질서 회복을 위한 각계 연석회의’를 결성한 데 이어 시민사회단체들도 독재와 박근혜 정권에 반대하는 모든 개인, 조직을 아우르는 범국민연석회의 구상을 가시화하고 있다. 범국민연석회의에서는 부정선거에 대한 대선불복과 정권 퇴진 요구를 본격화할 전망이다.

천호선 정의당 대표도 이날 국민과의 대화 전국순회 방문 일정으로 전남 목포를 방문해 “최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박창신 신부의 발언을 두고 박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서 사제단을 협박하고, 대선 불법개입 국면을 벗어나는 호재로 삼으려 하고 있는데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정권 퇴진을 주장하는 것도 국민의 권리”라며 “국민은 박 신부의 발언보다 대통령의 위협에 더 큰 두려움을 느끼므로 대통령과 청와대는 이 소동을 당장 그만둬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 22일 천주교정의구현 전주교구 사제단은 전북 군산시 수송동 성당에서 불법·부정선거 규탄과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시국미사와 촛불집회를 열었다. 사진=강성원 기자
 
앞서 지난 22일 천주교정의구현 전주교구 사제단이 전북 군산시 수송동 성당에서 불법·부정선거 규탄과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시국미사를 연 데 이어 개신교와 불교 등 3대 종교계도 금식기도회와 시국예배, 박근혜 대통령의 참회를 촉구하는 시국선언 등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 8월 국가정보원 선거 개입 진상 규명을 촉구하는 개신교 목회자 1000인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다음 달 10일 세계인권선언일을 맞아 인권주간 연합예배를 시국예배 형식으로 진행할 예정이며, 25일 성탄절에는 목정평과 연대해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성탄예배’를 계획 중이다.

김창현 NCCK 정의평화국 목사는 25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올해는 고난의 현장에 찾아가는 것보다 현재 시국의 상황이 고난받는 현장이기 때문에 시국예배를 드릴 것”이라며 “인권주간에 인권선언문을 통해 광범위한 국가기관 개입의 부정선거와 선거불복에 대한 내용을 발표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개신교 목회자들의 모임인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목정평)도 다음 달 16일부터 15일까지 열흘간 서울광장에서 ‘박근혜 정권 퇴진을 촉구하는 금식기도 모임’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태효 목정평 상임의장은 지난 25일 국민TV라디오 ‘노종면의 뉴스바’에 출연해 “오는 28일 중앙위원회 최종 결정을 거쳐 금식기도회를 열고 대통령 퇴진과 부정선거에 가담한 모든 사람의 처벌, 국정원 해체를 요구할 것”이라며 “박근혜 정권은 거짓으로 이뤄진 정권이고 국정원 선거개입 행위에 대한 특검도 하지 않고 국정조사에서 합의한 부분도 지키지 않고 있어서 이는 박 대통령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아울러 대한불교조계종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승려 1천여 명도 오는 28일 ‘박근혜 정부의 참회와 민주주의 수호를 염원하는 조계종 승려 시국선언’을 발표한다고 25일 밝혔다.

박금호 실천승가회 사무국장은 미디어오늘과 전화통화에서 “지난달 말 집회위원회의에서 헌법유린의 대선개입 정황이 나타났는데도 대통령이 기자회견 한 번도 안 하고 모르쇠로 일관한다면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논의가 나왔다”면서 “단체 입장에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기엔 아직 떠안아야 할 부담이 있지만 이후 법원 판결 등 국가기관이 선거에 개입했다는 명백한 결론이 나오면 얼마든지 퇴진까지 주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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