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의 불법 선거개입 활동의 규모가 시간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종교계 일각과 주요 인사들 사이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사퇴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움직임과 정권을 타도해야한다는 목소리까지 등장하고 있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전주교구 사제단은 오는 22일 군산 수송동 성당에서 종교인 가운데는 처음으로 박근혜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시국미사를 개최하기로 했다. 이 뿐만 아니라 정의구현사제단의 전국사제단도 오는 1월 예정된 총회에서 박근혜 사퇴 또는 하야를 촉구할지 여부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소속 신부들은 내다보고 있다.

21일 전주교구사제단이 시국미사 전에 내놓은 공지를 보면, 이들은 “지난 대선에 조직적으로 개입한 사실이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음에도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진실을 은폐하고 조작하기 위해서 책임지고 소신 있게 수사를 진행했던 사람들을 자리에서 내쳤다”며 “진실을 말해야 하는 언론에는 재갈을 물려서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는 것만 방송하게 하고, 경제를 살린다면서 부자들의 세금 개혁은 뒷전에 놓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 세금을 물리려 한다”고 지적했다.

전주교구사제단은 “일자리를 말하면서도 파견근무와 비정규직을 통해서 노동자의 삶을 파괴하고 노동자의 합법적인 권리를 외치는데도 종북이라는 이상한 논리로 법외노조로 만들어 버린다”며 “‘정의로써 소송을 제기하는 이가 없고 진실로써 재판하는 이가 없고 헛된 것을 믿고 거짓을 이야기하며 재앙을 잉태하여 악을 낳는 자들(이사 59,4)’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됐다”고 설명했다. 박근혜 정부가 1년도 안돼 악이 판치는 세상이 됐다고 규정한 것이다.

   
천주교 마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소속 신부들이 지난 9월 9일 오후 경남 창원시 의창구 명서동 성당에서 국정원 불법 대선개입 진상규명 특검실시 촉구를 위한 시국미사를 진행하기 위해 성당으로 입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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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고 그분의 힘이 정의의 원천임을 믿고 있는 우리는 지금의 현실을 가만히 앉아서 볼 수만은 없다”며 “진리를 간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거짓이 판을 치는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의의 하느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정의의 사도로서 국가의 불법적인 대선개입과 그 책임을 지고 있는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하는 시국미사를 봉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통령 사퇴 촉구 시국미사 결정은 전주교구사제단에서 지난 11일 독자적으로 결정한 것이지만,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소속 신부들의 대체적인 저변에 깔려 있는 생각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월까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총무신부를 맡았던 김인국 신부(충북 옥천성당)는 21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전주교구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결정한 것으로, 얼마든지 그런 의견을 낼 수 있다고 보고 지역교회의 판단을 존중한다”며 “이는 대통령 사퇴 요구의 신호탄이 될 것이지만, 아직 전국사제단 전체의 공식의견을 얘기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김 신부는 “오는 2014년 1월 총회에 이런 논의가 거론돼 의견이 모아질 수 있을 것”이라며 “이런 의견이 모아지고 종합되면서 결론이 맺어지는 것으로, 전주교구에서 처음으로 꺼낸 것이지만 특정 지역의 입장만으로 축소시킬 일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김 신부는 “우리는 끊임없이 정상화의 길로 되돌아오도록 촉구하고자 하는데, 국민통합이라는 가치와 스스로 약속했던 경제민주화를 실현하려면 절차적 민주주의가 선행돼야 하는데 이를 매듭짓지 않고서는 다음 단계로 갈 수가 없다”며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투명하게 특검을 받고 사과하라는 것이나, 정말 대통령이 그런 절차를 밟을 생각이 없다고 확인되는 순간 ‘그러려면 사퇴하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 신부는 “이미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지난 여름 대통령에게 재신임을 받으라고 촉구한 바 있다”며 “본인이 떳떳하다면 반칙을 썼다는 사실을 깨끗이 인정하고 국민에게 재신임을 물어 재투표든 재선거든 하겠다고 하면 되레 신뢰를 더 얻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동안의 과정을 볼 때 전혀 개전의 정을 보이지 않아왔다는 점에서 전주교구가 사퇴를 요구할 수밖에 없겠다는 잠정 결론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9월 23일 열렸던 천주교 시국기도회.
 
특히 국정원이 처음엔 댓글을 하나도 안달았다고 했다가, 수사결과 70개가 나타난데 이어 트위터로는 5만개, 지금은 120만개까지 온 사실을 들어 김 신부는 “이것은 대중 거짓 선동 조작에 의한 투표라고 밖에 볼 수 없다”며 “상품살 때 보면 이미 구매한 사람들의 의견이 해당 상품 홈페이지에 올라온다. 소비자가 이를 참조해서 구매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 이를테면 국정원 사건은 이런 사용후기를 조작한 것 아니냐. 나머지는 모두 속은 것이다. 그러면 다시 해야 한다. 그것이 박근혜 대통령의 5년 임기를 위해서라도 떳떳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와 함께 편파수사를 비판하며 지난 대선 때 교수직을 던졌던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도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현 정권이 수사의 원칙과 수사기관의 신뢰를 무너뜨렸다며 정권을 타도한다고 천명하고 나서 주목된다.

