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는 21일자 12면 <서울대 노조통합 발목잡은 민노총 ‘노예 규약’>제하의 기사를 보도했다. 이는 같은 날 조선일보 온라인판에 ‘단독’을 달고 보도됐으며 TV조선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보도의 요지는 국립대에서 법인화가 된 서울대에 속한 공무원 노조 계열인 ‘서울대 노조(이하 노조)’와 민주노총 계열의 ‘대학노조 서울대 지부(이하 지부)’가 통합을 도모하고 있는데, 양 측이 민주노총 탈퇴를 합의했지만 지부장이 이에 반대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는 것이다. 이에 지부가 지부장을 탄핵하려 했지만 민주노총 전국대학노조가 막아섰다는 것.

조선일보는 해당 보도에서 비슷한 사례인 발레오전장 시스템코리아의 사례를 들며 “이 때문에 ‘가입은 되지만 탈퇴는 맘대로 못 한다는게 말이 되느냐’는 반발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이어 서울대 관계자의 말을 빌려 “시대적 상황에 맞지 않는 상급단체의 규칙 때문에 이상한 상황이 돼 버렸다”고 전했다.

조선일보는 해당 보도 제목에 ‘노예 규약’이란 표현을 쓰며 그야말로 ‘한 번 민주노총에 가입하면 탈퇴는 못한다’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조선일보 보도에 사실관계가 크게 어긋난 것은 없지만 민주노총을 마치 ‘조폭’으로 포장한 편파보도라는 것이다.

조선일보의 이 같은 보도는 산별노조에 대한 이해가 없기 때문에 발생한 일이라는 지적이다. 지부는 전국대학노조 소속으로 지부 구성원들도 전국대학노조 소속이다. 지부는 대학노조가 구성원들을 임의로 분류한 조직으로, 지부 구성원들도 노조비는 전국대학노조에 납부한다. 따라서 전국대학노조를 해산하면 해산했지, 지부를 해산할 수는 없다.

   
▲ 조선일보 11월 21일자. 12면.
 
김병국 전국대학노조 사무처장은 “산별노조란 개념은, 조합원이 대학노조에 가입하면 산별노조인 대학노조가 임의의 조직인 지부에 편제를 하는 것”이라며 “그래서 노동조합 내부 임의조직인 지부를 산별노조 규약으로는 해산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조선일보의 그 같은 보도는 산별노조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정말 조선일보의 주장처럼 ‘한 번 발 담근’ 민주노총은 빠져나갈 수 없는 조직일까? 그렇지가 않다. 조합원들이 스스로 대학노조 조합원을 탈퇴하면 된다. 실제로 조선일보의 보도처럼 지부 조합원 222명 중 209명이 탈퇴했다. ‘노예 규약’이라 보기엔 무리가 있다.

특히 대학노조 측은 지부 구성원들에게 이 부분을 설명했다고 주장했다. 김 처장은 “조합원은 가입의 자유가 있듯 탈퇴의 자유가 있다”며 “(통합을 원한다면) 지부 전원이 탈퇴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조선일보 보도에서는 지부에서 대학노조 탈퇴가 안되니 조합원 탈퇴를 고안했다고 했지만 우리는 규약상으로 총회를 통해 (지부 전체가) 탈퇴할 수 없기 때문에 개별 탈퇴 후 원하는 조합원들이 그쪽 노조에 가입하면 된다고 안내했다”고 말했다.

김 처장은 이어 “또한 지부에 한 명이 남더라도 규약 상 지부의 재정은 그대로 유지가 되는데 나가는 분이 다수이고 자꾸 갈등을 빚으니 지부 재정을 1/N로 나눠 갖는 것도 양해를 했다”고 말했다. 김 처장은 “지부장 탄핵 부분도 규약규정에 그 사유가 나와 있다”며 “규약규정에 명시된 절차대로 탄핵안을 발의해야 하는데 그날 총회는 회의 자리에서 현장발의로 즉흥적으로 나왔던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이러한 점을 외면했다. 김 처장에 따르면 조선일보는 홍성민 서울대 지부장을 인터뷰했지만 정작 기사에서는 “(민주노총을) 끝까지 안 나간다”는 입장만 실었다. 그러한 조선일보의 내심은 홍 지부장의 발언을 전하기 앞서 “노조원 대부분이 탈퇴했지만 서울대에서 민주노총 계열 노조는 없어지지 않을 전망”이라는 말에서 드러난다.

‘노예 계약’을 운운하면서 다수의 선택에 따르지 않는 지부장의 “안 나간다”는 발언을 덧붙이자 민주노총이 비이성적 조직으로 비치게 됐다. 그러나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근로자는 자유로이 노동조합을 조직하거나 이에 가입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모든 노동자는 노조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 조선일보의 해당 보도에 “악의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김 처장은 “(해당 보도는 민주노총을) 공격하기 위한 것인 것 같다”며 “편파적으로 기사가 나갔고 규약에 대해 대학노조에 확인하는 절차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작위적, 의도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본다”며 “내부 논의를 통해 우리 입장을 밝히고 총연맹(민주노총)과도 논의를 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에 대해 기사를 작성한 양승식 조선일보 기자는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대학노조) 규약 상으로 (지부가 탈퇴를) 해선 안 되는 것은 사실”이라며 “규약에 문제의식을 느꼈다”고 말했다. 양 기자는 ‘민주노총 계열 노조는 없어지지 않을 전망’이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지부장이 있으니 (지부가)남아있다는 있는 그대로 쓴 것”이라고 말했다.

양 기자는 대학노조에 취재를 하지 않은 이유는 “지부장과 서울대 노조에서 얘기를 듣고 기사를 쓴 것”이라고 말했다. ‘편파보도’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탈퇴 불가능) 규약에 대해 (대학노조가)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우리는 기본적으로 그런 규약이 가입은 쉽고 탈퇴가 쉽지 않다는 것으로 본 것”이라고 말했다. ‘노예 계약’ 표현에 대해서는 “내가 대답할 만 한 사안이 아니”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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