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16일 밤 11시 대선 후보 TV 토론이 끝난 직후 경찰이 발표한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 사건 중간수사결과는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주도했다는 정황 증거와 진술이 나왔다.

21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1부(이범균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12차 공판 증인으로 출석한 김기용 전 경찰청장(56)은 “국정원 직원 선거개입 의혹 사건 중간수사결과 발표에 대한 보도자료를 언제 처음 봤냐”는 검찰의 질문에 “중간수사결과가 발표된 16일 밤에는 보고를 받지 못했고 17일 오전에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그동안 김용판 전 청장(58) 본인이 경찰의 중간수사발표 축소·은폐를 지시했다는 혐의를 부인하기 위해 “당시 경찰청장에게 모든 사항을 보고하고 보도자료 배포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한 것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진술이어서 주목된다.

김기용 전 청장은 서울청에서 중간수사결과를 발표 계획을 보고한 것에 대해 “발표 당일인 16일 밤 9시 전후로 서울청장이 나에게 전화로 증거분석 작업의 끝나가니 끝나는 대로 발표하겠다고 보고했다”면서도 “당시 분석이 얼마나 진행됐는지 구체적 분석 내용을 보고받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김 청장은 이어 “당시 여야 정치권과 언론에서 빨리 발표하라는 주문이 많았고 결과가 나오면 발표한다는 방침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지만 11시면 너무 늦은 시간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며 대선 불과 이틀 전에 발표 시기와 내용도 대선에 유불리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란 사실도 인지하고 있었느냐는 검찰의 질문에도 “그렇다”고 답했다.

   
▲ 김용판 전 서울청장
@이치열 기자
 
김 청장은 민주통합당이 국정원 직원 댓글 공작을 고발한 지난해 12월 11일부터 수서경찰서 중간수사발표 브리핑이 있던 17일까지 “국정원이나 정치권 인사와 연락한 기억은 없다”고 진술했지만 당시 새누리당은 김 청장을 찾아가 경찰 수사에 강하게 압력을 가하는 상황이어서 의문을 남겼다.

지난해 12월 14일 심재철 새누리당 선거공작진상조사특위 위원장을 비롯한 새누리당 의원 4명은 김기용 경찰청장을 찾아가 면담하면서 “국정원 직원이 하드디스크를 임의제출 했으니 일단 하드디스크를 복원해 비방 내용이 있는지 없는지만 살펴보고 내용을 2~3일 안에 신속히 밝혀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경찰이 16일 밤 11시 서둘러 김하영(29) 국정원 직원의 혐의 사실과 관련된 내용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고, 서울청의 증거물 은폐와 증거물 미반환으로 수서서 수사팀이 뒤늦게 김 직원이 사용한 아이디와 닉네임 40개로 구글링한 결과 수백 건의 정치관련 댓글이 확인됐다.

김 청장은 또 서울청의 증거분석결과에 대한 발표 준비 지시 여부에 대해서도 “분석결과 발표를 준비하라고 직접 지시했던 기억은 없다”며 “그 당시 핵심 내용은 4가지 키워드(새누리당·민주통합당·박근혜·문재인)에 걸리는 댓글 작업을 국정원 직원이 했는지가 관심 사항이어서 분석을 해 보니 이와 관련이 없고 찬반클릭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실무자로부터 구두보고 받은 것 같다”고 진술했다.

한편 김 청장은 김하영 국정원 직원의 노트북과 데스크탑 컴퓨터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보류 건과 관련해선 “김헌기 지능범죄수사과장과장이 ‘서울청에서 영장 신청을 하려는데 검찰과 협의해 보니 영장신청 요건을 충족 못해 재고하는 것이 좋겠다’고 보고했다”며 “그러면 책임을 떠넘기듯이 하지 말고 수사권 조정 문제도 있으니 원칙대로 하라고 김 과장에게 전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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