표 전 교수는 자신의 현역 경찰 시절(1992년) 목욕탕 내 지갑분실 사건 용의자 수사 과정에서 해당 용의자가 불법취업 중인 중국인이었는데, 그 목욕탕의 주인이 당시 여당 청년위원장이라는 점 때문에 경찰 내 ‘윗분’들로부터 외압을 받았던 경험을 털어놨다. 당시 출입국관리법엔 불법취업자 뿐 아니라 고용주도 처벌받고 행정처분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 표 전 교수는 그런 외압을 따르지 않아 ‘보이지 않는 인사고과 근무평정’의 불이익 정도를 받아 만년 경위로 일하다 유학을 떠났다고 회고했다.

표 교수는 이러한 ‘행정지휘권자의 부당한 수사 개입’이 국가 법질서나 선거공정성 등 중차대한 국가적 사안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추호라도 있다면, 결코 허용되어서도 안되고 용납돼서는 안된다면서 “법무장관, 서울중앙지검장, 서울청장, 국방부장관, 이런 자들이 수사에 개입하고 결정을 내리고 요구하는 낌새가 보인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이 수사는 오염된(tampered, contaminated) 것”이라고 평가했다.

표 전 교수는 “정치적 문제 관련 사건의 경우, 그런 의혹 자체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인 ‘수사진의 독립’을 천명하고 유지하고 보여줘서 시민의 신뢰와 수긍을 유지해야만 한다”며 “그나마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도 부당한 지시에 항명하는 수사담당자나 책임자를 드러내놓고 찍어내지는 않았다. 그게 용납받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
@이치열
 
표 전 교수는 현 정권에 대해 “이 정권은 권은희 과장에 대한 비열한 인신 공격에 이어 채동욱을 찍어내고 윤석열을 능멸했다”며 “버젓이 김용판 지시받아 증거인멸과 수사왜곡이라는 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국회에 이어 법정에서도 위증을 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표 전 교수는 이를 두고 “수사 관련 전문가로서, 도저히 납득, 용납하지 못해 권력과의 전면 투쟁에 나서는 이유”라며 “과거엔 안그랬냐 그딴 소리 집어치우라. 21세기 2013년 대한민국에서, 현 정권이 수사의 원칙과 수사기관의 신뢰와 독립성 자체를 완전히 무너트리고 있는 이 상황, 전 절대로 결코 용납할 수 없다. 다른 모든 문제를 떠나 이 문제 하나만으로도 이 정권은 타도의 대상”이라고 선언했다.

다음은 천주교 정의구현 전주교구 사제단의 대통령 사퇴 촉구 시국미사 발표문

불법선거 규탄과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시국미사

“정의로써 소송을 제기하는 이가 없고 진실로써 재판하는 이가 없다. 헛된 것을 믿고 거짓을 이야기하며 재앙을 잉태하여 악을 낳는 자들뿐이다.” (이사 59,4)

신부님, 수녀님, 형제자매 여러분!
지금 우리가 접하고 있는 이 시대는 불법과 부정과 거짓의 시대입니다. 확연하게 드러난 진리를 거짓으로 숨기고, 많은 증거들을 통해서 드러나는 불법과 부정을 국가 안보라는 이름으로 교모하게 은폐하려고 하려는 세상입니다.

지난 대선에 조직적으로 개입한 사실이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진실을 은폐하고 조작하기 위해서 책임지고 소신 있게 수사를 진행했던 사람들을 자리에서 내쳤습니다. 진실을 말해야 하는 언론에는 재갈을 물려서 자신들에게 이득이 되는 것만 방송하게 합니다. 경제를 살린다고 하면서 부자들의 세금 개혁은 뒷전에 놓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 세금을 물리려 합니다. 일자리를 말하면서도 파견근무와 비정규직을 통해서 노동자의 삶을 파괴합니다. 노동자의 합법적인 권리를 외치는데도 종북이라는 이상한 논리로 법외노조로 만들어 버립니다. “정의로써 소송을 제기하는 이가 없고 진실로써 재판하는 이가 없고 헛된 것을 믿고 거짓을 이야기하며 재앙을 잉태하여 악을 낳는 자들”(이사 59,4)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고 그분의 힘이 정의의 원천임을 믿고 있는 우리는 지금의 현실을 가만히 앉아서 볼 수만은 없습니다. 진리를 간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거짓이 판을 치는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에 정의의 하느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정의의 사도로서 국가의 불법적인 대선개입과 그 책임을 지고 있는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하는 시국미사를 봉헌하기로 하였습니다. 마음을 함께하는 신자들과 바쁘신 일정에도 꼭 참석하셔서 모두 함께 이 땅의 정의와 민주, 생명과 평화를 위해서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불법선거 규탄과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시국미사”
일시 : 2013년 11월 22일 금요일 오후 7시. 장소 : 군산 수송동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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