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정의구현 전주교구 사제단이 지난 22일 전북 군산에서 연 대통령 사퇴 시국미사가 정국을 뒤흔들고 있다. 처음에는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문제에 대해 최초로 대통령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는 점 때문에 그리고 그 주인공이 종교인이라는 이유 때문이었지만 지금은 ‘종북’ 논란이 그 모든 것을 집어 삼켰다.

문제가 된 발언은 박창신 전주교구 원로신부의 발언이다. 박 신부가 연평도 해전에 대해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과한 부분이 있다’는 평가는 각자의 자유지만 ‘종북 프레임’의 문제를 지적하던 발언의 취지는 송두리째 사라졌다. 전주교구가 시국미사를 벌인 원인과 이유도 마찬가지다. 121만건의 국정원 트위터가 추가 발견되면서 다시 불거진 관권개입선거 논란은 이미 수면 아래로 가라 앉은지 오래다.

역시나 새누리당은 물론 박 신부의 발언 이후 조선일보 등 일부 언론도 ‘종북’ 카드를 꺼내들었다. 종북을 꺼내들면서 얻을 수 있는 효과는 상당하다. 전주교구를 비롯해 이후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을 제기하는 타 종교계의 숨을 죽였다. 정의구현사제단이 참여하고 있는 민주당 등 야권의 ‘연석회의’에도 종북 프레임을 덮어씌울 수 있게 됐다.

이들 언론들이 전주교구의 입장이 아직 정의구현사제단 전체의 입장이라 보기 어렵고, 박창신 신부의 발언조차 전주교구의 입장이라 보기 어렵지만, 시국미사 중 나온 이 한 마디를 통해 이번 시국미사의 성격을 규정하고 ‘종북’ 논리를 정의구현사제단 전체로 확대 해석한 것도 이 때문이다.

   
▲ 조선일보 11월 25일자. 사설.
 
조선일보는 이날 사설 <‘정의 구현’이 아니라 ‘종북 구현’ 사제단인가>에서 “정치싸움에 뛰어든 신부가 제 나라를 부정하고 제 국민의 죽음을 모독하는 것을 보면서 새삼 소름이 돋을 지경”이라며 “일부 인사들이 종교의 옷을 입고 북을 추종하는 행태는 이렇게 점점 노골적으로 돼 가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조선일보는 이어 “정의구현사제단은 박 신부 말이 파문을 일으킨 지 이틀이 되도록 아무런 해명도 내놓지 않고 있다”며 “이제는 이들을 ‘종북구현사제단’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말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종북구현사제단’이라 부른 이유에 대해 정의구현사제단이 평택미군기지·한미FTA·제주해군기지를 반대했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각각의 사안이 찬반양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의구현사제단의 활동 전반에 대해 ‘종북구현사제단’이란 말을 만들어내는 것은 정부 활동에 대해 반대만 하면 ‘종북’으로 몰아붙이는 것과 다름 아니다.

중앙일보도 <종교계 일각의 뒤틀린 국가관, 도를 넘어섰다>사설에서 “인권이란 개념조차 없는 북한의 세습정권에 대해서는 비판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뜬금없이 북한인권문제를 끌어들였다. 한국사회의 문제를 지적하는데, “북한의 인권 문제를 지적해 보라”는 맥락없는 지적을 하는 일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동아일보 역시 <북 노골적으로 편든 신부, 도대체 어느 나라 사제인가> 사설에서 “박 신부가 진정한 RO(혁명조직)라는 말까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며 아예 최근 재판 중에 있는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국가내란음모’ 혐의와 연결시켰다.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이 ‘재판 진행 중’이라며 ‘하야 요구’에 맹비난을 퍼부은 동아일보가 정작 재판중인 RO사건에 대해서는 확정판결을 내린 듯한 주장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런 태도는 이들 언론들이 이날 김용민 국민TV PD의 트위터를 보도하는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김 PD는 지난 23일 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사제들의 시국미사에 청와대 등이 반발하자 트위터에 “부정선거로 당선된 것들이 반성은커녕 큰 소리 떵떵치니”라며 “그 애비도 불법으로 집권했으니, 애비나 딸이나”라고 비판했다.

   
▲ 동아일보 11월 25일자. 3면.
 
이들 언론들은 이에 대해 ‘막말’이라 지적하며 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의 ‘종북’ 논란과 함께 다뤘다.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종북과 막말이라며 ‘비이성’의 영역으로 끌어당긴 셈이다.

김용민 국민TV PD는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에서 “국정원에 120만 건, 군 사이버사령부에 2300만 건의 트윗이 있는데 김용민 트윗 하나가 뉴스가 되는 것이 정상적인 보도행태나 어젠다 세팅이라고 볼 수 없다”며 “극도의 위기상황을 김용민을 이용해 막말로 덮어씌우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 PD는 “(새누리당과 일부 언론이 위기 상황에서) ‘대선불복 세력’, ‘종북’, ‘막말’로 방패막이 삼으며 가는 흐름이 있는데 그때마다 민주당은 꼬리 자르기 식으로 일관하니 재미를 붙인 것”이라며 “장악된 언론을 통해 파문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용민을 다시 불러세운 것은 써먹을 카드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은 아닌가”이라며 “수법이 유치하고, 신선하지가 못하다”고 말했다.

김 PD는 이어 자신의 트윗에 대해서도 “내가 쓴 말 중 욕설이나 비속어가 어디 있는가”라며 “그러면 ‘환생경제’ 나온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해) 육시랄 놈이라고 말한 것과 비교해 뭐가 더 과한가”라고 말했다. 이어 “나라의 녹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이 호남 지역주민을 향해 ‘홍어’, ‘전라디언’, ‘5·18은 폭동’ 등의 말을 한 것은 막말이 아니고, 사전에 있는 ‘아비’란 말로 시비를 거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못하게 하면서 숭상시하는 것은 민주주의 측면에도 옳지 않다”고 말했다.

   
▲ 시사평론가 김용민. ⓒ 이치열 기자
 
하지만 한동안 이들의 이 같은 움직임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공소장 2차 변경 이후 마땅한 대응논리를 찾지 못해 부심하던 때였기 때문이다. 23일 새누리당은 물론 이들 언론들도 보도와 사설을 통해 국정원의 선거개입 의혹 확대를 비판적으로 조명했지만 불과 하루만인 24일 이 문제를 다루는 언론은 많지 않았다.

지난번 새누리당과 이들 언론의 ‘귀태’ 발언을 다루는 방식도, 민주당이 자꾸 선을 긋던 ‘대선불복’으로 몰아갔을 때도 이런 태도는 마찬가지였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왝더독’ 현상이다. 언론이 한 명 한 명의 발언에 주목할게 아니라 현 시국이 조성된 원인과 이유를 주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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